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정일문 새 대표 ‘IPO명가’ 공신…유상호 사장은 부회장에
지난 23일 한국투자증권은 뜻밖의 발표를 했다. 연임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됐던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신임 대표이사에 정일문 부사장을 내정했다고 밝힌 것. 12년 동안 대표 자리를 지키며 ‘최장수 CEO’라는 타이틀을 얻은 유 사장이 사실상 2선으로 퇴진하자 증권업계는 증권가 전반에 CEO 교체 바람이 불지 주목하고 있다.
유 사장은 2007년 47세의 나이로 대표이사에 올라 ‘최연소 CEO’ 타이틀로 취임해 ‘최장수 CEO’로 퇴임하는 독특한 기록을 남겼다. 재임기간 11년 연속 흑자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그의 몫이다. 증권사 CEO가 실적 부진으로 중도 퇴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12년간 CEO 자리를 지켰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12년 동안 지키던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자리를 차지한 정일문 새 대표는 IB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IB통’으로 알려져 있다. 연합뉴스
새 대표이사로 결정된 정일문 부사장은 1998년 입사해 2016년 자산관리(WM) 부문을 맡기 전까지 27년간 IB업무에서 잔뼈가 굵은 ‘IB통’이다. 1990년대 대우증권과 대신증권이 양분하던 기업공개(IPO) 시장에 뛰어들어 한국투자증권을 IPO명가로 키운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임기 만료를 앞둔 다른 증권사 CEO들의 거취도 연말 인사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가장 주목받는 곳 중 하나는 KB증권이다. KB증권은 지난해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이 합병하며 윤경은 사장과 전병조 사장 각자대표 체제를 유지했다. 올해는 두 사장이 모두 연임에 성공했지만 내년에도 현행 체제를 유지할지 미지수다.
KB금융지주는 내부적으로 각자대표제 유지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현대증권 사장이던 윤 사장은 리테일과 트레이딩 부문을, KB투자증권 출신인 전 사장은 IB 부문을 맡아 각자대표이사로 큰 잡음 없이 조직 안정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KB증권의 실적도 나쁘지 않다. 지난 3분기까지 연결기준 순이익은 219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5% 늘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KB증권은 지난 인사 때도 각자대표 체제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고 구체적으로 대표 이름까지 거론됐지만 결국 모두 연임됐다”며 “올해도 KB금융지주가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대표(부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정기주총까지다. 9년 동안 대표 자리를 지켜온 최 부회장이 내년 연임하면 네 번째 연임에 성공한다. 최근 메리츠종금증권 성장세 등을 고려하면 연임이 유력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권희백 한화투자증권 사장도 연말 인사에서 관심 가는 인물이다. 권 사장도 그동안 한화투자증권 실적 개선 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몇 년 동안 조직이 정비되고 실적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며 “다만 올해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 자산담보기업어음(ABCP)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어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외에 이진국 하나금융투자 사장과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사장도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금융권은 증권가 CEO 지각변동의 중심에 IB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증권사부터 중견사까지 새로 등장하는 인물 상당수가 IB부문 출신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16일 인사를 단행한 미래에셋대우는 IB부문 임원을 대거 승진시켜 전면에 내세웠다. IB와 법인영업에서 경력을 쌓은 조웅기 미래에셋대우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IB1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김상태 미래에셋대우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NH투자증권도 지난 3월 IB부문 대표였던 정영채 부사장을 사장으로 올렸다.
증권가에 IB 출신 CEO가 연이어 등장하는 건 IB의 실적 기여도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금융권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한 금융지주사 고위 관계자는 “주식시장 침체로 증권사들의 전통적 수익원인 위탁매매가 계속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면서 “반면 IB 의존도는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CEO 인사에도 이런 현상이 반영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