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입장 뒤집힐 가능성 제기됐지만 그대로 유지…대한항공은 조기 실적 발표
수탁위는 지난 29일 저녁 서울 모처에서 대한항공‧한진칼에 대한 주주권행사와 관련해 예정에 없던 2차 회의를 열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수탁위가 회의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기금본부)로부터 기금본부와 대한항공‧한진칼 경영진간의 비공개면담 결과를 청취하고 단기매매차익 추정치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임준선 기자
수탁위는 지난 23일 첫 회의 이후 추가 회의를 열지 않기로 했지만 일부 위원이 지난 1차 회의 당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측 설명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회의 재개와 명확한 현황 보고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기금본부가 한진칼과 대한항공 측이 제시한 투명성 제고방안을 직접 들은 뒤, 그 결과를 수탁위에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수탁위 회의에서는 가장 관심을 끌었던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와 범위에 대해선 논의되지 않았다. 한 수탁위 위원은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와 범위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고 짧게 답했다.
조양호 대한항공 대표이사에 대한 재선임 안건의 상정 가능성에 대해서도 판단하지 못했다. 오는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선 임기가 만료되는 조 회장에 대한 재선임 안건이 상정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 안건도 주목을 받았다.
또한 수탁위는 재선임 안건에 대한 반대의결권 행사 여부에 대해서는 주주총회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하기로 했다. 단순 반대의결권 행사는 경영참여형 적극적 주주권행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앞서 국민연금은 조양호 회장에 대해 ‘과도한 연임’을 이유로 반대의결권을 행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수탁위는 기존의 경영참여 반대 다수 의견을 그대로 유지하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에 보고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열린 1차 회의에서는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에 대해 수탁위 위원 9명 중 5명이 반대했고 2명은 찬성했다.
2차 회의는 지난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이후 열렸다. 이에 따라 앞서의 1차 회의 결정이 뒤집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2차 회의에서 경영참여에 대한 재논의 자체가 없었던 만큼 수탁위가 대통령 발언 등 외풍에 영향을 받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의식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신 이날 기금본부는 수탁위에 대한항공‧한진칼 경영진의 투명성 재고 방안과 함께 단기매매차익 추정치에 대해서도 오랜 시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법을 보면, 지분 10% 이상을 경영참여 목적으로 보유할 경우, 이 주주는 지분 변동 내역을 5거래일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6개월 안에 얻은 단기매매 차익은 기업에 돌려줘야 한다.
만약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위해 대한항공에 대한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꾼다면 수백억 원을 반환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그 금액이 최대 400억여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은 10% 룰 예외 적용에 대해 금융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요청했지만 금융위는 “예외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 11.5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수탁위 2차 회의를 끝으로 주주권 행사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다시 기금운용위원회로 넘어갔다. 기금위는 오는 2월 1일 회의를 열고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방침을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기금위는 그동안 수탁위의 의견을 참고해 위원들의 합의제 방식으로 최종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 왔다.
기금위는 전체 20명의 위원 중 14명 민간위원들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이 때문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6명의 정부위원(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포함)이 사실상 키를 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위원들은 그동안 재계 측에서 제기해온 ‘정부의 민간 기업 경영 개입’ 주장을 의식한 듯 꾸준히 중립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의견을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위원들 간 의견이 갈리는 상황에서 정부위원들이 입장을 내지 않으면 최종 결론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위원들이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더라도 조양호 회장 해임 등 이사회 구성과 정관 변경 등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14명의 민간위원 중 노동자 대표 3명과 지역 가입자 대표 6명, 관계 전문가 2명 등 11명이 찬성 표를 던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기금위 안팎에선 국민연금이 앞서 수탁위 결정대로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단순투자 목적을 경영참여 목적으로 변경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 주주권 행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 재선임 반대 등 이사 선임과 임원 보수한도 승인, 보상 관련 주주제한 등이 거론된다.
한편 대한항공은 지난 29일 수탁위 회의가 열리기 전 지난해 경영 실적을 공시했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은 1년 전보다 7% 늘어난 12조 6512억 원에 달했다. 이 회사 창립 이후 최대치다. 영업이익은 6924억 원으로 같은 기간 27.6% 줄었다. 시장에선 유가 상승에 따른 유류비 지출과 임금협상 타결로 임금 소급분이 빠져나간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다만 대한항공 실적 발표 시점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나돌고 있다. 통상 2월 중순이었던 발표 시점을 2주 정도 앞당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이라는 내용을 담으면서도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가능성과 행동주의 펀드인 KCGI의 움직임이 보이는 만큼, 승부수를 띄웠다는 해석도 나온다. 오는 2월 1일 기금위 회의 전에 성장을 통한 이익 환원 의지를 주주들에게 보여주고,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도 다잡겠다는 포석이 투영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대한항공 측은 실적 발표에 대해 “추가로 언급할 내용은 없다”고 짧게 답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