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위원 A 씨 “12년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 된 야구, 김경문 감독 만한 적임자 없었다”
김경문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 신임 감독.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태양이 지고 달이 돌아왔다.’
선동열 전 감독이 물러난 야구대표팀 사령탑 자리에 김경문 전 NC 다이노스 감독이 선임됐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야구대표팀을 전승 금메달로 이끈 지 11년 만의 대표팀 사령탑 복귀다. 신임 감독 선임을 위해 논의를 거듭했던 KBO 기술위원회는 여러 후보군 중 김 감독을 1순위로 선택했고, 김 감독은 고심 끝에 수락했다는 후문이다. 김 감독은 대표팀 감독 취임 일성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피하는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욕먹을 각오하고 수락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감독이 대표팀 수장을 맡게 된 배경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KBO 기술위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속살을 들여다봤다.
처음부터 ‘깜짝 카드’는 없었다!
KBO 정운찬 총재, 김경문 감독, 김시진 기술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17일, KBO 기술위원회는 정운찬 총재로부터 위촉패를 전달받고 이후 첫 회의를 가졌다. 다시 부활한 KBO 기술위원회 위원들은 김시진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7명. 경기인 출신은 마해영(성남 블루팬더스 감독), 최원호, 이종열(SBS스포츠 해설위원), 박재홍(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이승엽(KBO홍보대사) 등 5명이고, 비경기인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이자 대표팀 닥터인 김진섭 정형외과 원장이다.
기술위원회 첫 회의의 안건은 가장 시급한 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였다. 선동열 감독의 사퇴로 공석이 된 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그동안 여러 인물이 거론됐지만, 1월 23일 다시 개최된 기술위원회에서는 후보군을 6명으로 압축했다. 3명은 접촉 가능한 인물이었고, 2명은 예비 후보자들이었다.
이를 두고 김시진 기술위원장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후보 프라이버시를 위해 실명을 공개할 수 없지만, 후보군 가운데 깜짝 카드는 없다. 내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 필요하다.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경험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설명에서 기술위원회가 어떤 후보군을 정했는지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기술위원회 위원인 A 씨는 1, 2차 회의에서 나온 내용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1차 회의에서는 5명이 아닌 6명의 후보군으로 정리했다. 2차에서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정했고, 3순위 후보까지 거절하면 그 다음이 남은 2명의 후보군이었다. 하지만 야구대표팀이 지탄의 대상이 된 상태에서 후보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 제안을 거절했다는 소식이 알려질 경우 기술위원회가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1순위 후보인 김경문 감독이 수락해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김시진 위원장이 김 감독을 만난 것이다.”
A 씨는 현역 감독 중에서도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기술위원회에서는 현역 감독, 코치들은 배제하기로 방침을 정했고, ‘야인’들 중에서 후보자를 찾다 보니 한정된 인물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경문 감독을 1순위 후보로 올려놓은 건 선수들은 물론 국민들도 납득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에서 보인 리더십과 베이징올림픽에서는 한국 야구의 전무후무한 쾌거를 이뤄냈다. 12년 만에 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부활한 도쿄올림픽을 앞둔 상태에서 김 감독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디펜딩 챔피언인 한국이 도쿄올림픽에서 자존심을 세우려면 대표팀 선수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고, 이에 김 감독이 최적의 카드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코치 박찬호, 이승엽 소문은 왜?
2011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한국 야구 레전드’ 박찬호와 이승엽. 사진=연합뉴스
대표팀 사령탑으로 김경문 감독이 가시화되면서 코칭스태프로 한국 야구의 전설적인 스타플레이어인 박찬호, 이승엽이 거론됐다. 김 감독은 지난 28일 KBO 야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코칭스태프 구성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박찬호와 이승엽은 훌륭한 선수들이지만 야구는 팀워크 운동이다. 코치가 너무 화려하면 선수보다 코치한테 집중한다. 이승엽은 아직은 아껴야 한다.”
한 마디로 김 감독의 코칭스태프 구상에 박찬호, 이승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한 셈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박찬호와 김 감독이 공주고 선후배 사이라는 점, 박찬호가 은퇴 후에도 김 감독과 남다른 친분과 인연을 이어갔다는 점을 들어 코칭스태프 합류를 예상했지만 김 감독은 ‘선수보다 화려한 코치들’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기술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은 박찬호는 몰라도 이승엽에 대해선 관심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A 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코칭스태프 구성은 감독의 의사가 전적으로 중요하다. 감독이 정한 인물이라면 기술위원회에서도 전적으로 밀어주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찬호 카드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즉 코치 후보군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박찬호는 한화에서 한 시즌을 활약했던 것 외에는 KBO리그와 별다른 인연이 없다. 지도자 생활도 경험한 적이 없지 않았나. 반면에 이승엽은 기술위원으로 활약 중이지만 언젠가는 대표팀에서 역할을 해야 할 인물이다. 만약 김 감독이 코칭스태프로 이승엽 위원 외에 기술위원 중에서 필요로 하는 인물이 있었다면 기술위원회는 적극 돕겠다는 입장이었다.”
대표팀 후보군이 정해진 다음 1순위 후보인 김경문 감독에게 제일 먼저 연락을 취한 이는 김시진 기술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23일 김 감독에게 전화해서 24일 처음 만남을 가졌다. 첫 미팅에서 김 감독은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이 불거졌다. 바로 김 감독이 NC 다이노스 고문 신분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 중반에 NC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고문을 맡았다. 형식적인 타이틀이었지만 연봉 5억 원을 지급받는 자리였기 때문에 대표팀을 맡게 되면 그 연봉은 포기해야 했다.
KBO의 한 관계자는 “NC 구단과 긴밀한 협의 끝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합의안을 도출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게 되면 NC의 고문료를 받을 수 없다. NC도 이와 관련해서 분명한 입장을 나타냈다. 김 감독이 돈만 앞세웠다면 대표팀 감독을 맡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연히 고문직을 내려놓고 대표팀 감독을 맡겠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자세한 부분은 구단과 KBO 고위 관계자가 추후에 정리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한편 정운찬 총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김경문 감독에 대해 남다른 기대감을 드러냈다.
“두산을 이끌 때부터 김 감독의 리더십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대표팀 감독 선임을 앞두고 직접 만나보니 리더십의 깊이와 여유면에서 엄청난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움에 처한 대표팀을 잘 이끌어 주실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KBO는 김 감독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순항할 수 있도록 적극 돕고 응원할 것이다.”
흥미로운 뒷얘기 하나. 흔히 대표팀 감독 자리를 두고 ‘독이 든 성배’로 표현한다. 대부분의 야구인이 감독 자리에 대한 부담으로 선뜻 나서기를 꺼려한다고 알려졌지만 KBO 관계자에 의하면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감독 후보로 추천을 희망하는 ‘재야의 고수’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고 한다. 즉 대표팀 감독 자리는 이런저런 구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도자들에게 매력적이고 탐나는 ‘성배’인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