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절반 미성년인데 성적 대상화” “시대착오적인 미디어” 거센 비판 이어져
문제가 된 주간스파 표지.
잡지는 ‘쉽게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갸라노미 실황중계’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특집 코너를 짰다. 무려 6페이지에 걸쳐 갸라노미에서 여성의 호감을 사는 법, 유혹하기 쉬운 여대생 스타일, 관련 스마트폰 앱 등을 자세히 다뤘는데, 특히 성관계로 발전하기 쉬운 여대를 순위로 매긴 것이 화근이었다.
해당 순위에는 도쿄에 있는 5개의 대학 이름이 실명으로 거론됐다. “관련 앱 개발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주간SPA’가 주관적으로 순위를 매긴 것”이라고 알려진다. 가령 잡지는 모 대학을 선정한 이유로 “OO대학 여대생들은 요코하마 근처에 많이 살며, 막차가 빨리 끊긴다”는 허황된 근거를 들었다.
이 기사가 SNS으로 확산되자 “여성을 경시한 불쾌한 기사”라는 항의가 쏟아졌다. “저질스러운 내용에 기가 막힌다” “해당 학교 학생들의 기분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등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이 이어졌다. 또 인터넷에서는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서명활동이 벌어졌다. 관련 청원은 순식간에 4만여 명을 돌파했다.
실명으로 거론된 대학 측의 항의도 잇따랐다. 한 대학 관계자는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건 시대와 맞지 않다. 이런 기사가 나온 것 자체가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본교 학생 및 졸업생의 명예와 존엄성이 손상됐다는 사실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출판사 측에 엄중히 항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해당 서명운동을 시작한 국제기독교대 4학년 야마모토 가즈나(21)와의 인터뷰를 실어 관심을 모았다. 야마모토는 “여대생 절반가량은 미성년이다. 본래라면 사회에서 지켜줘야 할 존재인데, 성적 대상으로 삼는 현실에 놀랐다. 기사가 나간 뒤의 일은 생각 안 하고 대학명을 거론한 것 역시 매우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참고로 일본의 미성년 기준은 만 20세다.
아울러 야마모토는 “만일 30대 이상의 여성들이 읽는 잡지가 성관계하기 쉬운 남자대학생을 순위로 매겼다면 어땠을까. 남녀를 떠나 성인이 미성년, 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걸 당연시하는 문화는 분명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주간SPA’ 편집부는 “‘친밀해지기 쉬운’이라고 표현해야 할 부분에 선정적인 단어(실제 기사에서는 ‘성관계를 할 수 있는’으로 표기)를 쓰게 됐다”며 “주관에 따라 순위를 매기고, 대학 이름을 공개해 독자의 기분을 상하게 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의 남성 중심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일본은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 평가받는다. 지난해 발표된 세계 성평등 지수를 살펴보면, 일본은 149개국 중 110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미투 운동도 유독 일본에서는 반응이 미지근했다.
이렇듯 성문제에 둔감했던 일본이지만, 이번 소동은 사뭇 반응이 다르다. 포털 사이트 댓글란에도 ‘주간SPA’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에 대해 사회평론가 나카노 마도카는 “지금까지 일본 여성은 이런 기사를 불편하게 느껴도 오히려 비판받을 것을 두려워해 눈을 감아 왔다”며 “하지만 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 등 성문제에 항의하는 분위기가 일면서 일본 사회도 변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의 여성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네티즌은 “여성지도 남성을 물건 취급하고 무시하는 행태를 보인다”면서 “매년 선정하는 안기고 싶은 남자, 안기고 싶지 않은 남자 랭킹은 인격을 배제한 채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만 등급을 매기지 않는가. 안기고 싶지 않은 남자를 실명으로 발표하는 것 또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칼럼니스트 기무라 다카시는 “잡지뿐 아니라 성적인 콘텐츠를 다루는 일본 미디어들이 시대착오적인 성차별을 부추길 때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제는 변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가령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잡지는 독자를 제외하고는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주간SPA’는 이번에 논란이 된 기사 이상으로 선정적인 특집을 많이 실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문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웹 서비스가 보급되면서 상황이 일변했다. 특히 SNS 파급력이 커졌고, 일부 기사를 발췌한 내용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전 국민에게 노출되기도 한다. 기무라는 “시대착오적인 미디어는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변하지 않으면 이번 같은 소동이 다시 되풀이될 것”이라면서 “매체들이 반성하는 동시에 수신자들도 미디어 정보 해독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쉽게 유혹할 수 있는 여대생 스타일 소개 ‘뇌피셜 심하다, 심해’ ‘쉽게 잘 수 있는’ 여대 랭킹은 모자이크 처리함. ‘주간SPA’는 성관계 쉬운 여대생이 다니는 대학 순위를 공개하면서, 쉽게 유혹할 수 있는 여대생 스타일을 일러스트로 소개해 뭇매를 맞았다. 예를 들어 헤어스타일은 흑발에 중간 길이 정도. 눈 화장이 옅고, 입술 틴트를 옅게 바른 여대생이다. 덧붙여 잡지는 “소매 부분이 레이스 소재 같은 시스루, 모노톤 색상의 옷을 주로 입는다. 가방은 핸드백보다 조금 큰 사이즈, 굽이 낮은 신발을 신은 여대생이 비교적 ‘타율이 높다’”고 적어뒀다. 이에 대해 일본 네티즌들은 “옷차림과 외모만 보고 성(性)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며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