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계 ‘이상행동 중 20%는 타미플루 복용과 무관’…일부 전문가 환각 원인으로 고열 지목
2009년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약국에서 약사가 신종플루 의심환자에 대한 약을 조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표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타미플루 복용 부작용 및 이상 사례 보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4~2018년 9월까지 타미플루 복용 후 추락사한 사람은 2명이다. 2014년 13세 남학생이 타미플루를 복용한 후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졌고, 2016년 11세 남학생이 타미플루 복용 후 추락해 사망했다. 여기다 지난해 12월 부산의 13세 여중생이 타미플루를 먹은 후 추락사했다. 이밖에도 타미플루를 복용한 후 자살충동을 느꼈다는 사례 역시 수차례 보고됐다.
일본에서는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2004년 기후현의 17세 남학생이 인플루엔자 감염 진단을 받은 뒤 타미플루를 먹고는 맨발에 잠옷차림으로 집을 뛰쳐나가 달려오던 트럭에 뛰어들어 숨졌다. 아이치현의 14세 남학생 역시 독감 진단을 받고 타미플루를 복용한 뒤 맨션 9층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미국 CBS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타미플루 부작용이 심심찮게 포착되고 있다. 지난해 2월 텍사스 북부의 한 가정에서는 6세 아동이 타미플루 부작용을 경험했다. 환각 증세를 보이며 학교에서 뛰쳐나와 자신을 해치는 행동을 시도한 것. 또 인디애나 주에서는 한 남학생의 자살시도를 두고 학생의 부모가 아들이 심각한 타미플루 부작용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활달한 풋볼선수였던 16세 남학생은 타미플루 복용 후 자살기도를 하고 성격이 변하는 등 변화를 겪었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타미플루에 대한 공포심이 일파만파 확대되자 부모들은 독감에 걸린 아이에게 타미플루를 맞혀야 하나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가 타미플루를 먹고 겪은 부작용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며 공포가 더욱 커졌다. 대부분 증상은 아동들이 약을 먹은 뒤 헛소리를 하거나, 환청·환각 경험, 옷장에 숨어있기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게 주를 이뤘다. 성인들도 타미플루 복용 후 환각과 자살충동을 비롯해 불면증, 기억상실 등이 나타났다.
커져만 가던 타미플루 부작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일본의 한 통계 결과에 완전히 뒤집혔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7~2018년 독감 유행 시즌에 보고된 이상행동이 95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20%는 약을 복용하지 않은 독감환자였다고 밝혔다. 타미플루 부작용으로 여겨지던 이상행동이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환자에게도 나타나며, 약물과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따지기 어려워졌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이미 미국과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오셀타미비르(타미플루)가 신경이상증상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2007~2010년 미국에서는 7798명의 타미플루 복용 그룹과 1만 411명의 비복용그룹을 비교했다. 그 결과 신경이상증상 발생빈도에 차이가 없었다. 또 다른 미국 연구에 의하면 2009~2013 소아환자 2만 1407명의 자살관련 사고 중 인플루엔자 감염자 251명이 타미플루를 복용했고, 162명이 투약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타미플루와 자살의 연관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대부분 연구에서는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뒤 타미플루 복용 유무에 따라 신경이상증상 발생빈도에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 일본 후생노동성은 공식적으로 타미플루와 신경이상증상에 의한 이상행동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지만 최근 일본의 통계 결과처럼 타미플루가 아닌 인플루엔자 감염에 따른 독감의 한 증상으로 신경이상증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우선 독감의 가장 주요 증상인 고열이 그 원인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열감기를 앓게 되면 일시적으로 환각이나 환청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독감에 걸렸을 때 겪는 환각현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행동 발생의 인과관계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아 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의학적으로 고열이 환각현상 등의 원인일 수는 있지만 이 부분이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설명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선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개인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해서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밖에 없다. 또한 독감에 걸렸을 경우 이상행동을 보일 가능성을 감안해 환자에 대한 철저한 관리도 절실하다.
이환종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최근 타미플루 부작용에 대해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데 이미 의학계에서는 수년 전에 이상행동과 타미플루가 인과관계가 없다고 결론지었다”며 “독감에 수반되는 환각의 경우 환자의 적절한 복약과 사후관리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