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회관 강당 450석에 1300명 몰려…하와이에서 온 ‘문파’도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1000여 명이 모여 ‘문파 라이브 에이드’ 토크쇼를 가졌다. 사진 출처는 트위터 ‘더레프트(@1theleft)’.
라이브에이드라는 행사명은 최근 흥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내용 중 대규모 공연 ‘라이브 에이드’를 패러디한 것이다. ‘문파’ 라이브에이드는 2019년 새해 신년회 차원에서 기획됐다.
인터넷방송국 ‘뉴비씨’를 중심으로 기획됐고 어느 한 지지자 모임에서 주도한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대표하는 뚜렷하고 통일된 단체가 없기 때문이다. 라이브에이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온라인 커뮤니티, 다음 카페, 네이버 카페 등에서 홍보됐고 알려졌다. 홍보 포스터 또한 문파 개개인이 직접 제작하고 배포했다.
5일 오후 1시부터 4시로 예정됐던 이 행사는 5시 넘어서까지 진행됐다. 장소는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으로 수용인원은 450석이다. 하지만 이날 참석을 위해 모인 인물은 약 1000~1300명으로 추산됐다. 연령대는 다양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넓은 연령층과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까지 있었다. 가장 멀리서 온 문파는 하와이에서 왔다. 부산과 광주에서 온 문파들은 전세 버스를 통해 여의도 국회까지 왔으며 비용도 각자 마련했다. ‘구글메일폼’을 이용해 신청했고, 1인당 5만 원씩 입금한 뒤 버스에 올라탔다.
간식과 음료도 개개인의 문파들이 각자 협찬과 후원으로 마련했다. 떡과 생수, 스티커, 립스틱 등을 소수의 문파들이 돈을 모아 구매하고 협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3단 케이크, 화환, 다이어리, 방향제 등 다양한 선물들이 준비됐는데, 이 역시 개개인이 사비로 마련한 것들이다.
행사 당일 라이브에이드를 찾아온 이들의 숫자가 강당 수용인원을 훌쩍 넘어서자 의원회관 안내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국회 안내실은 국회를 찾아온 이들에게 임시 출입증을 배부해주는데, 이날 1000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예상치 못하게 들어와 준비해둔 임시 출입증이 바닥난 것이다. 때문에 의회 방호담당 직원들이 출입증을 자필로 써서 만들어 급하게 배부했다.
대강당에는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자리를 찾지 못한 문파들은 좌석과 좌석 사이 복도 계단에 쭈그려 앉았고 급기야 무대 위에도 수십 명이 양반다리 자세로 자리를 잡게 됐다. 무대에도 관객이 앉은 낯선 모습이 연출됐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마저도 자리를 못 구한 인원들은 의원회관 복도에서 서성이며 대기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라이브에이드에는 대강당 대관을 도와준 김진표·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참석했다. 김진표 의원은 지난해 8월 전당대회 이후 대표적인 친문 의원으로 자리 잡은 인물이다. 김진표 의원은 라이브에이드에서 마이크를 잡고 “국회 의원회관을 짓고 이방에 오늘 제일 많이 왔다. 이 기운이 지금 청와대에 전달되고 있을 것 같다”라며 “이 기운이면 우리 경제 살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객석에서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밖에도 김진표 의원은 진행자와 함께 콩트를 통해 경제학 강의에 나섰다. 명절 때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친척 어르신과 이를 반박하는 조카로 상황극을 펼친 것이다. 이를 통해 김진표 의원은 소득주도성장과 생산성 향상, 소득과 투자 등을 20분에 걸쳐서 설명했다. 김종민 의원도 직접 마이크를 잡고 ‘선거제 개편’ 주제로 참석자들과 소통에 나섰다. 하지만 때아닌 ‘민주당 홍보’로 관객에선 장난 섞인 야유도 흘러나왔다.
국회 정개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종민 의원은 “정치개혁을 하는 방법이 있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한국당이 50~60석을 차지하는 방법이다. 총선에서 (우리가) 압승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객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김종민 의원은 이어서 “5급, 6급 공무원이 대통령을 흔든다. 야3당이 같이 흔든다. 민주당이 잘해야 하는데…”라고 말하자 객석에선 야유가 터져 나왔고 김종민 의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김종민 의원은 “(이 행사가) 민주당 에이드 맞느냐”라고 물었고, 객석에선 반대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종민 의원이 “민주당과 문재인을 에이드(구하다)?”라고 또다시 묻자 이번에도 살벌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종민 의원은 “아니, 민주당도 에이드 해야지”라며 장난 섞인 말을 던졌지만, 객석에선 불만이 계속 이어졌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문파는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고 문파들도 장난 섞인 반발을 던졌을 뿐”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진행자는 “대통령을 어떻게 지키실 건지만 말해 달라”고 중재했고, 김종민 의원은 “민주당을 에이드 해줘야 우리 민주당이 대통령을 확 지킨다”라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 장난 섞인 야유는 민주당을 향한 문파들의 ‘앙금’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제명시키지 않은 이해찬 대표와 지도부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행사 시작에 앞서 몇몇 방송국에서 ENG 카메라를 들고 무대에 올라가 촬영을 시도했는데, 문파들이 “내려오라”, “기사 안 써줘도 되니 자리에서 내려가 달라”라고 외쳤다. 이 또한 문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해온 언론에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두 의원의 토크쇼 외에도 자신을 ‘정부가 인정한 좌편향 뮤지션’이라며 소개한 힙합 가수 ‘빅사이즈’도 이곳의 분위기를 돋웠다. 한 문파는 8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빅사이즈 공연할 때 뭔가 움직여서 뒤를 슬쩍 보니 김진표 의원의 다리가 힙합 노래에 맞춰 박자를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한 코너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19대 대선 당시 유세를 재연하기도 했다. 지지자들은 유세현장에서 입던 의상을 입고 그 때의 유세 노래에 맞춰 율동을 보여줬다. 객석에 앉아 있던 문파들 모두 일어나 함께 춤을 따라 추며 강연장의 열기가 고조됐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한 문파는 기자에게 “완벽한 축제였다. 엄청난 감동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기분이 어땠냐는 질문에 “와… 그냥 진짜 엄청…”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문파들의 소감이 이어졌다. “유쾌하고 즐거웠다” “누군가의 지원이 아닌 우리끼리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몇몇은 “다음번엔 더 넓은 광화문 광장에서 모임을 갖자”고 말하기도 했다.
행사가 끝난 뒤 일부 문파들은 뒤풀이를 했다. 국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민주당 당사로 찾아가 이 지사 제명을 요구하며 민주당 지도부를 비판하는 작은 집회를 열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