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만 축소하는 결과 낳아…외감법 개정으로 올해 상장폐지 더 늘어날 전망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 신규 진입한 기업 수는 81개사로 전년 79개사보다 2곳 더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부가 코스닥 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고 최소 100개 기업의 신규상장을 이끌 것이라고 언명한 것과 대조된다. 반면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서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된 기업은 12개사로 2016년, 2017년 각각 4개사보다 3배 증가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내놓은 코스닥 시장 활성화 대책의 역효과”라며 “상장 요건은 낮추고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 오히려 신규 상장 없이 시장만 축소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거래소에서 한 관계자가 주식시황판을 보고 있다. 최준필 기자
실제 지난해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대책 이후 금융당국은 상장 실질심사를 강화, 무더기 상장폐지를 진행했다. 금융당국은 불성실공시 벌점이 15점 이상이거나 감사의견을 비적정에서 적정으로 바꾼 경우, 손실사업을 중단해 상장폐지를 회피한 경우까지 상장 실질심사 요건을 확대했다. 금융감독원이 코스닥 시장 상장사에 대해 진행한 재무제표 감리는 2017년 124개사에서 지난해 170개사로 37% 증가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9월 회계감사에서 ‘적정의견’을 받지 못한 11개 코스닥 상장사를 퇴출시켰다.
문제는 올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도입된 외부감사법(외감법) 개정안을 기반으로 한 감사보고서가 오는 3월부터 나올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개정된 외감법의 핵심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제 도입으로, 감사인을 교체해 서로 제대로 검토했는지 중복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담당 회계사에 대한 처벌도 강화됐다. 이 때문에 과거와 달리 올해부터는 고강도 감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선 ‘한정의견’과 ‘의견거절’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으며 그만큼 거래정지나 상장폐지도 늘어날 수 있다.
한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결산 감사를 도맡아 온 회계사가 교체되면서 회사 내용에 대한 설명을 다시 해야 하는 불편은 물론 자료 준비까지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면서 “회계사가 회사 측에 요구하는 자료가 지난해 결산 당시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토로했다. 다른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외감법 개정에 따른 감사 강화로 업계에서는 올해 의견거절 등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는 상장사가 30개사를 넘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면서 “올해 감사는 확실히 어렵다”고 했다.
경기가 둔화하면서 한계 기업이 늘고 있는 것도 올해 코스닥 시장이 침체할 것이란 우려를 키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5개 코스닥 상장사가 3년 이상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 규정 28조 3항과 38조 2항은 각각 코스닥 상장사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할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5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할 시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3년 이상 영업손실을 기록한 기업을 맡은 회계법인은 관리종목 전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더욱 꼼꼼하게 감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되면 회계사는 한정의견이나 의견거절을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일련의 과정이 소액주주 피해를 양산한다는 데 있다. 지난해 9월 한국거래소가 코스닥 시장에서 11개 종목의 상장폐지를 결정한 후 7만 7556명에 달했던 소액주주는 정리매매에서 90%가량 하락한 가격에 거래, 약 6000억 원 피해를 봤다. 상장폐지 결정 당시 코스닥 시장 11개 기업 지분가치에서 소액주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66%에 달했다.
특히 소액주주 수가 1만 명이 넘었던 통신서비스 업체 ‘감마누’는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뒤 6000원대였던 주가가 40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감마누는 현재 외부감사 ‘의견거절’이 부적절했고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이 지나쳤다는 이유로 상장폐지 무효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앞서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감마누의 상장폐지 결정 등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소액주주운동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코스닥시장 상장 요건이 완화된 만큼 강화된 부실기업 모니터링 장치는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면서 “정책 조정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회계 이슈에 대한 논란이 계속 불거져 온 데다 올해 새로운 외감법이 시행된 만큼 조금만 꺼림칙해도 감사의견 비적정을 주는 회계법인이 늘어날 것”이라며 “감사의견 비적정을 이유로 상장폐지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코스닥 불성실 공시 42% 급증 코스닥 상장사들의 불성실 공시가 늘고 있다. 경기 둔화 등 기업 한계를 가리기 위해 주요 경영 사항을 제때(공시 기한 내) 신고하지 않거나 중요 사항을 빼고 공시하고 상장사가 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되면 벌점을 받고, 최악의 경우 상장폐지된다.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2018년 코스닥 시장 공시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거래소가 코스닥 시장 내 불성실 공시 법인을 지정한 건수는 101건이었다. 전년 71건에 비해 30건(42.3%) 급증했다. 지난해 코스피 불성실 공시 지정 건수(11건)와 비교하면 코스닥 시장이 10배 많다. 배동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