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은혜 새기며 조국 떠나는 청년들
흰 스투파 안에 대리석판 책이 들어있는 쿠도더 사원.
[일요신문] 미얀마에 오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색깔이 있습니다. 금빛 골드, 붉은 레드, 짙은 초록 그리고 눈부신 화이트입니다. 나라의 깃발도 4가지 색입니다. 노랑, 초록, 빨강의 삼색 바탕 위에 하얀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색들은 어딜 가도 마주칩니다. 초록은 가장 좋은 비취색이며, 빨강은 값진 루비색이며, 노랑은 모든 파고다의 금빛 골드이자 미얀마의 진주색입니다. 초록 치마를 입고 있으면 학생이나 교사들입니다. 짙은 빨강색의 세인 빤 꽃들이 나라 곳곳에 많이 핍니다. 사람들은 빨강과 노랑 옷을 즐겨 입습니다. 영업용 차량의 번호판도 빨간색입니다. 나라 전역의 파고다에 실제로 골드를 붙이니 온통 금빛입니다.
국민들은 명절이면 나라꽃인 노란 파타욱을 한아름 안고 사원에 갑니다. 거리에서는 흰색 자스민을 파는 소녀들이 차창 밖에서 그 향기 나는 꽃잎 묶음을 흔들어 보입니다. 밭을 일구는 아낙네들도 머리에는 노란 프리지어를 꽂고 일을 합니다. 온통 삼색의 세계입니다. 노랑, 초록, 빨강의. 오늘은 이 나라 국기처럼 그 바탕색 위에 별처럼 눈부신 화이트를 생각합니다. 오늘 학생들과 화이트의 세계를 다녀온 탓입니다. 천년고도 바간에도 눈에 띄는 흰색 사원이 있듯이 만달레이에도 흰색으로 덮인 유적이 있습니다. 바로 쿠도더(Kuthodaw) 파야입니다.
쿠도더 사원의 스투파 안에 있는 대리석 석판경. 깨알 같은 글씨로 불교경전을 모두 새겼다.
만달레이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아래 흰 스투파들이 모여 있는 쿠도더의 풍경이 인상적입니다. 729개의 화이트 조각상들입니다. 대리석으로 만든, 세상에서 가장 큰 책입니다. 중앙 파야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스투파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곳이 세계적으로 아주 중요한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경전을 모두 집결시켰기 때문입니다. 부처 사후에 각 나라에서 그 가르침이 제각기 달라지지 않도록 경전을 집결시켜 보존하고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았습니다. 4차 집결까지는 인도에서 했지만 5차는 버마의 이곳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나라 국민들이 존경하는 민돈왕은 1857년 만달레이 왕궁을 지어 아마라뿌라에서 천도하고 2년 뒤 이곳 쿠도더 파야를 세웠습니다. 집결된 경전에서 채택되고 확정된 내용을 729개의 흰 대리석판에 깨알같이 새겼습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집결입니다.
이 석장경 하나하나는 흰 스투파 안에 세워져 보관되어 있습니다. 온통 화이트 하우스입니다. 당시의 비문을 보면, 이 작업은 8년이 걸려 1868년 완성되었습니다. 또 410개 석판에는 경전을, 111개는 계율을, 208개는 경전을 논한 철학적 논장을 담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이 방대한 작업에는 200여 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민돈왕은 석판에 새겨진 경전을 모두 읽게 하였는데, 2400명의 승려가 쉬지 않고 6개월이 걸렸다고 전해집니다.
고향을 떠나는 청년들이 연꽃을 들고 이 사원을 찾곤 한다.
이 화이트 사원은 대학생들이 가끔 찾아 그늘에서 공부하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은 아닙니다. 당시에 심은 커다란 나무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조국을 떠나기 전 부모님들과 이곳을 걷곤 합니다. 이곳의 경전 역시 효도를 담고 있고, 이 나라 국민들은 효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살기 때문입니다. 메루산을 상징하는 중앙의 파야는 부모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 주변으로 9×9×9의 흰 석판이 정렬되어 있습니다. 옛 버마의 건축공법에는 9라는 숫자가 의미 있게 활용됩니다. 완전한 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양곤 쉐다곤 파야도 99미터로 9의 배수입니다.
오늘 화이트 세계를 걷는 한 청년에게 물어봅니다. 고향을 떠나기 전, 할아버지가 이곳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민묘산(메루산을 여기선 이렇게 부른다. 중앙에 있는 파야를 가리킴)만큼 큰 부모님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셨어요. 청년이 대답합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른들과 잘 어울리고, 부모님께 순종합니다. 오랜 불교적 관습입니다. 노랑, 초록, 빨강의 바탕 위에 눈부시게 빛나는 화이트 별. 이 나라 국기처럼 만달레이 거리에 있는 화이트 사원에는 오랜 관습과 마음을 다스린 철학이 한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하얗게 빛나는 언어로.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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