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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의 연예계비리 수사가 파문을 불러오면서 업계 1위인 SM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이수만씨 의 향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래픽=장 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유신철폐, 독재타도 등 정치적 소용돌이가 대학가를 휩쓸던 70년대 초반, 젊은이들 사이에 히트쳤던 ‘모든것 끝난 뒤’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해 직접 부른 가수는 이수만씨였다. 그는 당시 낡은 청바지와 통키타 하나를 둘러매고 이 노래를 부르며 상처난 젊은 지성을 어루만졌다. 서울대 농대 출신의 학사가수라는 점도 이씨에 대한 인기를 높이는 요소였다.
행복, 한송이꿈, 파도 등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불러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인기를 바탕으로 달변인 그는 80년대 중반까지 공중파 방송의 각종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며 10년이 넘도록 가수와 MC로서 이수만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그후 그는 5공화국이 절정기에 이르렀던 지난 8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로 유학을 떠나면서 연예계에서 표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의 유학길은 조부-부친-형으로 이어진 교육계 집안의 전통을 잇기 위한 공부를 위해서였다.
아이큐 1백50의 수재인 이수만 신드롬은 그가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춘 지 몇년이 지난 89년에 다시 재현됐다. 가수나 MC가 아닌 사업가로 변신해 등장했다.
그가 세운 회사의 이름은 SM엔터테인먼트(옛 이름 SM기획)였다. SM은 그의 영문이름 이니셜을 딴 것. 연예사업이라는 신종 비즈니스모델을 들고 나타난 그의 파워는 초창기부터 대단했다.
음악에 대한 이해력이 깊었던 그는 90년대 중반 미국시장에서 선풍을 일으킨 힙합을 재빠르게 채택, 현진영-HOT-SES-보아 등으로 이어진 10, 20대 초반의 가수를 키워냈다. 잇딴 성공으로 연예계에서는 그를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렀다. SM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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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S(왼쪽), 보아 | ||
SM은 코스닥 상장 당시이던 2000년에 매출이 1백41억원이었으나, 이듬해에는 2백83억원으로 배나 뛰었고, 음반유통-게임사업 등 다른 사업으로 범위를 넓히는 등 사세가 폭발적으로 커졌다. 이렇게 되자 연예계에서는 ‘이수만 군단’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돌았다.
그러나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그의 신화는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연예계 뇌물비리라는 뜻밖의 암초가 등장하면서 국내 4대 연예계 거물로 부상하던 그의 발목이 잡히고 만 것이다.
물론 이씨는 지난 98년 대표이사직을 전문 경영인인 김경욱 사장에게 넘기고 자신은 현재 이 회사의 전문 프로듀서로 이사라는 직함만 갖고 있다. 경영상에 문제가 있다면 그보다는 김 사장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가 5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오너여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그가 관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에게 직격탄이 날아갈 공산이 크다.
만약 이수만 신화가 붕괴된다면 이는 이제 막 산업화 초기에 들어선 연예 산업분야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 유럽 등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성이 약한 국내 연예산업에 비춰 기반 자체가 흔들릴 위험성도 높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사태가 실적부진과 수익성 악화, 경영진의 사법 처리 등이 맞물릴 경우 관련 기업들의 이합집산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 당분간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부침이 극심할 전망이다.
특히 한류열풍을 타고 지난 2000년 이후 중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붐을 일으키며 성장세를 보이던 연예사업도 침체기에 들어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증권가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SM 등 연예비즈니스 기업의 주식이 고평가 됐었다는 보고서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지난 6월26일 삼성증권에서 SM의 주가가 1만원이 적정가라는 보고서를 냈다. 당시 SM은 1만3천대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사건이 발표된 7월 둘째 주 이후 SM의 주가는 꾸준히 떨어져 요즘은 1만원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이수만 신화의 향배에 대해 연예계뿐 아니라 경제계가 주목하는 것은 이번 사태로 이수만 신화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 것이냐가 가져올 후폭풍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