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차례 폭행에 성폭행까지 저질러…피해자 측 “미온적 경찰 수사에 더 분통”
이달 초 부산에 거주 중인 A 씨는 본가가 있는 대구를 찾았다. 체중이 많이 줄어들고 수척해진 딸의 모습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부모는 무슨 일이 있는지 추궁했다. 어렵게 말문을 연 딸의 입에서는 믿을 수 없는 충격적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난 두어 달 동안 남자친구에게 감시 받으며 오피스텔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휴대폰 번호도 변경된 채 공포에 떨었다는 것이었다. A 씨는 그동안 자신이 당한 폭행을 부모에게 털어놨다.
피해자의 가족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김 씨가 평소 훌라후프 조각을 들고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던 사진을 올렸다. 해당 도구는 폭행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부산에서 휴대폰 대리점을 하며 인터넷방송 BJ로 활동하는 김 아무개 씨(29)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A 씨(22)와 알게 되고, 3개월 전 교제를 시작했다. 타지에서 혼자 살던 A 씨는 자연스레 남자친구 김 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A 씨에 따르면 첫 번째 폭행은 차 안에서 벌어졌다. 10월 13일 김 씨는 차를 타고 이동 중에 A 씨에게 전 남자친구들에 대해 물었다. A 씨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김 씨는 차 뒷좌석에 있던 훌라후프 조각을 집어 들어 A 씨의 손과 허벅지 등에 수십 차례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고는 자리를 주차장으로 옮겨 다시 손바닥과 허벅지를 추가로 폭행했다.
첫 폭행 다음 날 김 씨는 “너를 괴롭혀주고 싶다. 뜨겁게 해주겠다”며 옷을 입고 있는 A 씨 배에 스팀다리미를 올려 2도 화상을 입혔다. 폭행 후 잠든 김 씨 몰래 A 씨는 모친에게 전화를 걸었고 화상을 입었는데 어느 병원을 가야 하냐고 물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A 씨 부모는 딸이 단순히 가벼운 화상을 입은 줄만 알았다.
김 씨가 스팀다리미로 A 씨의 배에 화상을 입힌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그 이후로 폭행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김 씨는 이틀에 한 번씩 훌라후프로 손 엉덩이 허벅지 등 신체를 가리지 않고 폭행했다. 뺨을 때리고 휴대폰을 배에 던져 휴대폰 모양대로 멍자국이 들기도 했다. A 씨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18일 새벽 3시에는 김 씨가 ‘네 전 남친이 생각난다’며 A 씨 옷을 벗기고 엎드리게 한 후 엉덩이를 폭행했다. 19일 새벽에는 ‘어제의 분이 풀리지 않는다’며 옷을 벗은 상태에서 또 다시 폭행을 가했다. 21일 새벽 2시에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기 때문에 훈육이 필요하다’며 손바닥을 때렸다. 23일 새벽 6시에는 ‘갑자기 나쁜 생각이 든다’며 뺨을 한 차례 폭행했고 24일에도 왼쪽 아랫배를 수차례 가격했다.
A 씨가 성폭행을 당하던 날 흘렸다는 코피 흔적.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11월부터는 김 씨의 감시와 폭행이 더욱 심해졌다. 김 씨는 A 씨의 휴대폰을 검사하고,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거 아니냐. 사실대로 말하라’며 근거 없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너 같은 X는 맞아야 한다’며 휴대폰을 배에 던지는 폭행이 이어졌다. 폭행은 성폭행으로 이어졌다. 11월 4일 새벽 김 씨는 ‘전 남자친구가 생각난다’며 강제로 성폭행을 시도했다. A 씨는 거부하며 발버둥 쳤으나 김 씨는 힘으로 짓누른 채 강간행위를 지속하고, 울며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A 씨가 코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서야 행위를 중단했다. 이후에도 김 씨는 여러 차례 A 씨를 찾아가 협박과 폭행을 일삼았다.
A 씨의 폭행 및 성폭행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과 커뮤니티에 피해자 가족이 글을 쓰며 알려졌다. 부산진경찰서는 12일 김 씨를 특수상해 및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그런데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대응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A 씨의 어머니는 “김 씨와 딸의 통화녹취와 폭행이 이뤄졌던 차 블랙박스, 범행도구인 훌라후프 조각에 대해 잘 챙겨봐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경찰은 거주지 CCTV나 차량 블랙박스 확인 같은 최소한의 수사도 하지 않았다”며 “도리어 이것저것 확인해달라는 요구에 담당 수사관이 화를 내고 성범죄 피해자에게 필요한 해바라기센터나 심리 상담에 대한 안내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에 있어 민원인은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조사과정에서 당황하거나 실망할 수 있다”며 “사건이 접수된 지 10일이 채 되지 않은 사안이라 자세한 상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수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누리꾼들은 엽기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김 씨로 추정되는 작성자가 올린 글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부산진경찰서에 신고가 접수된 시기 한 포털사이트의 질문하기 코너에 질문 글이 올라왔다. ‘잘 만나던 여자친구가 갑자기 경찰에 신고를 했다. 어린 여자친구가 철이 없어서 바로잡아주기 위해 폭력을 가한 것뿐이다. 스팀다리미를 사용해본 적 없어서 실수로 화상을 입힌 것이며, 강제 성관계는 절대 아니고 성기가 커서 여자친구가 코피가 났다. 그 이후로도 여자친구와 잘 지내왔으며 전과도 없고 꾸준한 봉사활동을 해온 제가 어떤 죗값을 치르게 되는지 궁금합니다’라는 내용이 주된 골자다.
현재 김 씨는 자신의 폭행은 인정하지만 나머지 혐의는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의 어머니는 “경찰이 수사 중인 와중에도 김 씨는 인터넷방송에 나와 딸이 경찰에 신고한 걸 언급하며 2차 가해를 했다”며 “직접 당하고 보니 데이트폭력에 여성들이 너무나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는 걸 알겠다.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