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급차 시장 급성장…‘품질 낮고 비싼 한국차’ 인식 넘어야
정 수석부회장은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북미 대신 고급차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중국을 새로운 시장으로 지목했다. 현대차와 정 수석부회장은 제네시스의 중국 진출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본격화한 현대차의 판매 부진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제네시스는 지난 1월 중국 상하이에 차량 판매를 위한 별도 법인을 설립했다. 최근엔 베이징 등 중국 주요 대도시에 제네시스 판매 법인의 추가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판매 법인을 통해 현지 딜러망을 구축하고 마케팅 프로모션으로 인지도를 높인 후 올해 중 정식 판매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020년에는 제네시스가 GV80 출시 이후 새로 선보일 예정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70(프로젝트명)’을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2015년 11월 ‘제네시스’ 출범 행사에서 브랜드 발표와 현대차그룹 청사진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제네시스는 정 수석부회장이 초기 기획 단계는 물론 관련 외부 인사 영입과 조직개편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주도해 출범시킨 국내 최초 고급차 브랜드다. 업계에서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해외 판매가 저조한 제네시스의 새로운 성장 기지로 중국을 지목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제네시스는 본격적인 판매에 나선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동안 글로벌 판매에서 21만 대가 넘는 성과를 올렸지만, 대부분 판매는 내수 시장에서 이뤄졌다. 실제 지난 3년간 제네시스 전체 판매량의 약 90%인 18만 4239대가 국내서 팔렸다.
제네시스는 세계 최대 고급차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에서 심각한 판매 하락을 겪고 있다. 2016년 첫해 6948대, 2017년 2만 594대를 판매하며 미국 고급차 시장에 연착륙하는 듯했으나 지난해 1만 312대 판매로 뚝 떨어졌다. 정 수석부회장이 제네시스 경쟁업체로 꼽은 렉서스는 미국에서 제네시스보다 20배 많은 20만 7000여 대를 팔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제네시스는 SUV 중심 시장 재편에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특히 판매망에서 제네시스 자체 딜러망을 구축하지 못한 채 현대차 안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제네시스는 중국 시장 본격 진출 이전 판매 법인을 우선 설립, 딜러망을 구축하는 만큼 미국과 같은 판매 하락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제네시스는 미국 시장에서 독립 딜러망 없이 현대차 판매 딜러망 안에서 차량 판매를 진행해 차별화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네시스 관계자는 “올해 1분기까지 미국 내 제네시스 독자 판매 딜러 350여 곳을 갖출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중국 시장은 미국과 달리 딜러망을 우선 확보해 판매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제네시스는 올해 SUV GV80 출시를 예정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차를 보는 중국 시장의 인식 변화다. 그동안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수입차’라는 인식을 얻어 판매 증가를 이끌어 왔다. 현대차는 2002년 12월 ‘밍위(국내명 EF쏘나타)’ 출시를 시작으로 2013년 연간 판매 100만 대를 기록하며 10년 만에 누적 500만 대를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2016년까지 중국서 4년 연속 100만 대 판매를 이어갔다. 그러나 2017년 사드 사태 이후 불거진 혐한 감정으로 중국 소비자는 토종 브랜드 차량 구매를 늘렸고, 이는 현대차에 대해 ‘품질 낮고 비싼 차’라는 인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2017년 현대차 판매량은 2016년보다 31.3% 급감했으며, 2년 넘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을 계기로 판매 활로를 모색하는 한편 수익성과 브랜드 이미지를 함께 높여 경쟁력을 키운다는 계획이지만, 이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올해 중국 시장 점유율은 11위로 폭스바겐과 제너럴모터스(GM)는 물론이고 중국 토종 브랜드에도 밀리는 상황”이라며 “현대차와 합작법인으로 출범한 베이징자동차조차 베이징현대를 지원하기보다 또 다른 합작법인인 베이징벤츠를 밀고 있어 제네시스를 통한 고급화 전략도 마케팅 등에서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일단 국내에서 생산한 제네시스 차량을 수출해 판매하고 시장 반응을 살핀 뒤 향후 중국 내 현지 공장에서 차량을 직접 생산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급차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한 일본·독일 브랜드와 경쟁을 가격 경쟁력으로 넘기 위해서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현대차는 차량 생산계획에 2020년 내놓을 제네시스의 두 번째 SUV GV70을 중국 창저우 공장에서 생산하는 안을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5월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제네시스가 가진 제품 경쟁력은 충분하다”면서 “중국 시장에 진출해 3~4년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행인 점은 제네시스가 진출 예정인 중국 고급차 시장 규모가 지속 성장하고 있다는 데 있다. 중국 고급차 시장은 2016년 처음으로 연간 200만 대 규모에 도달한 이후, 2017년에는 전년 대비 18% 이상 증가한 256만여 대를 기록했다. 2016∼2017년 중국 전체 승용차 판매량 증가율이 1%대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중국이 전체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6년 24%에서 2017년 27%로 커졌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중국 고급차 시장이 향후 수년간 10%대의 성장률을 꾸준히 유지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제네시스가 고급차 브랜드로 독립 5년차를 맞은 시점에서 성장성이 높은 중국 고급차 시장 진출은 당연히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며 “다만 판매 법인 설립 외에 차량 판매 시점과 현지 생산 추진 등 세부 사항은 확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