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체류 비자 연장 ‘목줄’ 삼아 외국인 배우자 협박 ‘부지기수’
정부는 국제결혼을 장려하고 있지만 다문화 가정의 정착과 지속에 대해 무관심해 비판을 받고 있다. 홈페이지 캡처.
# 지난해 12월 9일 경남 양산에서 필리핀 출신 결혼이민자가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2011년 스무 살 넘게 차이나는 50대 남편과 결혼한 필리핀 여성은 센터나 외부의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주변 이웃과 관계를 맺은 바도 없어 남편이 아내를 통제하고 구속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MBC’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여성은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가 15만 원인 슬레이트 집에 살며 몸이 아픈 남편 대신 생계를 이끌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슬하에 자녀를 두고 있는 A 씨는 떠난 아내를 찾고 있다. 스무 살 어린 아내가 베트남 남성과 불륜을 저지르고 자녀도 버린 채 떠났기 때문이다. A 씨는 “자식도 내팽개치고 사랑을 찾아 떠난다는 게 말이 되냐. 주변의 베트남 친구들 꼬임에 넘어가 가출하는 외국인 아내들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A 씨는 가정폭력을 이유로 현재 아내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상태다. A 씨는 “돈이 급해서 아내에게 나라에서 준 지원금 가운데 일부를 달라고 했다가 다툼이 일어난 건데 마치 나를 죄인처럼 몰고 있다”며 “경찰이 여성의 말만 듣고 내 말은 듣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인구절벽으로 신생아 울음소리가 끊긴 우리나라는 다문화 국가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전체 혼인 가운데 다문화 혼인은 8.3%다. 정부는 인구정책과 농촌 유지를 위해 국제결혼을 적극 권장해왔다.
국제결혼은 결혼 중개업체 위주로 이뤄진다. 업체들은 온라인 카페를 통해 공개구혼하는 여성들의 사진을 올리고 남성들이 마음에 드는 여성을 선택한다. 또는 남성 회원을 모집해 결혼성사 투어에 나선다. 최소인원 5명 정도가 모이면 베트남, 태국 등으로 가서 현지 여성들과 맞선을 보는 방식이다. 결혼 상대자를 찾을 경우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7일 안에 아내를 맞게 된다.
결혼 과정에 드는 비용은 업체별로 상이하지만 1500만~2000만 원 안팎이다. 이 비용에는 예식, 신혼여행뿐만 아니라 신부 측에 보내는 ‘지참금’과 대사관에서 요구하는 한국어시험 통과 교육 비용 등이 포함된다. 중개업체는 통상 300만 원가량을 결혼 성사비용으로 받고 있다. 국제결혼은 매매혼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실제로 지참금 몫으로 드는 지불 비용은 200만 원 미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결혼을 적극 권장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뒤처진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자국 여성들을 국제결혼이란 명목 아래 인신매매를 당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캄보디아의 경우 2010년 한국 남성과 결혼을 일시 금지시킨 바 있다. 2009년 결혼중개업자가 캄보디아 여성 26명을 한 번에 한국인 1명에게 맞선을 보게 했던 게 적발되면서다.
캄보디아와 우리나라는 국제결혼 문턱을 높이기 위해 언어자격시험을 보게 하고, 월 300만 원 이상 소득자, 50세 미만 등의 남성만 가능하다는 국제결혼 자격 기준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런 합의가 무색하게 브로커들은 서류조작을 일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결혼이 많이 이뤄지는 읍면 단위 지방에서 농업종사자나 일용직 근로를 업으로 삼는 남성 가운데 월 300만 원 이상 소득자는 많지 않다.
한 결혼 중개업자는 “한국 법에 따라 최소소득 기준인 연 1750만 원 소득을 입증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캄보디아에 제출하는 서류 꾸미는 데는 소득 0원이라도 상관없다. 국내에 제출하는 경우도 혹시 재산이 있으면 재산의 5%를 소득으로 쳐주기 때문에 3억 5000만 원 이상이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조건을 맞추고 비용을 들여 결혼을 하고도 국제결혼 가정의 불화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언어가 달라 소통이 어려운 데다 중개업체가 상대의 조건을 허위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 게 첫 번째 원인이다. 소작농인데 지주로, 선원인데 선주로 신랑감이 허위 포장된 경우가 많다. 지적장애나 신체장애가 있거나 경제력 등 이유로 한국에서 짝을 못 이룬 남성들이 주로 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국제결혼을 시도한다. 경제적 후발국가의 결혼 이민자는 한국에 대한 환상을 갖고 결혼을 하지만 정작 한국의 도시빈민, 농업 저소득층으로 편입된다.
경제력을 차치하고도 결혼 이민자의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않은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우선 부부의 연령 차이도 하나의 원인이다. 다문화 부부 가운데 남편이 10세 이상 연상인 비율이 전체의 39.5%에 육박한다. 한국인 부부는 10세 이상 남편이 연상인 경우는 3.6%에 불과하다. 문화, 세대차이가 심각한데다 남성이 20세 이상 연상인 경우 부부관계가 어려운 것도 문제다. 결혼 중개업체들은 나이차가 많을 경우 부부관계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또래 여성을 찾으라고 권한다.
정부는 국제결혼을 권장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국제결혼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일명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인데 300만~1000만 원 상당의 결혼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결혼까지만 지원할 뿐 그 이후의 다문화 가정에의 한국사회 정착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게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결혼 이민자들의 체류문제다. 외국인은 내국인과 결혼할 경우 F-6 비자를 받게 된다. 문제는 F-6 비자는 계속해서 연장이 필요하고 내국인 배우자의 동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이다. 결혼 이민자들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국내 체류를 목줄 삼아 배우자를 협박하고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가정을 버릴 것이라는 막연한 불신도 이를 부추겼다. 국제결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외국인 배우자에게 절대 국적을 주지 마라. 3년 단위로 연장해주는 체류연장도 1년 단위로 끊어 해줘라’는 등의 조언이 공공연하게 공유되고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국제결혼에 이르는 과정과 경우가 다양해지고 있어 보다 세분화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며 “가장 시급한 것은 결혼 이주자들의 안정적 귀화를 위한 체류와 국적 취득문제 개선이다. 배우자의 동의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고 이주자 스스로 자격요건을 갖추게 되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