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이 젊은 검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검찰에서 밤샘 조사를 했는데도 잘 버티더라고요. 풀어주면 도주의 우려가 있습니다.”
젊은 검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검사는 노인의 건강상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노인의 얼굴에 순간 분노와 서글픔의 표정이 겹쳤다. 검사는 그 노인에게 물었다.
“피고인은 국정원장으로 임명해 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매달 돈을 뇌물로 상납했죠?”
그 노인이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었다. 다음날 구치소에서 만난 전 국정원장은 눈물을 흘리면서 죽고 싶은 심정을 털어놓았다. 경찰청장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그가 구치소에서 이런 호소를 했다.
“수갑을 채우고 포승에 묶어 데리고 가는 도중에 경찰관들이 많은 곳에 일부러 나를 세웠어요. 전의 부하들이 죄수복을 입은 저를 알아보고 말없이 경례를 하더라고요. 모멸감으로 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어요.”
살인범도 모자를 씌우고 얼굴을 가려주었다. 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사람들은 무죄로 추정된다. 그게 법이다. 그러나 정권에 밉보인 인물들은 법의 밖에 있는 투명인간이었다.
기무사령관이 투신해 숨졌다. 담당 변호사는 검찰의 모욕주기 수사가 원인이라고 분노했다. 장군 출신인 그에게 수갑을 채우고 포토라인에 서게 했다. 명예와 자존심을 등뼈같이 여기고 살아온 그는 “살아도 산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30여 년 전 사법연수원생으로 수사실무를 배울 때 자백을 끌어내는 기법이 적힌 책자를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중에 모욕주기도 있던 것 같다. 명예심이 강한 교수가 잡혀오면 막말로 무시하면서 화장실 청소를 시켜 보라고 적혀 있었다.
부자들은 굶기다가 싸구려 빵을 던져주어 허겁지겁 그걸 뜯어먹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일순간에 허물어지면서 무릎을 꿇는다는 내용이었다. 일제시대부터 전해져 오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방법이 들어있는 책자였다.
우리들은 교육도 나빴다. 사법연수원 검찰 출신 교수는 검사가 되면 마주치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지 말고 나이 30년 위까지는 맞먹으라고 했다. 검사는 속칭 ‘곤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민주화가 된 세상에서도 그런 독들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데서 출발한다. 법은 검사들에게 인권을 옹호하라고 소명을 부여했다. 검사들 중 일부는 정권의 시녀가 되어 권력 눈 밖에 난 사람들의 먼지를 털고 조리돌리고 언론에 수사기밀을 흘려 인격살인들을 자행하고 있다. 무늬는 엘리트로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이미 영혼이 죽어있는 걸어 다니는 시체라는 생각이 든다. 거센 바람이 아니고 따뜻한 햇볕이 사람의 옷을 벗게 한다. 인간을 존중하는 따뜻한 마음을 속에 품고 진실을 파헤치는 검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