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벌 미쓰이-미쓰비시 계열, ‘일방적 생산공정 철수’ ‘불법파견’ 놓고 첨예한 대립각
그런데 현 시대에도 국내에 진출한 전범기업 유전자를 가진 일본 기업들과 근로자들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어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후지제록스 한국법인은 인천 생산공장을 내년 3월 31일자로 폐쇄한다는 일방적인 결정으로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게 될 위기에 놓인 근로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아사히글라스(한국법인명 아사히초자화인테크노한국)는 노동조합 결성을 이유로 사내 하청업체를 사실상 폐업으로 내몰았고, 거리로 내몰린 근로자들은 3년 넘게 복직 투쟁을 벌여 왔으나 법의 판단에 맡긴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후지제록스와 아사히글라스 한국법인과 생산직 근로자들 사이에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일요신문’이 그 내막을 들여다 봤다
전범기업이란 일제 강점기 시절 적극적으로 군수물품을 생산·납품하거나 조선인을 강제 징용해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등 전쟁범죄에 가담한 기업들을 말한다. 현존하는 기업 외에도 넒게는 다른 기업과 흡수·통합된 기업, 전범기업 자본으로 설립된 기업 등을 포함한다.
서울 중구서소문로 한국후지제록스 본사. 사진=한국후지제록스 홈페이지
# 후지제록스 인천공장 폐쇄, 공장 근로자와 마찰 가능성
후지제록스의 모회사인 후지필름홀딩스는 일본 3대 재벌기업집단이자 전범기업인 미쓰이 계열이다. 미쓰이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최대인 미이케탄광을 운영하면서 군수물자인 석탄을 캐내기 위해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해 노역시킨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후지제록스는 후지필름(75%)과 미국 제록스(25%)가 투자해 복합기, 인쇄기, 프린터 사무용기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 생산, 판매 등 목적으로 1962년에 설립된 조인트 벤처(합작회사)다. 후지제록스는 미쓰이 계열, 그리고 후지필름의 태생 배경으로 사실상 전범기업에 포함된다. 후지필름은 미쓰이물산 관계회사였던 다이니폰 셀룰로이드(다이셀)가 1934년 사진 사업을 분사해 설립됐다. 다이셀은 일제강점기 당시 화학물질로 군복용 섬유, 카메라용 필름 등을 만들었고 이를 위해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한 전범기업이었다.
일본 후지제록스 본사 방침에 따라 후지제록스는 인천에 있는 한국 공장을 내년 3월 말 폐쇄할 계획이다. 다만, 후지제록스는 한국에서 생산공장을 폐쇄할 뿐 사무, 총판, 유통 등 조직은 그대로 운영한다. 결국 후지제록스 인천공장 직원 180명과 협력업체 직원 140여 명은 졸지에 시한부 일자리 선고를 받아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후지제록스 인천 공장은 지난 1975년 세워져 복사기 등을 생산해 왔다. 후지제록스 노조에 따르면 올 초 노사 간 조직 슬림화를 통한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이뤄졌고, 지난 7월 사장이 바뀌더니 지난 달 일본 본사에서 인천공장 폐쇄를 확정해 통지해 왔다고 한다.
후지제록스 관계자는 “올해 1월 말 본사에서 본사와 해외 지사들에 대한 구조개혁을 실사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당사도 이런 사실을 공지해 왔다”며 “갑자기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인 인천공장 생산직 근로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공장 폐쇄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인천공장 일부 직원의 본사 전환 배치, 희망퇴직, 이직 등 다양한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 결과 11월 말 기준 후지제록스 노사는 인천공장 직원 180명 중 30여 명을 본사로 배치하는데 합의했고, 30일 퇴근시간까지 희망퇴직을 접수받고 있다. 하지만 순조롭게 마무리될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후지제록스는 인천공장 협력업체들에 대해선 “지원 방안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협력업체들의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후지제록스 노조 관계자는 “인천공장 직원 중 본사 배치가 더 늘도록 힘쓸 계획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다면 사측이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후지제록스(후지필름 포함)는 조달청을 통해 정부 각 부처와 국가계약을 맺고 제품 165억 897만 원 어치를 납품한 것으로 확인됐다. 얼마든지 국내기업 제품으로 대체 가능함에도 모범을 보여야 할 관공서에서 이런 거래를 지속해 왔다는 점에서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가 경북 구미공단 아사히초자테크노한국 공장 앞에서 천막을 치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 아사히글라스, 노조 결성한 하청업체 폐업 조치 불법파견 놓고 공방
아사히글라스는 각각 일본 3대 재벌기업집단이자 전범기업인 미쓰이와 미쓰비시 계열이다. 미쓰비씨는 군함도(하시마) 조선인 강제동원,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군함, 폭탄 등 다양한 전쟁물자를 생산해 공급했다. 아사히글라스도 당시 내화 벽돌, 전투기 유조탱크 보호막 생산 등 군수산업에 적극적인 기업이었다.
아사히글라스는 지난 2004년 경상북도와 구미시로부터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등록돼 2006년부터 구미공단 내에서 공장을 가동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이 회사는 공장부지 33만㎡를 50년간 무상임대, 5년간 국세 전액 면제, 15년간 지방세 감면 등 외투기업으로서 막대한 혜택을 받고 있다.
아사히글라스 국내 사내하청업체인 G 사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2015년 5월 노동조합(현 민주노총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을 설립했다. 당시 사내하청업체 세 곳 중 노조가 결성된 곳은 G 사가 유일했다. 사내하청이란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원청업체의 생산공정을 수행하는 것을 말하며 원청은 하청업체 근로자를 간접고용하는 형태다.
노조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작업 시간에 따라 착취 수준인 시간당 최저임금, 연간 상여금 400%, 교통비만 지급됐다. 주 4일 3교대, 주말은 주야 맞교대 12시간 근무를 번갈아 가며 일해야 했다. 식사시간은 20분이었다”며 “조금이라도 작업 규정을 위반하면 징계절차도 없이 눈에 확 띄는 붉은 색 징벌 조끼를 한동안 입게 하는 등 인권 침해가 심한 곳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아사히글라스는 6월 30일 전기공사를 이유로 하루 휴무를 주더니 7월 1일부터 G 사 근로자들의 공장 출근을 막았다. 노조 한 관계자는 “이런 사실을 휴무 당일 G 사로부터 받은 문자를 통해 알았을 뿐이며 이전까지 어떠한 통지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아사히글라스는 그해 7월 31일자로 사내하청 계약을 해지하면서 G 사는 폐업했다. 이렇게 G 사 근로자 170여 명은 노조 가입 여부를 불문하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노조는 같은 달 고용노동부에 아사히글라스를 부당노동행위와 불법파견 혐의로 고소했다. 3년이 흐른 현재 130여 명에 달하던 노조원 중 20여 명만 남아 아사히글라스를 상대로 복직과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아사히글라스와 노조 간 투쟁의 쟁점은 불법파견 여부다. 최근 노동부와 법원은 사내 하청 방식으로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원청이 하청업체 근로자를 생산 현장에서 지휘하거나 감독하면 위장 도급으로 보고 불법파견으로 해석하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노조가 제기한 ‘아사히글라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과 별도로 검찰의 아사히글라스의 불법파견 혐의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는 2016년 아사히글라스의 부당 노동행위를 인정하고 해고된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게 재취업과 생활안정대책을 마련하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아사히글라스는 “중노위의 행정처분이 모호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지난해 9월과 11월 각각 아사히글라스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며 “해고된 노동자 178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과 함께 과태료 17억 8000만 원을 부과했다. 대구지방검찰청 구미지청은 지난 해 12월 불법파견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으나 올해 5월 대구지방검찰청은 재수사 명령을 내려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아사히글라스 관계자는 “정확한 표현은 도급계약 해지다. 당사는 적법한 절차를 따랐으며 법원의 판결과 수사당국의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전법기업이 아니냐는 것에 대한 언급은 부적절하다”며 “삼성과 LG 등 주요 거래처를 포함해 산업계 전반에서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수요 감소로 이를 생산하던 공정을 멈췄고, 계열사 소속 정규직 직원들을 G 사가 담당하던 생산 공정에 대체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