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인사 관여·무기계약 개입·업체 이권 위한 민원 의혹 솔솔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임준선 기자
정치권에선 최근 민주당 여러 의원들이 도마에 오른 것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김정호 의원 공항 갑질, 서영교 의원 재판 청탁, 손혜원 의원 투기 의혹 등이 잇달아 불거지면서 여권의 ‘도덕적 해이’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린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지난 정권 모든 것을 ‘악’으로 몰고 자신들만이 ‘선’이라고 생각했던 오만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높은 지지율에 취해 있었던 것 아니냐. 이런 ‘내로남불’ 사례는 계속해서 터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권 출범 후 소위 ‘친문’으로 통하는 인사들은 각 정부 부처는 물론 여러 부문에 걸쳐 ‘적폐청산’ 작업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부작용이 속출했다. 과거 정권엔 엄격하게 들이댔던 잣대는 여권 인사들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공직사회는 물론 사적 영역에서조차 여권의 ‘점령군식’ 마인드에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민주당 의원들의 부적절 행동, 전․현직 공무원들의 폭로 등은 이런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표출되지 않았던 내부 동요가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얘기다.
방산부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업계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이 두각을 나타냈는데, 대부분 친문 정치인과의 친분을 내세웠다. 이 중엔 직접 방산업체와 연관돼 있는 여권 인사들도 있었다. 이들은 과거 정권에서 이뤄진 방산 적폐를 청산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권력을 무기로 방산업계를 좌지우지하려는 행태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방산업체 종사자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 간섭이 심했다”고 입을 모았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정치권 인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공직에 발탁된 뒤 한 방산업체 임원 자리에 자신의 지인을 발탁해달라는 청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정치권 인사 지인은 채용돼 일 년간 근무를 했다. 사기업을 상대로 한 취업 청탁이 성공한 것인데, 그 시기가 권력의 힘이 가장 세다는 정부 출범 직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회사 입장에선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군다나 방산업계는 정치권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곳이다. 이 방산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회사 대표가 한 모임에 갔는데, 거기서 정치권 인사를 소개받았다. 대표는 그 인사가 현 정부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있어 잘 관리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접대는 회사 돈으로 했다. 여러 번 만난 후 그가 대표에게 임원 자리 하나를 부탁했는데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들었다. 채용이 이뤄진 후 회사에 뒷말이 많았다. 직원들이 정권 낙하산이라면서 수군거렸다. 임원으로 들어왔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회사에 잘 오지도 않았다. 월급만 꼬박 꼬박 받아갔다.”
한 친문 전직 의원은 무기 로비스트와 가깝게 지내 도마에 올랐다. 이 로비스트는 대형 방산업체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친문 전직 의원과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업계에선 이 전직 의원이 로비스트와 군 당국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무기 계약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 로비스트는 그동안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라는 것이다. 대형 방산업체가 그를 고용한 이유가 이 전직 의원과의 친분을 활용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한 전직 로비스트는 “로비스트의 가장 큰 자산은 인맥이다. 새로운 로비스트들이 진출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갑자기 급부상한 로비스트들은 어김없이 권력 실세들과 줄이 닿아 있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그런 로비스트들이 여럿 있다”고 귀띔했다. 한 방산업체 임원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업계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10년 보수정권 때 활동했던 유력 로비스트들이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를 다른 로비스트들이 차지했다. 친문 실세들이 이들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얘기가 많았다”라고 했다.
앞서 언급한 친문 전직 의원이 또 다른 방산업체 이권을 위해 ‘민원’을 넣고 다녔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이 업체가 참여한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기 위해 국회와 정부 관계자 등을 만났다는 게 골자다. 이 전직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어느 날 국회로 찾아와 방산 쪽 현안을 묻기에 의아해 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가 한 방산업체와 각별한 관계라고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이는 그가 직접 로비스트 역할까지 했다는 의혹으로 이어진다. 사정당국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별다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러한 모습은 되풀이됐다. 방산업계 고질적 병폐로 꼽히는 정권 실세-로비스트-업체 간 삼각 커넥션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무기계약 특성상 정부 도움이 필요한 업체들은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실세들과 라인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그 중심엔 ‘돈’이 자리 잡고 있다. 전직 로비스트는 “무기계약에서 은밀히 오가는 돈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건만 성사시켜도 엄청난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면서 “역대 정권이 방산 부문을 장악하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는데, 이번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는 “방산업체와 권력 모두 각자의 셈법을 갖고 관계를 맺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탓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야권에선 적폐를 겨냥한 문재인 정부의 서슬 퍼런 칼날이 방산부문에 있어서만큼은 무딘 이유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방산비리 적발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이를 두고 방산업체와 연관이 있는 몇몇 정치권 인사들 이름이 거론된다. 이들이 특정 업체를 비호하려는 목적으로 사정당국에까지 압력을 넣고 있다는 얘기다. 자유한국당 의원은 “적폐를 청산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여권 사람들이 정작 과거의 적폐를 답습했던 사례들이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다”면서 “방산 쪽에서 이런 하소연과 제보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