법원·검찰에 로비 의혹…“병원 진단서 놓고 판단 ‘죽겠다’ 하면 너그럽게 인정”
2011년 1월 회삿돈 1400억 원대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부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는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일요신문DB
올해 들어 방송사들의 연이은 보도로 결국 ‘황제 보석’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우선 10월 24일 KBS가 이 전 회장이 방이동과 마포 등지의 술집에 자주 드나든다는 증언과 담배를 피우는 사진, 그리고 신당동 떡볶이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동영상 등을 공개했다. 또한 지난 11일에는 MBC가 이 전 회장 최측근의 증언을 바탕으로 서울 마포와 강남, 이태원 일대 술집에 자주 들렀으며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골프 라운딩, 영화 관람, 액세서리 호화 쇼핑을 즐긴다는 폭로까지 더해졌다. 간 이식 수술이 시급한 간암 3기 환자가 거의 매일 술 담배를 즐기고 골프까지 쳤다는 이야기다. 이로 인해 ‘황제 보석’을 둘러싼 비난이 집중됐고 법원과 검찰도 난처한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 과연 이호진 전 회장의 건강 상태는?
처음 구속집행정지가 됐을 당시 이 전 회장의 건강은 어떤 상태였을까. 2011년 간암과 대동맥류 질환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를 받은 이 전 회장은 실제 12일 뒤인 2011년 4월 5일간 절제수술을 받았다. 당시 의료기록을 확보한 ‘뉴스타파’에 따르면 당시 이 전 회장은 간의 약 35%를 절제했다. 따라서 첫 구속집행정지는 사유가 분명했다. 수술 이후 13차례에 걸쳐 구속집행정지 연장 처분을 받은 이 전 회장은 비로소 2012년 6월 29일 보석허가를 받는다. 당시 법원이 보석을 허가한 까닭은 간 이식 수술 필요성 때문이었다. 당시 이 전 회장의 주치의를 비롯한 의사 3명이 “건강상태가 지속적으로 악화돼 최종적으로 간이식 수술이 필요한 상태로 수술은 빠를수록 좋다”는 의견이 제시했다. 법원은 간이식 사전적합성 검사를 위해 13일간 미국 출국도 허가해 이 전 회장은 7월 16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병원(USC)으로 떠난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당시 이 전 회장이 찾은 USC 산하 Keck Medical Center 측은 간을 기증 받기까지 평균 5~10년이 걸린다고 밝혔다. 그렇게 시작된 보석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만 6년째 간 이식 대기 중인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을 수는 있지만 술, 담배, 골프, 필라테스 등의 폭로 및 목격 내용은 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 술집 밖에서 지인과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KBS 뉴스 화면 캡처
병보석 관련 논란에서 가장 먼저 시선이 집중되는 곳은 병원이다. 실제로 황제 보석의 원조격인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에선 허위진단 발급 등으로 주범 윤길자의 형집행정지를 도운 주치의가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 받았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벌금 500만 원을 확정 판결 받아 의사면허는 취소되지 않았고 현재도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의 경우 보석 과정에서 주치의가 “이식 수술이 필요한 상태로 수술은 빠를수록 좋다”는 의견이 제시한 게 결정적이었다. 다른 의사 2명도 같은 입장이었다. 문제는 최근 최측근이 방송을 통해 “주치의와 함께 술을 자주 마셨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이상이 없었다” 등의 폭로를 한 부분이다. 곧바로 해당 병원은 미디어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병원 측은 지난해 주치의가 이 전 회장을 만난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다만 “한 차례 식사를 했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만난 이유 또한 “이 전 회장의 자살 징후를 느껴 의사로서 환자의 위험한 상태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밖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의 건강이 실제 매우 좋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한 법조 관계자는 “실제로 많이 아프다더라. 그런데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술 먹고 다닌다고 들었다”고 이 전 회장의 근황을 전했다.
# 보석 중인 피고인에 대한 관리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이 전 회장의 건강이 실제로 매우 좋지 않다고 할지라도 12월 12일로 예정된 재파기환송심에서 보석이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회장이 스스로 형사소송법 상 보석허가 취소 사유에 해당되는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은 집과 병원에만 거주하라는 ‘법원이 정한 조건을 위반’했으며 이는 보석허가 취소 사유에 해당된다. 이미 2년 전 ‘병보석 재심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 전 회장이 한 사찰에 있는 사진이 공개한 바 있다. 최근 KBS 보도에선 마포역 인근 술집 앞에서 이 전 회장이 누군가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진이 공개됐으며 서울 신당동의 한 떡볶이집에 있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까지 공개됐다. 이미 여러 장의 사진과 동영상 등으로 거주지(집과 병원) 제한 조건을 어긴 사실이 입증됐다.
2015년 한 하찰을 방문한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KBS 뉴스 화면 캡처
그럼에도 보석은 계속되고 있어 검찰과 법원에 따가운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보석 취소는 법원에서 이뤄지는데 법원이 직권으로 결정할 수도 있고 검찰의 취소 청구를 받아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원은 직권으로 보석 취소를 결정하지 않았고 검찰은 취소 청구를 하지 않았다.
항간에선 이 전 회장 측이 검찰과 법원에 로비를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간 이식 수술을 받으러 미국에 간다는 이유로 보석허가를 받고 실제 수술을 받지 않았음에도 무려 6년 5개월여나 보석이 이어졌다. 구속집행정지 시점부터 따지면 7년 8개월째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김능환, 안대희 등 전 대법관 2명을 비롯해 무려 113명(중복 선임 제외 77명)의 변호인을 선임해 막강 변호인단을 구축한 이 전 회장이 로비를 통해 황제 보석을 이어갔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비롯된 의혹이다.
이에 대해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그렇게 시간을 오래 끄는 사건도 이례적이지만 보통 보석은 처음이 힘들지 그 다음에는 나아지지 않았다는 소견서가 있으면 된다”라며 법원 로비 의혹에 대해선 “글쎄, 그게 검찰의견서 병원진단서 등을 놓고 판단하는 거라서 우리한테 로비하기보다는 검찰이나 병원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법원 고위 관계자는 최규홍 부장판사가 처음 보석 허가를 결정할 당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생각보다 법원은 기업 총수에 대해 엄격하다. 그런데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 소견서가 계속 왔다더라. 최규홍 부장판사가 하도 ‘죽겠다’고 해서 (보석을 허가) 했다고 하더라”라며 “보석에 대해 굉장히 엄격한 시각이 많은데 병원에서 죽겠다고 하면 꽤나 너그럽게 인정해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법원 관계자 역시 “최규홍 부장판사는 꽤나 강직한 타입이어서 전관 등이 통하지 않는 편”이라며 “결국 이렇게 사건이 불거진 것은 보석 중인 피고인에 대한 관리 의무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법원은 ‘아프다’는 의견서만 계속 올라오면 보석을 연장한다. 아프다고 하면서 계속 술을 마셨다는데 무엇보다 건강에 대한 케어의 의무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이번 황제 보석 논란이 발생한 건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서환한 객원기자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누구? ‘은둔의 경영자’ 사업 확장은 화끈하게!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1962년 12월 8일 부산에서 고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와 고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선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흥국생명 이사를 거쳐 태광산업 대표이사 사장, 대한화섬 대표이사 사장을 거쳤다. 맏형 고 이식진 전 부회장의 지병으로 별세하면서 대표이사 회장이 됐고 현재는 퇴임했다. 태광 산업 대표이사이던 이호진 전 회장이 2001년 소액주주 임시주총에 참석한 모습. 일요신문DB 경영인으로서 특징은 공격적인 사업다각화였다.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의 무차입 경영 원칙으로 구축된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인수합병을 시도한 것. 이를 통해 섬유산업 위주의 주력 업종에서 벗어나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 금융업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석유화학, 서비스, 레저분야에도 진출했다. 특히 회장 초기 설립한 종합유선방송(MSO) 사업체 ‘티브로드’를 업계 1위에 올린 부분이 눈길을 끈다. 이후 종합편성사업자 선정에도 의욕적으로 참여했지만 결국 최종 탈락했다. 공격적인 경영과 달리 평소에는 외부노출을 꺼려 ‘은둔의 경영자’ ‘얼굴 없는 경영자’로 불렸다. 재벌 모임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회장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에도 속하지 않았다. 인터뷰 등 언론 노출도 거의 없었으며 외부 공식행사에도 거의 나타나질 않아 회사 직원들조차 이 전 회장의 얼굴을 잘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회사에도 캐주얼 복장 차림으로 수행비서도 없이 나타나곤 했다고 한다. 이호진의 두 형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큰형 이식진 전 부회장이 2004년 55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둘째형 이영진 씨는 1994년 사고로 사망했다. 사실 태광그룹 집안은 상당히 유교적이며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애결혼을 반대한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의 생각에 따라 자식들의 모두 정재계 인사들과 중매결혼을 했다. 이런 까닭에 이 전 회장이 재벌모임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정재계 혼맥은 화려하다. 우선 모친 고 이선애 전 상무는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와 이기화 전 태광그룹 회장의 누나다. 이 전 회장의 둘째형 이영진 씨는 장상준 전 동국제강 회장의 막내딸 장옥빈 씨, 이 전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동생 신선호 일본산사스식품 회장의 맏딸 신유나 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이현준 씨 이현나 씨 등 1남 1녀를 두었다. 큰누이 이경훈 씨의 남편은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의 아들 허승조 전 GS리테일 부회장으로 현재 태광그룹 고문이다. 둘째 누이 이재훈 씨의 남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양원용 전 경희대 의대 교수다. 셋째 누이 이봉훈 씨의 남편은 한태원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전 회장이다. [섭] |
황제보석 기간 재산 1조 원 이상 증가 포브스코리아와 포브스가 조사하고 선정한 ‘2018년 한국 50대 부자’에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1조 6593억 원의 재산으로 22위에 이름을 올렸다. 포브스코리아는 2005년도 순위와 비교해 한국 부자 13년 변화도 공개했는데 당시 이 전 회장은 2005년 31위(2881억 원)에서 무려 9계단이나 순위가 올랐다. 자산도 1조 3000억 원 이상 늘었다. 게다가 구속된 뒤 구속집행정지와 보석 등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7년 8개월 동안 재산은 더욱 급증했다. 포브스코리아가 2010년 발표한 한국 40대 부자에 이 전 회장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당시 기준으로 40대 부자에 들기 위해선 자산 규모가 대략 5000억 원 이상이어야 했다. 따라서 이 전 회장은 31위였던 2005년에 비해 순위가 40위권 밖으로 뒤처졌으며 재산 규모도 5000억 원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2016년에는 1조 2837억 원으로 30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다시 2년 동안 재산이 무려 3756억 원이 증가하며 순위도 8계단이나 올랐다. 결국 8년여의 황제 보석 기간 동안 이 전 회장의 재산은 3배 이상 늘었고 늘어난 재산 규모도 무려 1조 원을 넘는다.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