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사람과 준 사람이 모두 부인하는 돈거래. 최근 김대중 대통령 둘째아들 김홍업씨에 대한 검찰 조사에서 현대와 삼성이 김홍업씨에게 21억원의 거액을 준 배경을 두고 추측이 무성하다.
검찰 조사 결과 홍업씨는 작고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난 98년 무렵에 16억원을, 지난 99년 무렵에 김인주 삼성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으로부터 5억원을 각각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인들의 관심은 현대와 삼성이 무슨 연유로 그에게 돈을 주었을까하는데 쏠리고 있다. 그가 현역 정치인도 아니고, 고작해야 광고회사나 아태재단 일에 관여하는 사람에게 억대의 돈을 준 이유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일단 현대나 삼성에선 ‘대가성 없는 활동비’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서도 홍업씨가 삼성이나 현대에서 받은 돈에 대해 조세포탈로 처리했다. 홍업씨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자금법 위반은 아니며, 단지 증여받은 돈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혐의만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업이 대가없는 돈을 김씨에게 떳떳이 준 것이라면 굳이 10만원권 헌수표로 억대의 돈을 전달할 이유도, 또 그 돈을 받은 김씨가 수십 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바꿀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윤을 목적으로 뛰는 기업인들이 대가 없는 돈을 건넬 이유도 없다. 결국 돈을 건넬 당시의 기업환경을 유추해 보는 수밖에 없다.
▲홍업과 현대
검찰 조사 결과를 보면 현대는 정주영 회장이 현대택배 강명구 부회장(당시 현대전자 부사장)을 통해 돈을 준 것으로 돼 있다. 의문은 정 회장이 사업상 무관해 보이는 홍업씨에게, 강 부사장을 통해 준 배경이 무엇이냐 하는 것. 정 회장이나 강 부사장의 경우 딱히 홍업씨와 친분이 있지는 않았다는 게 주변의 전언.
현대의 경우 김홍업씨에게 첫번째로 10억원을 전달한 98년 7월 당시는 정주영 회장이 판문점을 통해 소떼 5백 마리를 몰고 방북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 정 회장은 당시 금강산관광 합의서를 북측과 맺는 등 대북사업에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였다. 이어 그해 11월15일 첫번째 금강산 관광선이 동해항에서 떠나고, 북한과 서해안공단 개발 프로젝트에 합의하는 등 당시 현대는 북한프로젝트에 목을 매고 있었다.
또 98년 한 해에만 국한하면 현대는 기아차 인수, 현대종금과 강원은행 및 조흥은행 합병, 국민-한남투신(현 현대투신) 인수, 특히 현대전자의 반도체 경영주체 선정 등 국내 재벌 1위를 확고히 할 수 있었던 대형 호재가 줄지어 터진 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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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위)와 삼성(아래)은 ‘용돈’ 차원에서 김홍업씨(원안) 에게 21억원이라는 거금을 건넸다고 밝혔다. 사진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결국 98년 7월 김홍업씨에게 10억원을 건넨 것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던 현대가 정권의 가려진 실세에게 ‘인사’를 했다는 풀이가 가능해진다. 이어 현대는 99년 3월부터 2000년 2월까지 5천만원씩 12번, 총 6억원을 홍업씨에게 추가로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당시 현대전자 부사장이었던 강명구 현대택배 부회장이 등장하고 있다. 강 부회장은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최측근. 때문에 홍업씨에게 추가로 6억원을 준 사람이 정주영 명예회장으로 나와 있지만 사실상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쪽에서 김홍업씨에게 돈을 준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정주영 회장 타계 전에도 현대의 대북 사업은 현대그룹의 장자인 정몽구 회장 대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주도했다.
▲홍업과 삼성
검찰 조사 결과 삼성은 지난 99년 12월 삼성 구조본 김인주 재무팀장이 홍업씨에게 5억원을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에선 구조본이 홍업씨에게 돈을 건넨 부분에 대해서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고 있지 않다. 때문에 삼성이 돈을 준 배경도 당시 삼성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통해 추론할 수밖에 없다.
99년 무렵 삼성의 최대 이슈는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씨에 대한 편법 상속 문제였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재용씨에 대한 편법 상속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갔고, 빅딜의 하나로 포기한 삼성자동차 빚잔치를 하기 위한 이 회장의 사재출연 문제로 곤혹스런 입장이었고 정부의 재벌개혁, 공정위 조사 등의 악재도 겹쳐 난감한 한 해였다.
특히 99년 7월 삼성자동차 부채 문제와 관련해 이 회장이 사재출연이 이슈가 될 무렵에는 이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취득 시점에서 증여세 탈루의혹에 대한 세무조사설이 난무했다. 그해 9월 안정남 국세청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 회장 일가의 우회 증여로 인한 탈세 의혹이 있을 경우 세무조사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그때 한진그룹은 그룹 차원의 세무조사를 당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추징당하기도 했고, 이 회장의 처가인 보광그룹이 세무조사를 당했다. 결국 정부의 재벌개혁 강경방침에 밀린 이 회장은 내놓기로 했던 삼성생명 주식 4백만 주 외에 추가 사재 출연을 발표해야만 했다.
그 같은 일련의 조치가 있은 뒤에는 물론 이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는 없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보면 99년 12월 당시 홍업씨에게 삼성의 재무팀장이 5억원이란 거액을 ‘용돈’ 차원에서 건넸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시각이 많다.
98~99년을 최고의 해로 보낸 현대가, 98~99년에 최악의 위기를 벗어난 삼성이 모두 홍업씨에게 준 돈에 한해서는 ‘용돈’이라고 주장하는 것 외에는 이 돈의 성격이 무엇인지 규명된 사실이 하나도 없다.
하필 돈 전달자가 김인주 전무(당시 상무)라는 점도 특이하다. 김 상무는 현재 이건희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그룹 내 최대 실력자 중 한 사람. 그가 개인적으로 홍업씨와 어떤 친분관계였는지, 또 그가 대외 창구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삼성의 대외창구인 대외협력단을 이끌고 있는 핵심인물이 그가 아닌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