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고 버림으로써 집착 벗어나는 ‘단샤리’, 물건뿐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필요
물건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정리정돈이 필요하다. 사진은 출근길의 직장인들. 고성준 기자
일본에서 미니멀리즘 유행이 시작된 것은 2009년 출판된 베스트셀러 ‘단샤리(斷捨離)’부터다. 여기서 단샤리란 끊을 단(斷), 버릴 사(捨), 떠날 리(離)로, 불필요한 물건들을 과감히 끊고 버림으로써 집착에서 벗어나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단샤리 제창자인 야마시타 히데코는 “물건뿐 아니라 인간관계, 인생 전반에도 단샤리를 적용할 수 있다”며 “그 결과 시간의 여유, 인간관계의 여유가 생겨난다”고 조언했다. 단샤리의 기본은 스스로 ‘필요와 불필요’, ‘유쾌와 불쾌’, ‘적합과 부적합’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 공간은 안락하게 바뀌고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심리요법가 가와바타 노부코는 “물건을 정리하지 않고 사들이기만 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나 외로움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본래 물건에 집착하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행동들이다. 진짜 갖고 싶은 것, 필요한 것이 뭔지 모르니, 가치 없는 잡다한 물건으로 허한 마음을 채우려 애쓴다.
게다가 물건이 많으면 부산스럽게 느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양한 물건이 눈에 들어와 뇌가 정보를 처리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필요한 물건을 치우면, 공간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쾌적한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가와바타는 “인간관계 역시 단샤리를 시도해보라”고 권했다. “즐거운 상대가 누군지 깨닫게 되는 동시에 번거로운 사람과는 영리하게 거리를 두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인간관계 정리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관계 정리를 망설인다. 이와 관련, 가와바타는 “불편한 상대에게 정면으로 ‘싫다’고 선언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만남에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할지, 교제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등 관계를 되돌아보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관계를 정리하기 전, 물건을 통해 단샤리 감각을 익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가’ ‘정말 좋은가’ ‘이 공간에 적합한가’ 등을 되물어 물건을 정리하는 작업은, 곧 자신의 본심을 알아차리는 훈련이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자신의 마음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연스레 소유욕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고, 타인과 비교하는 일도, 물건에 휘둘리는 일도 없어진다. 더 나아가 번거로운 인간관계 고민도 훨씬 줄어들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억누른다’는 데 있다. 문제를 다 끌어안고 가는 사람, 남에게 도움 요청하는 게 서투른 사람, 혼자 열심히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흔히 말하는 ‘착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타입은 주변 혹은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맞춰주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관계라고 하면 주위와의 관계를 떠올리지만, 실은 자신과의 관계도 포함된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도록 하자.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가와바타는 이런 까닭에 “인간관계 단샤리는 남이 아닌, 나를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억누르고, 상대만 채워주려 한다면 무의식 중에 스트레스가 되어 버린다. 우선 자기 자신부터 만족시키고 남을 대하라. “그래야 원활한 인간관계가 가능해지고,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도 줄어든다”는 얘기다.
신조어 ‘단샤리’가 나온 지 10년을 맞았다.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려는 미니멀리즘 트렌드는 이제 인간관계에도 스며들고 있다. 실제로 관계 정리에 도전한 34세 회사원 남성은 “인맥을 넓히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여러 교제를 통해 피곤함만 가중됐다. 쓸데없는 교제에 신경 쓰지 않게 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만족한다”고 밝혔다.
특히 SNS 친구관계 정리가 효과적이었다. “트위터 친구를 줄였더니 여가 시간이 늘어났으며,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의 글을 보지 않아 스트레스도 격감했다”는 의견이다. 덧붙여 인간관계 단샤리는 연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28세 여성은 “인간관계를 다시 되돌아봄으로써 정말 내게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며 “결과적으로 지금의 남편과 결혼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뭐든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38세의 공무원 남성은 “기준 없이 인간관계를 정리한 결과,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이페이스’ 성향이 강해져 무조건 편한 사람만 찾게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단순히 자신과 맞지 않는 상대와 연락을 끊어버리는 것이 인간관계 단샤리가 아니다. 나름의 기준과 신념이 필요하다. 그때마다 대조하며 정리해가는 것이 포인트. 그렇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생에서 마이너스가 되고 만다. 어떻게 관계 정리를 해야 할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아래의 체크리스트를 참고해보자. 자신의 인간관계를 재검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인간관계 단샤리 체크리스트 한 사람씩 떠올리고 해당 항목에 체크한다. 예를 들어 연락을 먼저 해오지 않는 후배 김 군, 일 년에 2~3번 만나는 박 아무개 씨 등등. A, B, C 항목별로 몇 개가 해당되는지를 통해 단샤리의 필요도를 확인할 수 있다. 만일 합계 수가 같을 경우 2주 후 다시 한 번 체크한다. #A가 많은 사람 : 당신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지금까지 이상으로, 앞으로도 만남을 소중히 이어가라. #B가 많은 사람 : 중요도는 보통.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현상유지를 해도 좋다. 지금 정도로 관계를 이어가자. #C가 많은 사람 : 교제를 재고해야 할 사람. 당신에게 있어 조금 부담스러운 존재다. 필요에 따라 만남을 줄이는 것이 편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