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새끼, 왜 이런 작자를 나에게 맡기는 거야?’
주애란은 겉으로 웃는 시늉을 했으나 속으로 김영택에게 이를 갈았다. 김동철은 완전히 비호감이었다. 주애란은 남자들을 평가할 때 치아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하얀 치아가 가지런하면 미남이고 치아가 삐뚤어졌거나 금니를 했으면 비호감이었다. 김동철은 금니를 하고 있는 데다가 뻐드렁니까지 있었다.
‘자기가 은행장이 되게 도와 달라고? 내 남편도 아닌데 왜 도와 줘?’
김영택을 만났을 때 그는 다짜고짜 김동철과 골프를 치라고 제안했다. 고급 한정식 식당인 서강에서 풀코스로 맛있게 식사를 하던 주애란은 입맛이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내가 왜 그 사람과 골프를 쳐?”
주애란은 김영택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2층 창가라 창으로 석양이 지는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밖은 후텁지근했으나 은밀한 공간인 방안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 정도로 쾌적했다.
“골프를 친다고 뭐가 잘못돼?”
김영택이 비굴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로 마신 안동소주로 인해 그의 얼굴이 불콰했다.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보여?”
주애란은 김영택이 나이가 훨씬 많아도 반말을 했다.
“그 사람이 우리나라 금융계 실세야. 사귀어보면 손해 볼 일은 없을 거 아니야?”
“이면을 이야기해봐.”
“무슨 이면?”
“단순히 골프를 치는 거 아니잖아?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짓을 해?”
“게다가 명예까지 갖추고 있는 교수님이고….”
김영택이 느물거리고 웃었다. 주애란은 벽에 걸린 선녀도를 힐끗 쳐다보았다. 누구의 그림일까. 꽤나 고가로 보이는 그림은 매미 날개 같은 옷을 입은 선녀들이 하늘을 날면서 비파를 타고 퉁소를 부는 진품이어서 식당의 품격을 한껏 높여주고 있었다.
“나보고 수청을 들라는 거지?”
“어떻게 명색이 대학교수에게 수청을 들라고 하겠어? 그건 너무 오버하는 거고 그냥 소개팅 정도라고 생각해. 두 사람 눈이 맞아서 뭘하든지 그건 내가 알바 아니고….”
“왜 이런 일을 주선하는 거야? 김 전무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지 이실직고 해봐.”
“나는 몇 달 후에 은행장이 되려고 그래.”
“어이없네. 김 전무가 은행장이 되기 위해 나를 김동철에게 바치겠다는 거 아니야? 차라리 김 전무 부인을 바치지 그래?”
주애란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순간 김영택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온갖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는 김영택도 제 마누라가 바람을 피우는 꼴은 못 보는 모양이다. 김영택이 이런 말을 눈도 깜박이지 않고 하는 것은 뻔뻔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그러나 주애란은 화를 내면서도 은근히 호기심이 일었다. 김동철은 신문지상에서 사진으로 보았고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실물을 보는 것은 다르다. 화면이나 사진을 통해서 보는 김동철은 차가워 보이지만 실물은 어떨 것인가. 아니 그의 몸은 어떤가. 요즘은 50대라도 능력 있는 자들은 건강관리를 잘 한다. 특히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은 죽을 둥 살 둥 체력 단련을 한다.
“그렇게 심하게 말할 필요는 없어. 내가 원하는 것은 소개팅 수준이라고. 나머지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하는 거고…. 골프가 끝난 뒤에 그냥 헤어지든지 호텔로 가든지 알아서 하라니까.”
주애란은 김영택의 말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골프를 같이 치는 것은 소개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최상위 권력자, 경제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부총리와의 소개팅이다. 그러나 소개팅이라고 해도 김영택을 위하여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왜 김 전무를 위해 소개팅에 나가야 돼?”
“대신 내가 자기 수청을 들어줄게.”
김영택이 웃지도 않고 정색을 하고 말하는 바람에 주애란은 풋하고 웃음이 터졌다. 이 인간은 정말 별종이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도 아니면서 대단한 존재라고 착각을 한다.
“김 전무가 뭐가 대단해서 나에게 수청을 들어?”
“30cm라고 그랬잖아?”
“20cm도 안 되겠던데 뭘 그래? 흔해 빠진 한국 표준에도 모자라던데.”
주애란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김영택의 노골적인 말이 짜릿한 감각이 되어 혈관을 누볐다.
‘제기랄, 이 인간이 묘하게 사람을 자극하네.’
“수청이라는 말의 의미는 알겠지?”
“그야 이 몸을 바치는 거지.”
“아니. 단순하게 바치는 게 아니야.”
“그럼?”
“내가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야.”
“어떻게 할 건데?”
김영택이 긴장한 눈빛으로 주애란을 쳐다보았다.
“사마귀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수컷의 머리를 깨물어 먹어.”
“그러면 좋은가?”
“고양이는 그 순간에 수컷의 목덜미를 물지.”
“이야! 뒷덜미가 서늘해져 오네.”
“나는 장난이 아니니까 김 전무가 선택해.”
김영택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주애란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살피느라고 눈이 커져 있었다.
“좋아. 설마 잡아먹히기야 하겠어.”
김영택이 결단을 내렸다. 주애란은 그날 밤 호텔에 가서 철저하게 관능의 쾌락을 즐겼다. 김영택의 왼쪽 가슴과 엉덩이에 선명한 이빨자국도 남겼다.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키스마크가 찍히거나 와이셔츠에 루주가 묻으면 상대방 배우자가 눈치를 채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애란은 김영택이 아파서 몸부림을 칠 때까지 깊은 이빨자국을 남겼다.
‘네 몸뚱이에 내 이름을 새기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
주애란은 그 생각을 하자 조금은 통쾌했다. 어을우동은 자신이 관계한 여러 남자들의 이름을 자신의 몸뚱이에 문신으로 남겼다. 어을우동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주애란은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을우동이 마조히즘을 즐기는 여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주애란은 반대로 남자들의 몸에 이빨자국을 남겼다. 마치 영역 표시를 하듯이 너는 내 남자라는 흔적을 남겼다.
김동철이 컵을 향해 퍼팅을 하자 골프공이 타원형을 그리며 날아갔다.
“나이스 샷!”
주애란은 공이 깃발을 세운 컵 앞에 떨어지자 환호성을 질렀다. 골프 구력이 오래된 솜씨다. 하기야 금융계의 수장이오, 부총리라는 관직까지 오른 김동철이니 오죽 골프를 많이 쳤겠는가.
“교수님이 지켜보고 있어서 그런지 퍼팅이 잘 되지 않습니다.”
김동철이 멋쩍은 듯이 웃으면서 음침한 눈빛으로 주애란의 몸을 더듬었다. 주애란은 하얀 스커트에 하얀 골프웨어를 입고 있었다. 무릎 위로 한 뼘이나 올라간 스커트 자락 아래 통통한 허벅지와 종아리가 곧게 뻗어 있다. 처녀들이라고 해도 이보다 나을까. 상의는 단추를 하나 풀어 뽀얀 젖무덤이 절반이나 드러나 있다. 살결은 눈이 부시게 희다.
‘교수라고 해도 여자는 여자지.’
김동철은 마른침을 꿀컥 삼켰다. 봉긋하게 솟아 오른 가슴이며 허리를 숙일 때마다 탱탱한 엉덩이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호호호. 그래도 잘 치시는데요. 실수가 없으시잖아요?”
주애란은 유쾌하게 웃으면서 반응을 보였다.
“살결이 참 곱습니다.”
“어머, 부총리님은 제 몸만 보고 계시나 봐요.”
주애란은 김동철에게 하얗게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그렇습니까? 참 이상한 일입니다. 교수님만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뛰고 행복해 지네요.”
“호호호. 고마워요.”
“이게 사랑일까요?”
김동철의 눈빛이 더욱 노골적으로 그녀의 몸에 달라붙었다.
“사랑이라고 생각할게요. 그래야 저도 행복하죠.”
주애란은 눈웃음을 쳤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김동철이 작업을 걸어오고 있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 김영택과 최민준은 멀리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면서 오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