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러시아에서 살겠다”던 빅토르 안, 한국 복귀 후 ‘빙상 대통령’ 전명규호 탑승한 속사정
빅토르 안이 전명규 교수의 ‘철옹성’,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플레잉코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일요신문
[일요신문] 러시아 국적 ‘쇼트트랙 황제’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이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하는 정황이 포착돼 사실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빙상계 복수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지난해부터 빅토르 안이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플레잉코치 역할을 맡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한국체대 빙상장이 빅토르 안을 섭외한 건 전명규 교수의 마지막 히든카드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빅토르 안은 3차례 동계올림픽(2002 솔트레이크, 2006 토리노, 2014 소치)에서 메달 8개(금6, 동2)를 획득한 쇼트트랙의 전설이다. 특히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선 러시아 국적으로 쇼트트랙 3관왕에 올라 한국사회 전체를 경악케 한 인물이기도 하다.
세계 쇼트트랙 역사에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운 빅토르 안이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의 히든카드’로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일요신문’이 단독 취재했다.
#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선수들 스케이트 날 관리한다” 사실상 플레잉코치 역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개인훈련을 진행하던 빅토르 안. 사진=연합뉴스
빅토르 안이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훈련을 함께 진행한 건 이미 여러 차례 알려진 사실이다. 빅토르 안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개인훈련을 진행했다.
하지만 빅토르 안은 ‘맥라렌 리포트(러시아 도핑 파문 관련 조사 보고서)’에 이름이 오르며 도핑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빅토르 안에게 올림픽 출전 불가를 통보했다. 빅토르 안은 4번째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18년 9월. 빅토르 안은 한국 복귀를 결정했다. 9월 5일 러시아빙상연맹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회장은 “빅토르 안이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가정 사정으로 러시아를 떠난다”고 밝혔다. 2014년만 해도 “영원히 러시아에서 살겠다”던 빅토르 안의 마음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뀐 것이다.
이 당시 빅토르 안이 한국행을 결심한 배경에 대한 여러 추측이 나돌았다. 빙상계 일각에선 “빅토르 안이 전명규 교수의 오퍼를 받았을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빅토르 안이 선택한 행선지는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이었다. 최근 전명규 교수를 둘러싼 숱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장소다. 2011년 빅토르 안은 “훈련 여건이 여의치 않아 러시아 귀화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랬던 빅토르 안이 한국체대에 다시 정착한 건 자신의 명분을 흐리는 모순적 결정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린다.
그렇다면 빅토르 안은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 빙상계 복수 관계자는 “빅토르 안이 한국 복귀를 선언한 뒤 한국체대 빙상부, 중·고등부 선수반과 함께 훈련하고 있다”면서 “빅토르 안이 훈련·시합 과정에서 일부 선수의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고 있다”고 전했다.
스케이트 날 관리는 빙상 지도자의 임무다. 빙상인들이 빅토르 안을 ‘플레잉코치’라 부르는 이유다. 사진=일요신문
여기서 핵심은 빅토르 안이 ‘스케이트 날을 갈아준다’는 점이다. 스케이트 날을 가는 일은 빙상 지도자의 임무다. 빙상계 복수 관계자는 “빙상 종목에는 장비 담당 코치가 따로 있다. 스케이트 날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코치다. 그 정도로 선수의 스케이트 날 관리는 중요하다”고 전했다.
유소년 빙상 코치 A 씨는 “스케이트 날을 가는 건 상당히 예민한 작업이다. 선수 체형에 맞게 벤딩(스케이트 날의 미세한 구부러짐 조정 과정)을 해야 함은 물론, 날 끝을 가다듬어야 한다. 선수 개인의 특징을 꿰뚫어 보는 수준이 아니라면, 함부로 스케이트 날 관리를 맡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선수가 다른 선수의 날을 가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잠재적 경쟁자인 후배 선수의 날을 갈아준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수의 날을 가는 건 지도자의 영역이다. 빅토르 안이 한국체대에서 스케이트 날을 관리하고 있다면, 사실상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플레잉코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빅토르 안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빅토르 안은 연락에 일체 응하지 않았다.
# 안식년 떠날 예정이었던 전명규, 공백기 대비 ‘빅토르 안 카드’ 준비했나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는 3월 1일 안식년을 떠날 계획을 세워 놓았다. 사진=일요신문 DB
빙상계 관계자에 따르면 빅토르 안은 ‘전명규 교수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B 코치와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다. B 코치는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가장 많은 강습생을 거느린 스타 강사다.
그런데 B 코치의 최근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한 빙상 지도자는 “빙상계에 메가톤급 폭풍이 차례로 몰아치면서, B 코치가 잠시 목동빙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전했다.
이 지도자는 “B 코치를 둘러싼 의혹이 굉장히 많다. 성추행 의혹, 불법 스포츠 도박사건 연루 등이 있다. 여기에 B 코치는 한국체대 빙상장의 자금을 관리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명규 교수 입장에선 B 코치를 잠시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리스크 관리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B 코치가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을 완전히 떠난 건 아니다. 한 빙상 관계자는 “B 코치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훈련을 하는 날이 있다”고 전했다. 빅토르 안이 B 코치 팀과 함께 훈련하는 건 이때다.
빅토르 안이 플레잉코치로 합류한 정황을 두고, 일부 빙상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전명규 교수가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몇몇 빙상계 관계자는 “전명규 교수가 ‘안식년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전 교수는 3월 1일 안식년을 떠날 계획이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1년 동안 한국체대 실내빙상장 영업 공백을 최소화하려 했을 것”이란 의견을 덧붙였다.
# 수포로 돌아간 전명규의 ‘안식년 프로젝트’… 빅토르 안의 미래는?
빅토르 안. 사진=연합뉴스
빙상인들의 말처럼 전명규 교수는 3월 1일 안식년을 신청한 상황이다. 1년 동안 한국체대 실내빙상장 2층에 있는 교수실을 비울 계획이었던 것이다.
빙상 관계자 C 씨는 “만약 전 교수가 예정대로 안식년을 떠난다면, 한국체대 빙상장 실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체대 빙상장 유소년 강습 실적이 높았던 이면엔 ‘전 교수의 권력’과 ‘전 교수 산하 스타 강사들의 능력’이 있었다.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믿음 역시 컸다. 연이은 메가톤급 논란에도 많은 선수가 한국체대 빙상장에 자녀들을 보내는 건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C 씨는 “전 교수를 둘러싼 논란이 수습 불가능할 수준으로 비화되고 있다. 전 교수의 심복으로 구성된 스타 강사진은 각종 성추문에 연관돼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자리를 지키던 전 교수가 안식년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정도니까… 이런 상황에서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이 빙상계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면 신선한 인물이 필요한 상황이다. 영업력이 있는 사람 말이다. 결국 그 정도 파급력을 지닌 인물은 빅토르 안 뿐이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 교수의 ‘안식년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갔다. 1월 18일 한국체대 교수진 긴급회의에서 전명규 교수의 안식년 취소를 전격 결의한 까닭이다.
‘빙상 대통령’ 전명규 교수의 철옹성인 한국체대 빙상장의 아성이 무너지고 있는 형국이다. 동시에 명분 없이 한국 복귀를 결정한 빅토르 안의 미래 역시 불투명해졌다. 러시아 생활을 포기한 ‘쇼트 황제’ 빅토르 안의 향후 행보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