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부터 채용비리까지…전 수습직원 “노조 가입 탓 부당해고” 퇴사 직원 “친인척 소개로 뽑혀”
목동빙상장 내부 비리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이다. 수십 년간 목동빙상장과 관련된 잡음이 나오지 않았지만, 최고책임자인 유태욱 소장의 강압적 지시 및 폭언, 심지어 폭력을 참다못한 직원들이 입을 열었다. 실상을 들여다보니 목동빙상장은 폭언이 일상화된 것은 물론, 부당해고와 채용비리까지 불거진 철저히 고인 물이었다.
빙상계 거물 유태욱 소장이 목동빙상장에서 온갖 갑질과 횡포를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995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하루 전 당시 유태욱 코치(왼쪽)가 선수들에게 작전지시를 하고있다. 연합뉴스
목동빙상장에서 수습직원으로 채용됐지만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김 아무개 씨는 서울시체육회를 대상으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 목동빙상장의 시설관리팀으로 일하게 된 김 씨는 20시간 넘게 근무하는 노동강도를 참아가며 수습기간을 보냈다. 빙상장은 일반인에게 시설을 빌려주는 것이 주 수입원 가운데 하나다. 아이스링크를 대관운영하며 새벽 1시까지 가동하고 잠시 뒤 새벽 5시 30분부터 다시 운영해 시설관리팀 직원들은 잠잘 틈도 없이 일해왔다. 하지만 김 씨는 노동조합 가입과 반발세력으로 몰려 부당해고를 당했다.
목동빙상장 관계자에 따르면 김 씨의 수습기간 업무태도는 성실한 것으로 평가됐다.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 70점이 넘으면 채용이 이뤄지는데, 대부분 합격하기 때문에 채용전환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내부자들은 김 씨가 이 아무개 과장과 함께 노동조합에 가입해 윗사람의 눈 밖에 나서 채용되지 않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부당해고를 호소하는 김 씨는 “수습직원이었던 제가 노조에 가입한 것은 목동빙상장에 출근한 첫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강압적 분위기와 부조리한 점들을 봤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노조에 가입해서 부당해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회사에 반발하는 편에 서서 이를 탐탁지 않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아무개 씨가 자신의 채용과정에 대해 설명해는 대화 내용.
최 씨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수습직원 채용을 하기 전 이미 그의 합격이 예정돼 있었다. 채용 공고가 나가기도 전에 한 아무개 부장이 최 씨의 친인척에게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냐, 추천해주면 먼저 채용하겠다’고 물어왔다. 한 부장은 최 씨를 추천받아 따로 만났고, 채용날짜 전에 이력서를 넣으라고 지시했다.
한 아무개 팀장은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여러 분들에게 사전에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며 “추천인과 일전에 같이 일해본 적이 있을 뿐이지 아무 관계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목동 빙상장의 비정상적인 운영행태와 근무체계는 1인자인 유태욱 소장이 강압적으로 조직을 이끄는 데서 기인한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여러 전현직 빙상장 관계자는 유 소장의 폭언과 강압적 행태에 대해 폭로했다. 유 소장 측근 A 씨는 “소장님이 갑질을 한다기보다는 업무스타일이 강압적인 게 있다. 그래서 폭언 논란이 나온 거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측근도 유 소장의 강압적 업무 방식을 인정했지만, 그의 행태는 업무방식보다는 갑질에 가깝다는 것이 직원들의 주장이다. 앞의 김 씨는 “입사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부장님과 함께 소장실에 인사를 하러 갔는데 15분간 야이XX 등 욕설을 하며 화를 냈다”며 “빙상장에 와보면 누구나 비정상적인 조직운영을 느낄 수 있다. 공기부터 다르다”고 설명했다.
유 소장은 어떻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걸까. 폐쇄된 스포츠계 구조가 유 소장의 갑질을 지속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유태욱 목동실내빙상장 소장은 전명규 전 한국체육대학교 교수와 빙상계 양대산맥으로 불린다. 쇼트트랙 대척점에서 섰던 둘은 화해를 한 뒤 빙상계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빙상계에서 선수와 강사, 코치 혹은 관련 직업을 가져야 겨우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데, 유 소장의 손에 빙상인의 생사여탈이 달려있다는 것.
목동빙상장에서 23년을 근무한 이 아무개 과장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이후 여러 언론에 목동빙상장 문제와 유 소장의 폭력성이 보도되자 유 소장은 제보자를 색출해내고자 했다. 제보자로 지목된 이 씨는 홀로 목동빙상장과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목동빙상장은 1989년 국고와 서울시 예산 98억 원을 들여 설립됐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을 맡았지만 적자 우려로 운영권을 포기하고, 빙상연맹과 아이스하키협회가 공동 설립한 재단법인 ‘한국동계스포츠센타’가 목동링크를 28년간 운영해왔다. 목동 링크는 2016년 12월 서울시체육회가 운영권을 거머쥐며 새 운영자를 맞았다.
놀랍게도 청산하기 전 한국동계스포츠센타의 마지막 사장이 유태욱 현 목동빙상장 소장이다. 목동빙상장 직원들은 서울시체육회가 운영을 맡으며 내부 문제가 해소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서울시체육회는 다시 그를 소장으로 임명했다.
앞의 이 과장은 “십수 년을 동계스포츠센타 지배 아래 있다가 서울시체육회가 들어온다고 해 빙상장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는데, 설마 했던 유태욱 사장이 소장으로 왔다”며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라도 용기를 내야 빙상장 식구들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사람과 운동’은 지난 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목동빙상장 유태욱 소장과 박원순 서울시체육회장 등에 대해 진정서를 제출했다.
서울시는 빙상장 내서 발생한 폭언과 폭력, 채용비리에 대해 지난 8월 특정감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결과가 없자 감사 의지가 있는 것 맞냐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시 감사팀 관계자는 “우리도 전방위적으로 조사를 하고 있어 시간이 걸렸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고 11월 안으로 마무리 지을 계획”이라며 “제기된 채용비리와 관련한 사안도 감사 대상에 포함해 전방위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