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지분 9% 보유하며 이사회 진입 계획…경영참여로 기업가치 높인 후 투자차익 실현 관측
# KCGI는 누구? 자금조달은?
한진칼 지분 9%를 매집한 그레이스홀딩스의 최대주주는 KCGI제1호사모투자합자회사다. 이번 투자금 1357억 원은 KCGI제1호가 증자 형식으로 그레이스홀딩스에 투자했다.
KCGI제1호의 최대주주는 자본금 3억 8400만 원, 부채 2500만 원의 KGCI다. 구조를 보면 KCGI제1호가 그레이스홀딩스에 투자하는 형식이다. KCGI는 강성부 대표가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CEO)지만, KCGI제1호는 외부 투자자 지분율이 99.1%에 달한다. KCGI제1호의 투자 기간은 최장 14년으로 7~8년인 다른 사모펀드보다 2배 정도 길다.
KCGI가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며 2대주주로 올라서자 한진그룹이 어떻게 움직일지 관심을 모은다. 사진은 김포공항 대한항공 본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KCGI 의결권 확보 얼마나
그레이스홀딩스는 이사회 진입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사는 일반 경영정보 접근은 가능하지만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감사는 핵심정보 접근이 가능하고 최고경영자를 직접 견제할 수 있다. 이사는 일반의결로 뽑지만 감사는 주주당 3% 미만으로 의결권이 제한된다. 마침 현재 윤종호 감사는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결국 KCGI로서는 다수의 우호지분 확보가 중요하다.
국민연금(8.35%)과 크레디트스위스(5.03%) 등을 합하면 23%에 육박하는 의결권 확보가 가능하다. 상당수 소액주주들이 이른바 ‘갑질’ 논란에 휩싸인 조양호 한진 회장 측에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레이스홀딩스의 한진칼 매수단가는 1주당 평균 2만 5500원이다. 그레이스는 지분보유 방법을 ‘장내매수’로 신고했지만 최근 5~6개월 새 한진칼 주가 흐름이 이보다 부진했다. 시장에서 비교적 고가에 매입했거나 기관투자자들의 매수물량을 받아내는 형식으로 매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10월 초 국민연금은 지분율을 11.58%에서 8.35%로 3.23%포인트, 한국운용은 6.46%에서 3.81%로 2.65%포인트 줄였다고 공시했다. 한국운용은 5% 미만 주주로 전환돼 지분변동 공시의무가 없어졌다. 지분을 더 팔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레이스홀딩스가 한국운용의 지분축소를 지분 확보 기회로 활용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처럼 그레이스홀딩스가 기존 기관투자자와 협업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강성부 대표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펀드매니저 등 개인적 인맥도 갖췄다고 봐야 한다.
# KCGI 추가 동원할 자금 얼마나
현행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최초 취득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투자대상 기업 발행주식의 1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그레이스홀딩스가 경영참여를 하려면 당장 한진칼 지분 1%가 더 필요하다. 우호지분 확보 상황에 따라 10% 이상의 지분이 필요할 수도 있다. KCGI 입장에서는 기업개선 작업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오르는 게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KCGI는 지난 19일 한진칼 경영권 장악 의도가 없음을 밝혔다. 급등하던 주가는 이 발표 직후 매입단가 근처인 2만 6500원까지 떨어졌다.
자본시장법에서 경영참여형 투자목적회사의 차입한도는 자기자본 3배다. 투자자들의 추가출자를 받지 않는 한 KCGI제1호 자금동원 한계는 자기자본의 3배인 2390억 원으로 추정된다. 1000억 원가량의 투자 여력이 남았을 수 있다. 우호지분 확보 상황이나 조양호 회장 측 반격 양상에 따라 자금 집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년 정기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는 연말까지 매입한 지분율이 기초가 된다.
당장 이사해임 등을 저지할 3분의 1 지분 확보는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조 회장 측의 한진칼 지분율을 단기간에 더 높일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는 이익잉여금이 1656억 원뿐이다. 조 회장 일가가 보유한 1713만 주 가운데 399만 주가 담보로 잡혀 있다.
정석기업 지분(20.64%)은 매각해도 경영권에 영향이 적지만 비상장사여서 단기간에는 현금화가 어렵다. 창업가문이니만큼 오랜 기간 투자한 주주들과 네트워크가 탄탄할 수는 있다. 우선은 우호지분을 최대한 결집해 KCGI 등 외부 주주의 이사회 진입을 저지할 과반 의결권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과반을 내어준다면 자칫 조 회장과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경영참여가 제약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년 주총에 대비해 주주환원을 강화할 수도 있다. 한진해운 청산 과정에서 유휴자산 상당부분이 매각된 만큼 비주력사업 정리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이 유력하다. 해외 호텔 투자 등이 긴축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핵심인 대한항공 자산을 매각하거나 그 아래 자회사들을 상장할 가능성도 있다. 금호아시아나도 아시아나항공 자산을 매각해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진행 중이다.
# KCGI 차익실현 전략은
KCGI의 규모나 행보로 볼 때 경영권을 노린 전략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사나 감사를 선임해 경영을 견제할 수는 있겠지만 국내 1위 국적항공사를 경영할 만한 인적 네트워크나 역량을 갖췄을 가능성이 낮다. 해외 사모펀드의 경우 글로벌 전문인력 풀(pool)을 확보하고 있지만, 토종펀드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외국인 임원은 현행 항공사업법상 불가하다. 경영권을 노린다면 결국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출신 경영진을 영입할 수밖에 없는데, 성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일부 경영참여로 기업 가치를 높인 후 투자차익을 실현하는 정통적인 접근을 할 가능성이 크다. 5% 이상 지분을 가진 주요주주들이 차익실현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조금씩 장내에서 팔아 지분을 줄이든지, 큰손에 대량으로 지분을 넘기는 블록딜(block deal)이다. 세분하면 회사 최대주주나 회사 측에 지분을 넘기는 방법도 있다. 자사주 매입을 활용하기도 한다. KCGI가 경영권을 노리는 게 아니라면 자사주 매입 등을 유도해 조금씩 지분을 줄이는 방법을 쓸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템플턴자산운용은 2005년 6월 현대산업개발(현재 HDC) 지분 17.49%에 대해 경영참여 목적 투자임을 밝혔다. 총수인 정몽규 회장보다 높은 지분율이다. 하지만 템플턴은 눈에 띄는 경영참여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템플턴의 경영참여 공시 전인 2005년 말까지 HDC는 자기주식 보유가 ‘0주’였다. 하지만 템플턴 경영참여 이후 2017년까지 550만 주를 매입한다. 템플턴은 꾸준히 지분율을 낮춰 지난 8월 5.5%에서 4.41%로 낮아졌다. 사실상 투자회수를 끝낸 것으로 보인다.
템플턴은 회사의 자사주 매입을 활용해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 장기 투자 과정에서 다른 대형 펀드들의 매수세도 템플턴의 차익실현에 도움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몽규 회장도 지분율을 높였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