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임종석 ‘호남색’ 빼기 종로 출마설 확산…‘철지난 필패론 이제 안통해’ 주장도
임종석 전 비서실장. 박은숙 기자
여권 대권주자의 호남 색 빼기에는 ‘필패론의 정치공학적 함수’가 숨어있다. 호남 출신 후보는 영남 지지를 끌어낼 수 없다는 게 호남 필패론의 핵심이다. 이는 역대 대선 때마다 호남 후보 앞에 놓은 거대한 장벽 같았다. 전 국회의장인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민주평화당 대표인 정동영 의원도 호남 필패론의 산을 넘지 못했다.
호남 필패론 기저에는 영·호남 지역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영남 유권자는 호남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9대 대선 당시 영남권의 19세 이상 유권자는 부산(294만 8720명), 경남(273만 7161명), 울산(94만 98명), 대구(204만 1253명), 경북(224만 6028명) 등 총 1091만 3260명에 달했다. 반면 호남은 광주(116만 5537명), 전북(152만 5260명), 전남(157만 1723명) 등 426만 2520명에 그쳤다. 영남 유권자가 호남의 2.5배를 넘는 셈이다.
역대 대선 때마다 민주진보진영 후보들이 ‘영남 분열’ 작전을 앞세웠던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 1997년 대선 당시 DJ는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손을 잡고 대구·경북(TK) 등 영남권 보수층을 공략했다. 15대 대선에서 DJ는 대전(45.0%), 충남(48.3%), 충북(37.4%)을 비롯해 영남권(부산 15.3%, 경남 11.0%, 울산 15.4%, 대구 12.5%, 경북 13.7%)에서 모두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02년 대선 땐 부산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회창 대세론’을 깼다. 문재인 대통령도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부산 출신이다. 16대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영남권 득표율은 30%(부산 29.9%, 경남 27.1%, 울산 35.3%)에 육박했다. 문 대통령은 부산(38.7%), 경남(36.7%), 울산(38.1%) 등으로 노 전 대통령 득표율을 능가했다. 민주정부 1·2기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여권 한 관계자는 “우리의 대선승리 셈법은 ‘영남 분열-비영남 결집’”이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도 “임 전 실장 등이 ‘포스트 문재인’ 주자로 체급을 올리려면, 호남을 벗어나 서울 종로나 험지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셈법에 국한하면, 호남 색 빼기와 대선주자 본선 진출 가능성은 ‘비례 관계’다. 임 실장은 전남 장흥 출신이다. 두 차례의 국회의원은 수도권(서울 성동을)에서 지냈지만, 호남 대권주자 이미지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임 전 실장 정치적 동지인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내부에서도 임 전 실장에게 통일부 장관 입각보다는 종로 총선 출마 등을 권유하고 있다. ‘정치 1번지’ 종로는 2000년대 이후 노 전 대통령과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배출했을 정도로 정치적 상징성을 지닌다.
일부 운동권 그룹 인사들은 임 전 실장이 21대 총선 대신 오는 2022년 서울시장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남 색을 완전히 벗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한 의원은 “서울시장에 나서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이 경우 차기 대선보다는 차차기를 노릴 수밖에 없다. 제20대 대선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2022년에 치른다. 임 전 실장의 서울시장 출마보다 서울 종로 탈환 작전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 국회의원인 정세균 민주당 의원이 경우에 따라 총선 불출마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임종석 종로 출마설’의 불은 계속 지펴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설에 불과한 ‘정세균·임종석 연대’ 가능성도 여전히 살아있다.
‘호남 쌍두마차’의 다른 축은 이 총리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인 그는 전남지사 출신이다. 출신지는 전남 영광이다. 이 총리는 전남에서만 16∼19대까지 내리 4선을 했다. 선수로만 치면 여권 내 유일무이한 전남 터줏대감인 셈이다.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이 총리는 임 전 실장과 함께 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10일 지명한 인사다. 한때 손학규계로 통했던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의 호남 지역안배 등으로 초대 국무총리에 올라타면서 전국구 지명도를 단번에 얻었다.
특히 ‘사이다 총리’ 별칭을 얻으면서도 정제된 언어를 통한 대국민 소통, 여야를 아우르는 친화력 등은 이 총리의 최대 강점으로 통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이 총리는 범진보를 넘어 여야 차기 대권주자 1∼2위를 다투고 있다. 호남 색 빼기를 ‘보완재’로 활용한다면, 본선 링은 이 총리 곁으로 바짝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이 총리의 종로 총선 출마를 점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보완재 효과의 위력’ 때문이다. 다만 당 안팎에선 이 총리가 총선 출마보다는 대선 직행을 노릴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총리 이후 총·대선의 시차가 짧은 만큼, 승부수가 역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일종의 ‘대권병’ 프레임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여권 한 보좌관은 “현재의 여론조사 지지도를 유지한다면, 대권판으로 직행하지 않겠느냐”라고 예상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들의 호남 색 빼기는 과거 민주진보진영 후보의 영남 분열 작전과는 달리, 수도권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이다. 캐스팅보트인 서울·경기·인천(지역), 40대(연령), 화이트칼라(계층) 등을 공략하려는 포석이다. 하지만 이 지점은 호남 색 빼기의 ‘한계론’과 맞닿아있다. 이들의 선거 전략은 영남 분열에 따른 ‘야권 갈라치기’와는 거리가 멀다. 되레 호남 원심력의 공간만 넓혀줄 수도 있다. 이 경우 이들의 승부는 집토끼(지지층)와 산토끼(비지지층)를 모두 잃어버리는 악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선 호남 필패론 실체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한마디로 ‘호남 필패론=허구’라는 것이다. 여권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호남 필패론의 시초는 군부독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떠오르던 DJ를 제어하기 위한 보수진영의 카드로 호남 필패론이 등장했다. 호남 필패론은 1987년 대선과 1990년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 이후 한층 공고해졌다. 가속페달을 밟은 영·호남 지역주의와 한 궤를 이루면서 파생한 셈이다. 친노(친노무현)계 관계자는 “호남 필패론은 철 지난 얘기”라고 일축했다. 비노(비노무현)계 한 인사도 “신(新) 호남 고립론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20대 총선’에서 호남 필패론은 허구로 증명됐다고 입을 모았다. 안철수 발 신당 창당으로 호남 분열이 일어났던 2016년 4·13 총선 당시 민주당은 호남 28석 가운데 3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국민의당은 25석으로 차지하면서 압승을 거뒀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민주당보다 한 석 적은 2석을 거뒀다.
그러나 호남에서 전멸했던 민주당은 총 의석수 123석으로 제1당으로 올라섰다. 2008년 18대 총선의 81석에도 못 미칠 것이란 세간의 예상을 깨고 약진했다. 민주당 중진은 당시 “호남의 패러독스(역설)가 발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 없이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됐다는 얘기다. 다만 총선과 대선의 성격이 다른 만큼, 호남 민심은 향후 대권 판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정권 연장은 호남만으로도 못하지만, 호남이 없으면 더 멀어진다. 차기 대권에서만큼은 여권의 운명이 호남 프레임 틀 밖에 있지 않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