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바이오기업 R&D 회계기준 강화 후폭풍
인천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연합뉴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금융당국의 바이오기업 회계처리 관련 감독지침 탓에 “내년 4월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어려운 시기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구개발(R&D)을 위주로 하는 바이오벤처의 손실이 불 보듯 뻔하다는 이야기다. 사업 초기에 투자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제약·바이오의 경우 재무제표가 악화되면 자금난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은 “상장사에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투자받기도 어려운 스타트업의 경우 매출이 없어 자본잠식 상태까지 갈 수 있다”며 “스타트업에 한해서라도 연구개발비 자산화에 대한 부분을 자유롭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R&D를 장려하면서도 스타트업에 대한 보호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 대부분은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을 목표로 삼고 신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회계처리 지침을 밝히기 전후로 일부 제약·바이오 상장사들은 연구개발비 자산화 요건을 강화한 정정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고 회계처리를 수정했다. 무형자산으로 처리됐던 연구개발비를 비용처리하며 바이오기업들의 실적이 급감했다. 대표적으로 차바이오텍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억 원 흑자에서 67억 원 적자로 전환했고, 메디포스트는 지난해 영업손실이 500만 원에서 36억 원으로 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바이오업계에서는 내년 수정된 감사보고서에 따라 중소 스타트업들이 투자나 대출을 받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회계기준이 엄격해졌기 때문에 벤처들이 대출받는 데 제약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법인의 경우 올해 예산을 내년 3월까지 신고하기 때문에 내년 4월께 흑자·적자 여부를 알 수 있다”며 “은행이나 투자자 입장에서 기업의 재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재무제표상 손익이 마이너스라면 대출이나 투자를 해주겠느냐”고 말했다.
은행들은 아직까지 금융당국의 회계처리 감독지침에 따라 제약·바이오기업들의 감사보고서가 수정되는 것에 대한 논의는 따로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바이오기업 회계 감독지침과 관련해 이야기가 나온 것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회계기준이 바뀌었다고 해서 여신업무규정이나 심사규정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여신심사규정이 업계별로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약·바이오기업이라 해서 다른 내용을 부가적으로 보거나 감안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자산으로 인식하던 것을 비용으로 빼도록 회계기준이 바뀌었다면 말 그대로 ‘회계기준’이 바뀐 것으로서 그로 인해 자산이 줄어들었다면 은행들은 자산이 줄어든 것으로 본다”며 “제약·바이오업계 회계이슈는 연중이슈여서 회계연도가 끝나고 내년이 돼야 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감독지침과 관련해 논의된 바는 아직 없다”며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기술금융 쪽에서 풀어나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술금융은 담보력이 취약한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에 기술력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다. 은행권은 2014년 7월부터 기술금융을 지속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016년 7월 기준 16만 2000건, 80조 원 규모였던 기술신용대출은 지난 10월 기준 37만 5000건, 162조 원 규모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테슬라 요건’ 뭐길래…‘가능성’ 있는 적자 기업 상장 ‘OK’ 2017년 국내 도입된 ‘테슬라 요건’은 미래성장 가능성이 인정되면 현재 적자 기업이라도 상장이 가능한 제도다. 미국의 적자 기업 테슬라의 나스닥 상장 사례를 본 따 만들어졌으며 정식명칭은 ‘이익미실현기업 상장요건’이다. 기술특례상장과는 차이가 있다. 기술특례상장은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을 외부 검증기관의 심사 뒤 수익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상장 기회를 주는 제도다. 반면 테슬라 요건 상장은 주관 증권사에서 자격을 심사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거래소에서 기술성 평가를 하므로 기술특례상장보다 덜 까다롭다. 다만 테슬라 요건 상장의 경우 증권사의 추천을 통해 상장하고, 상장 후 3개월 이내에 주가가 하락할 경우 주관 증권사가 공모가의 90% 가격으로 주식을 되사야 하는 환매청구권(풋백옵션)을 투자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 이 요건을 더 완화해 상장 진입 문턱을 낮췄다. 시가총액 500억 원 이상, 직전연도 매출 30억 원 이상이던 요건을 시총 100억 원 이상, 자기자본 250억 원 이상 혹은 시총 300억 원 이상, 매출액 100억 원 이상으로 완화했다. 최근 한국거래소는 ‘테슬라 요건’에 입각한 해외 바이오기업의 상장을 위한 구체적인 심사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올 초 금융당국이 기준을 완화하면서 성장 가능성 있다고 평가되는 기업들이 상장을 고려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지난 2월 테슬라 요건 상장 1호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업체 ‘카페24’ 이후 2호 기업은 감감무소식이다. 앞서 지난 8월 테슬라 요건에 따른 상장을 신청했던 바이오기업 툴젠은 특허 논란에 휩싸이며 연내 코스닥 상장이 어려워졌다. 정작 바이오업계에서는 테슬라 요건 상장을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거래소가 테슬라 요건에 ‘심사상 필요 시 거래소 비용으로 기술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단 탓에 기술특례상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 한 증권사 관계자는 “테슬라 요건 상장의 경우 가능성 있는 기업에 요건을 완화해 상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취지가 나쁘지 않지만 심사 과정에서 기술평가를 한다는 것은 기술특례상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최근에는 적자 기업이 상장을 시도할 만큼 대내외 상황이 좋은 편도 아니다”고 말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바이오기업들은 테슬라 요건 상장보다 기술특례상장을 더 원하는데, 테슬라 요건은 ‘적자’에, 기술특례상장은 ‘기술’에 초점이 맞춰진 듯 보이는 분위기도 영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