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체제 당에 주도권 뺏긴 상황…‘친문 매파’ 노영민·강기정 전면 배치로 반전 노려
2017년 12월 14일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주중대사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과 조찬을 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청와대 2기 개편에 따른 당·청 변화의 핵심은 ‘권력의 균형’이다. 앞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재임 당시 당·청의 권력 추는 민주당으로 쏠렸다. 임 전 실장을 비롯한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이 문재인 정부 신주류로 부상했지만, 친노 좌장인 이 대표의 구심력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한병도 전 정무수석의 낮은 존재감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한층 고착시켰다.
실제 이 대표는 정치적 국면마다 ‘20년 집권론’을 꺼냈다. 야당이 “오만한 생각”이라고 비판했지만, 그의 발언은 거침없었다. 진보의 아킬레스건인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 드라이브를 거는가 하면, 청와대가 주도하는 대북정책에서도 취임 후 여야 합동방문단 방북단 구성을 제안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당 최대 위기요인이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태는 ‘이해찬 파워’를 증명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친문계 일부 인사들은 이 지사에 대한 탈당과 출당을 압박했다. 중립파에서도 징계론이 대두했다.
최악의 경우 당이 분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구심력은 이 지사를 둘러싼 당 원심력을 눌렀다. 당 안팎의 비난에도 이 지사에 대한 징계를 ‘재판 후’로 유보했다. 이 대표가 ‘당 단합이 우선’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이재명 사태의 확전을 막은 셈이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이 대표 진가는 비공개회의에서 더 발휘된다”며 “당 장악력은 상상 이상”이라고 밝혔다. 전임 대표인 ‘추미애 체제’에서 당 내부 컨트롤타워 부재에 시달렸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원조 친문’인 노 실장과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의 귀환으로 당·청 관계는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임 실장 중심의 광흥창팀에서 권력 추를 끌어당긴 노 실장은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에서 ‘왕실장’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노 실장은 대선에서 막강한 역할을 한 전문가이자, 전략가”라고 말했다.
노 실장은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후보 비서실장과 조직본부장을 맡으면서 선거전략과 홍보기획, 메시지 관리 등을 총괄했다. 강 수석은 국회 입성 후 정세균계 핵심으로 분류됐다.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의 ‘문재인 체제’에선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당시 그가 ‘비문(비문재인)·반문(반문재인)계’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낸 것은 지금껏 회자된다. 이에 따라 위기의 집권 3년차에서 구원 등판한 이들은 문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해찬 호와의 조합이다. 전망은 엇갈린다. 민주당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노 실장과 강 수석은 친문계 중 ‘매파(강경파)’에 속한다. 노 실장은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지만, 과거 민주당이 계파 갈등에 노출될 때마다 최전선에서 강경파 입장을 주도했다. 민주당 중심의 국정운영을 중시해온 이 대표와의 긴장 관계가 불가피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한 노 실장은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막역한 사이다. 노 실장은 한때 김근태(GT)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핵심이었고, 친문 직계인 홍 원내대표는 노동조합 위원장 출신이다. ‘친문·운동권’이란 공통점을 지닌다. 당내 역학구도에 따라 ‘노영민+홍영표 vs 이해찬’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여권 내부는 지지율 하락과 야권의 공세로 후반기로 갈수록 권력투쟁 양상을 띨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표를 둘러싼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해찬 호 출범 이후 당 내부에는 ‘이해찬 사단’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당 안팎에선 자타가 공인하는 킹메이커인 이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지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의 밀약설도 끊이지 않는다. 박 시장은 민선 7기 시정고문단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 참여정부 인사를 대거 포함했다. 이 지사 측에는 이 대표 측근인 이화영 전 의원이 평화부지사로 있다. 이 대표는 20대 국회 초반 무소속 시절에도 김 장관과 동북아경제협력을 주제로 한 연구단체에서 함께 활동했다. ‘박원순·이재명·김부겸’ 등은 비문계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대망론에 휩싸인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정치판으로 이끈 이도 이 대표다.
강 수석의 매파 성향도 만만치 않다.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출신인 강 수석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3년 7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MB) 시절은 이른바 ‘미디어법’ 날치기 저지 과정에서 강승규 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의원 보좌관을 폭행했다. 이듬해 12월 예산안 처리 과정에선 김성회 전 한나라당 의원과 주먹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는 일명 ‘국회선진화법’이 없던 시절이다. 강 수석과 함께 일했던 한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 분위기부터 달라질 것”이라며 “당·청 권력구도 역시 자연스럽게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전 포인트는 양측 관계에 균열점이 커지는 ‘시기’다. 당·청은 당분간 운명공동체론을 앞세워 공조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1대 총선 국면으로 접어드는 올해 하반기부터 사실상 ‘마이웨이’를 앞세운 내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친문계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문 대통령 지지율”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2기 비서진의 특명은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려라’다. 청와대 발 인적개편에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가 하락할 경우 ‘당·청 책임론 공방→당 원심력 극대화→2인자 권력암투’ 등 전형적인 3년차 증후군이 당·청 전체를 옭아맬 것으로 전망된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도 여권 내부 분열 시기로 차기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하는 ‘올해 하반기’를 꼽았다. 그는 “이때부터는 양측 모두 사즉생의 승부를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대야 협치도 변수다. 야권에선 친문 강경파의 득세로 국회 개혁입법 처리가 요원해질 것으로 우려했다. 한국당 한 의원은 “야권과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냐”고 힐난했다. 민주당 2중대 비판을 받는 민주평화당 한 관계자도 “사실상의 보은 인사”라고 평가 절하했다. 노 실장과 강 수석은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나란히 낙천했다. 국회 협치 실패로 문재인 정부 개혁과제가 줄줄이 막힌다면, 당·청의 구심력도 한층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 측과 비문 내부에서 적잖은 우려가 나오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무너졌다. 온갖 기강해이로 청와대와 각 부처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문재인 후광효과’가 사실상 없어졌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친정 체제 강화를 택했다. 한층 짙어진 친문 색채에 대한 역풍 우려에도 문 대통령이 마이웨이를 택한 셈이다. 당의 딜레마도 만만치 않다. 이 대표는 지난해 말 당 행사에서 ‘정신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김정호 민주당 의원은 ‘공항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같은 당 손혜원 의원은 청와대 외압 의혹을 제기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에 대해 “돈 벌러 나온 것”이라고 말해 막말 논란에 휘말렸다.
민주당 초선 의원은 잇단 막말 논란에 대해 “지역구에 내려가기조차 어려울 정도”라고 귀띔했다. 당장 정치권은 오는 2월 말 보수 재편의 분수령인 자유한국당 차기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시작으로, 4월 재·보선까지 정치빅뱅 정국에 접어든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한국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지지율을 회복한다면, 민주당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1·2당의 지지율이 ‘골든 크로스(지지율 역전)’에 도달하는 순간, 여권 권력투쟁의 빗장은 풀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