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대표 등 14명 업무상 과실 치사상 혐의, 제조·유통 시켜 국민에 피해
SK케미칼이 제조한 원료로 생산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은 27일 이들에 대한 고발장을 서율중앙지검에 제출하면서 “두 회사는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및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사용해 ‘가습기메이트’를 제조·유통시켜 많은 국민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들었음에도 처벌은커녕 수사조차 받지 않아 왔다”며 고발의 이유를 밝혔다.
이날 고발된 이들은 SK케미칼에서 최창원 부회장과 김철 대표를 포함해 김창근, 이인석, 이문석, 한명로, 박만훈 전 대표 등 7명이다. 애경산업에서는 장영신 회장을 포함해 채동석, 이운규 대표와 채영석, 최창활, 고광현, 안용찬 전 대표 등 7명이다.
최초의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바이오텍 사업팀)에서 최초로 개발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다. 당시 독성시험결과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발표되면서 가습기살균제 시장에 진출하는 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결국 30여개 제품들이 2011년까지 매년 약 60만 통 이상 판매됐다.
SK케미칼은 가습기살균제 시장의 90%이상을 점유한 원료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를 생산해 공급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허위과장 표시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벌한 자료에 따르면 옥시레킷벤키저, 홈플러스PB(PB는 자체브랜드 제품), 롯데마트PB 제품의 살균제 물질은 SK케미칼이 개발한 SKYBIO1125이었고 구성 원료는 PHMG가 주성분이었다. 애경, 이마트PB, GS마트PB, 다이소PB 제품의 살균제 물질 또한 SK케미칼이 개발한 SKYBIO FG로 구성 원료는 CMIT/MIT 가 주성분이었다.
세퓨, 아토오가닉 등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화학물질(PGH)을 제외하면 피해자 90% 이상이 SK케미칼이 개발한 SKYBIO1125, SKYBIO FG를 사용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우선 PHMG에 대해 그간 SK케미칼 측은 “PHMG를 옥시 등의 제조사가 아닌 중간도매상에게 판매했기 때문에 그 물질이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쓰이는 줄도 전혀 몰랐다”며 “환경부가 2000년 PHMG를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화학물질‘로 관보에 개정 고시(관보 14497)한 것을 이유로 PHMG가 흡입독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가습기참사네트워크 등은 SK케미칼이 PHMG가 흡입독성이 있고 인체에 유해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SK케미칼이 공급한 PHMG를 사용한 옥시와 관련된 소송 및 동물흡입실험을 통해 PHMG의 위해성과 흡입독성이 인정됐다. SK글로벌(호주법인)이 SK케미칼의 PHMG를 호주에 수입하기 위해 호주의 ‘신화학물질신고평가법’에 따라 PHMG에 대한 유독성 정보를 호주의 기관(NIC MS)에 제공했다. 2013년 7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NICMS는 보고서에서 “PHMG가 흡입독성이 있고, 상온에서 분말 형태로 존재하는 PHMG가 비산돼 호흡기로 흡입될 경우 작업장에서 노동자는 보호장비를 갖추고 작업을 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6년 8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와 재발방지대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 시절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만든 노 아무개 씨는 “1993년 전세계 살균제를 조사하면서 PHMG 계열 살균제가 흡입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고 그 이유로 이를 배제했다”고 증언했다. 개발자가 위해성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SK케미칼은 2013년 7월 해명자료에서 PHMG를 주성분으로 하는 SKYBIO1125를 마시거나 흡연하지 말도록 돼있고 분진이나 증기 발생 공정에서 방독면 착용을 권했다. 가습기참사네트워크 등은 “결국 SK케미칼은 제조해 공급한 PHMG가 흡입독성을 가지고 있고 공기에 수증기 형태로 분산되는 가습기의 특성상 PHMG를 포함한 살균제가 인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가능성을 인지했음에도 지속적으로 공급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CMIT/MIT에 대해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단 한명의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SK케미칼은 “2012년 질병관리본부가 동물실험에서 해당성분의 흡입독성을 확인하지 못했다. 2016년 환경부가 진행한 연구결과도 가습기살균제 유해성분으로 알려진 CMIT/MIT와 폐섬유화 연관성 등 위해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전문가들이 CMIT/MIT를 넣은 가습기살균제 제품으로 사망이나 중증 피해가 나오기 힘들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의 절반 이상이 2개 이상의 제품을 섞어서 사용했다”고 주장해 왔다.
고발장.
그러나 속속 CMIT/MIT가 인체에 유해성을 입증할 수 있는 연구결과와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2018년 10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동물실험 모두 SKYBIO FG로 독성시험을 하지 않고 CMIT/MIT로만 시험을 했다. 따라서 독성을 확인할 수 없는 실험조건이었던 게 확인됐다.
최근 발표된 국내논문 ‘CMIT/MIT 기도 점적투여를 통한 임신마우스의 사산에 대한 영향’(강병훈·김민선·박영철 저, 한극환경보건학회지 제 44권 제 5호 2018)에 따르면 CMIT/MIT를 임신한 쥐에게 폐를 통해 CMIT/MIT를 노출해 보니 사산마우스가 확인됐다. 이 논문은 CMIT/MIT가 미생물, 동물, 인체 등에서 종간차이 없이 독성을 유발할 것으로 추정했다.
2012년 영국의 의학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는 “CMIT/MIT는 공기를 통해 접촉해도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내용의 연구결과가 게재됐다. 2014년 영국 루이샴 병원 연구팀은 “CMIT/MIT 성분의 공기 접촉은 심각한 안면 피부염과 호흡 관련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2017년 한국환경보건학회지 ‘마우스의 기도 내 점적을 통한 가습기살균제 CMIT/MIT와 사망 간 원인적 연관성에 관한 연구’(김하영·정용현·박영철 저)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CMIT/MIT는 폐염증 및 폐섬유화 등과 같은 폐손상 없이 마우스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죽음은 미생물과 동물만 아니라 사람게게 발생이 가능한 독성물질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2월 CMIT/MIT 성분을 포함한 가습기살균제가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미국 EPA보고서, SK케미칼이 생산한 물질안건보건자료 등에는 가습기살균제 성분물질의 흡입독성을 반복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객관적, 신뢰성 있는 역학조사를 통해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피해사실이 확인됐다. 이론적인 위해 가능성을 넘어 인체 위해성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2018년 10월 29일 종합국정감사에서 “CMIT/MIT 함유 제품단독사용자에게도 PHMG로 인한 피해자와 동일한 특이적 질환이 나타났다”며 공식적으로 피해를 인정하면서 “SK와 애경도 피해자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2017년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실린 ‘가습기살제 제품에 표기된 안전보건정보 고찰’(박동욱· 이승희·임횽규·배서연·류승훈·안종주 저)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제조 판매한 제품은 폐 손상 등 건강영향을 일으켰던 결정인자인 살균제 화학물질 성분이나 위해성을 제품에 정확히 표기하지 않았다”며 “가습기살균제의 주된 인체 흡입 경로가 호흡기임에도 이들 제품에는 호흡기 흡입에 따른 독성, 주의 및 권고사항, 비상조치 등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제품별 사용 권장량에 대한 독성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으며 독성학적 근거 없이 사용방법과 안전, 안심, 무해 문구를 표기했다”고 지적했다.
가습기참사네트워크 등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가습기술제 참사에 대해 누구보다 책임이 있다.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 달라”고 촉구했다.
현 상황을 놓고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대응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현재 정부의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아직 구체적인 입장이나 계획을 밝히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3·4단계 피해자에 대해서는 지난해 특별구제계정 분담금을 납부했고 2단계 피해자와는 만남을 가지고 있다”며 “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피해자들과 논의 과정에 있다. 당사는 책임이 확정되면 책임을 진다는 입장이다”고 밝혔다.
한편 이달 16일 기준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신청과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6210명이며 이중 사망자 1359명이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