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이웃 돕는 줄 알았던 헌옷수거함, 알고보면 수익사업 둘러싼 잡음...어려운 관리 문제로 민원도 속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등장한 ‘헌 옷 수거함’은 나눔의 상징이었다. 지자체나 복지단체가 헌 옷 수거함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기부된 옷이 전부 불우이웃을 위해 쓰이는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이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헌 옷 수거함을 설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발길을 끊은 이들도 적지 않다. 또 노후 수거함이 난립하고 주위에 쓰레기가 쌓여 지자체에 수거함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도 쇄도하고 있다. 이에 많은 지자체가 헌 옷 수거함 정비를 통해 공공을 위한 수익창출과 수거함 주변환경 정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나섰지만 여전히 헌 옷 수거함을 둘러 싼 불신은 이어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헌 옷 수거함을 관리 혹은 운영 중인 비영리단체들이 개인 수거업자들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사진=박혜리 기자
그동안 헌 옷 수거함은 대개 개인이나 고엽제전우회, 지체장애인협회 등 비영리단체가 설치·관리해 왔다. 원래 길가에 설치된 의류수거함은 불법 적치물에 해당하지만, 기부라는 좋은 의미로 알려진 만큼 그동안 지자체들은 민원이 접수되지 않는 이상 특별히 이를 단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후 수거함의 방치, 불법 도로 점용 등의 문제로 민원이 쇄도하면서 일부 지자체는 기존 헌 옷 수거함을 철거하고 필요한 구역에만 새로운 수거함을 설치하는 정비 작업을 펼쳐 왔다. 실제로 정비작업이 진행된 종로구, 용산구 등은 더는 개인이 설치한 수거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정비작업을 시행한 지자체는 대개 관내 비영리 단체와 ‘재활용 의류 수거함 관리 협약’을 맺고 있다. 협약을 맺은 비영리 단체들은 기존에 헌 옷 수거함을 설치해 운영 중이던 단체들로 이들은 수거함 관리, 헌 옷 수거, 수익금 관리 등 사실상 헌 옷 수거함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지자체 명이 적혀 있는 의류 수거함이지만 지자체 관계자들은 수거함의 수익이 어떻게 이용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헌 옷 수거함 현황이나 수익에 관련해서 정확한 자료가 없다. 구청이 협회 쪽에 확인해야 하고 민원 때문에 철거·이전되거나 추가로 늘어나는 등 수시로 상황이 바뀐다”고 설명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2015년 4개 비영리 단체가 연합해 만들어진 ‘용산구 의류재활용협의회’와 협약을 맺고 헌 옷을 거둬가고 있다”며 “헌 옷 수익금의 10%는 관내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이용되지만, 나머지 수익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비영리단체 관계자들은 헌 옷 수거를 통해 창출한 수익을 인건비, 장학금, 운영비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몇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헌 옷을 거둬가고 있는 A 단체 관계자는 “설치한 옷은 수출하거나 부녀회나 바자회 등에 판매한다. 이를 가공해 ‘보루’라는 기름걸레로 팔기도 한다. 폐지와 달리 헌 옷은 아직 돈이 되는 건 사실”이라며 “수익금은 단체에서 인건비 등으로 쓰이고 일부는 장학금으로 기부되기도 한다.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나서는 지자체에 헌 옷 수거함 한 개에 5000원~7800원의 도로점용료도 내고 있다”고 밝혔다.
지자체와 수거함 관리 협약을 맺은 단체나 자체적으로 수거함을 운영하는 단체 중에는 헌 옷 수거 업무를 또 다시 개인에게 위탁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개인 수거업자가 복지단체의 명의를 도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이들과 비공식적인 거래를 맺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A 단체 관계자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속한 일부 단체의 경우 그들이 직접 움직이기가 힘들다 보니 수거함 하나당 얼마씩을 받고 개인에게 위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장애인협회 관계자는 “관내 장애인연합회 일부가 개인 수거업자와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장애인협회들이 재정이 열악하다 보니 개인 수거업자들에게 후원을 받고 헌 옷 수거 업무를 맡기는 상부상조 구조”라고 귀띔했다.
헌 옷 수거함 정비 작업을 진행하지 않은 지자체 관계자들은 헌 옷 수거함을 둘러싼 단체들의 이해다툼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시의 한 구청 관계자는 “서울시의 많은 구에서 헌 옷 수거함 정비사업을 시행했기 때문에 이를 검토 중이지만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생각보다 복잡해 쉽지가 않다”며 “(헌 옷 수거함 정비사업과 관련해) 비영리 단체들과 몇 차례 간담회를 했지만 어떻게 구역을 나눌지, 어떤 방식으로 정비 사업을 할지 등에 관해 얘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져 아직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고 털어놨다.
헌 옷 수거함 운영·관리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비영리 단체들 역시 날마다 민원과의 전쟁이라고 토로한다. 헌 옷 수거함은 주로 전봇대에 묶여 있는데 주택가에서 전봇대 인근에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가 많아 주기적인 주변 관리가 필수적이다.
앞의 A 단체 관계자는 “특히 집값이 비싼 동네는 쓰레기가 조금만 쌓여 있어도 구청에 민원을 넣기 때문에 일주일에 2~3번씩 찾아가 주변 쓰레기를 치운다”며 “불만은 있지만, 통이 철거되는 것보다는 그래도 유지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낫기 때문에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헌 옷 수거함을 관리하는 한 남성은 “단체에서 시와 협약을 맺어 헌 옷 수거함을 관리하는데 수거함 주변은 물론이고 안에도 쓰레기나 재활용 안 되는 물건들을 버려서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있다”며 “민원이 들어와 수거함을 철거하거나 이동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변에 카메라가 있는데도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수거함 근처에 쓰레기를 버린다. 그러면서 마치 수거함 때문에 주변이 더러워졌다고 하니 답답한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