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 매각·잔금 미납 논란 속 재매각설까지…부영, 소문 사실이면 앉아서 수천억 벌 수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2013년 서울 용산 국방부 접견실에서 김관진 장관에게 자신이 편저자로 참여한 ‘6.25’전쟁 1129일‘ 1만 5000권을 기증했다. 부영그룹 제공
미군부대와 국군 복지단이 있던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부지 5만 1915㎡(1만 5704평)는 용산구 지구단위계획상 ‘아세아아파트 특별계획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지금까지 개발이 진척되지는 않아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부지는 국방부가 2014년 부영그룹에 매각했다.
2014년 3월 국방부는 삼일감정평가와 제일감정평가에 한강로3가 부지 감정을 의뢰했다. 각 회사는 부지 감정평가액을 4036억 원과 4150억 원으로 판단했다. 국방부는 최초 매각 공고에 이 토지가격을 최소 4074억 원으로 제시했다. 당시 부동산시장은 고점도 저점도 아닌 평균 수준이었는데 국방부는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예정가격을 설정했다.
전자입찰 정보와 국방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한강로3가 부지는 4회차까지 공매가 진행돼 최초 매각예정가에서 20% 할인된 3259억 원이 매각 예정가로 설정됐다. 최고액을 써 내면 낙찰되는 최고가입찰 방식을 통해 부영은 이 부지를 예정가보다 1억 원 많은 3260억 원에 낙찰 받았다. 부영그룹이 부지 낙찰에 대한 의지가 크지 않거나, 낙찰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세아아파트 부지보다 조금 더 큰 한남 외인주택 부지는 6만㎡가 2016년 6242억 원에 매매됐다. 입지가 다른 두 토지를 단순비교할 수는 없지만 외인주택 부지는 당시 지구단위계획조차 설립되지 않고, 고도제한 등 규제가 많았다. 그럼에도 개발계획이 다 설정돼 있던 한강로3가 부지는 외인주택 부지의 반값에 팔렸다.
문제는 당초 부지 매각 조건에 따르면 이미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이 넘어갔어야 할 한강로3가 토지가 아직 국방부 소유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강로3가 등기부등본에는 소유자가 국방부로 되어 있다. 매각 공고에 따르면 매수자 부영은 계약금으로 매입가의 10%를 납부하고 1차 분납금 30%를 2015년 10월, 2차 분납금을 2016년 10월, 3차 잔금을 2017년 10월에 납부 완료해야 한다. 이미 대금을 다 치르고 주인이 바뀌었어야 할 땅이 여전히 국방부 앞으로 되어 있자 이를 둘러싼 의혹이 증폭됐다.
국유재산 매매계약서에 따른 잔금납부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국유재산법과 한강로 부지 매각 공고에 따라 낙찰자는 국군 복지단, 1방공여단 이전완료일인 2017년 12월말까지 매각대금 잔금을 납부해야 한다. 복지단은 이미 지난 8월 용산구 용산동으로 이전을 완료했다.
국방부는 2017년 해당 부지에서 문화재가 발견돼 사업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문화재 관련법에 따라 발굴이 완료될 때까지 사업 진행이 중지된다. 당연히 매수자인 부영에 대해서도 잔금을 치러야 할 기한을 미뤄줬다”고 설명했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장문화재 발견자는 문화재청장에게 이를 신고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정작 문화재청과 국방부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문화재청에는 아직 한강로3가 토지에서 매장문화재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들어온 바 없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강로는 물론 용산구 전체에서 매장문화재가 발견됐다는 사실이 파악된 적 없다”며 “발견됐으면 문화재청으로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와 부영 간 땅 거래가 명쾌하지 않은 데다 문화재청은 국방부와 정반대 주장을 하며 의혹만 점점 커졌다. 심지어 두 달 전부터 브로커들이 한강로3가 땅을 팔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브로커가 제시하는 조건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국방부-부영-신규 매수자 3자 미팅 필수 △2~3일이면 계약 완료 △국방부 측에 1~2% 커미션 지급 △총계약금 5608억 원 등이 충족되면 한강로3가 부지를 재매각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현재 계약을 통해 권리자인 부영에서 새 주인으로 손넘김이 이뤄질 경우 최소 위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것이다.
브로커들 사이에 도는 정보가 사실이라면 3200억 원대에 땅을 낙찰 받고 잔금도 치르지 않은 부영그룹은 앉은 자리에서 수천억을 버는 구조다. 반면 국방부는 시중에 떠도는 매각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런데 국내 대형 건설사 중 한 곳이 브로커와 접촉해 실제로 사업부에서 한강로 부지 인수를 검토한 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실무자로서 부지 인수를 검토한 A 건설사 관계자는 “5600억 원도 부지 가치를 고려하면 비싸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인수 결정을 포기한 것은 땅 소유권리자가 국방부인지 부영인지 명확하지 않았다”며 “이렇다보니 매각주체를 접촉해야 하는데 주체조차 파악하기 혼란스러웠다”고 설명했다.
부영그룹에 정통한 인사는 “현재 임대주택 보증금과 임대료가 동결돼 부영의 현금흐름이 아주 나쁘다”며 “아파트는 브랜드명이 중요한데 부영그룹의 이미지 하락으로 지방 아파트 분양률이 매우 저조하다”고 귀띔했다.
사정당국 한 관계자는 “넓게 보면 알박기의 한 유형인 셈이다. 자금 없이 앉은 자리에서 수천억 원을 벌 수 있는 것인데 최악의 경우 국방부와 부영 간 커넥션을 의심케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부영그룹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