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7500억 투자한다더니…군유지만 헐값 매입하고 500억도 투자 안 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정밀기계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해 정관계 고위 관계자가 뇌물을 받고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그치지 않고 있다. 사진은 투자협약서.
충북도와 진천군은 2009년 11월 처음으로 서영정밀과 투자협약을 맺었다. 서영정밀이 총 사업비 7500억 원을 투자해 자동차부품과 임플란트 제조 공장을 세우고, 본사와 공장을 문백면으로 이전한다는 내용이 주된 골자다. 서영정밀은 자동차 제동장치를 제조하는 협력업체다. 대신 충북도와 진천군은 산업단지로 이어지는 도로를 내어주고 오·폐수처리시설을 만들어주며, 군유지까지 저렴하게 매매하는 조건이었다.
군유지를 헐값에 넘기는 데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 기업은 1차로 2009~2014년 5000억 원을, 2차로 2014~2019년 2500억 원을 투자하고, 사원아파트 4200㎡를 건립하는 조건이다. 합의된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충북도와 진천군은 제공된 땅을 다시 환매할 수 있다.
문백정밀기계산업단지가 들어선 진천군 문백면 은탄리 산 25-7번지 39만 3174㎡의 소유권은 27억 3695만 원에 서영정밀로 이전됐다. 하지만 서영정밀이 약속한 투자계획은 시간이 지나도 이행되지 않았다.
서영정밀 내부에서는 약속과 달리 사업비를 5500억 원으로 줄여 잡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내부자료에 따르면 2013년 5월 기업이전과 투자사업계획서가 다시 작성됐다. 회사가 1차에 3750억 원, 2차에 1750억 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2013년 6월에 우리은행에서 서영정밀을 위해 작성한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서영정밀이 실질적으로 1185억 원을 투자해 공장을 확장 이전하려 한다’는 내용도 발견됐다. 당초 서영정밀이 약속했던 7500억 원 투자에 대한 신빙성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서영정밀은 2014년 돌연 이미 매입한 산단토지에 대한 ‘매매예약 증서’를 진천군과 작성했다. 투자비가 1000억 원 미만이고, 사원아파트 3600㎡를 설립하지 않을 경우 진천군이 다시 산단토지를 매입하는 증서다. 이 증서에는 앞서 2009년부터 체결한 충청북도·진천군과의 모든 계약을 해당 증서로 갈음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실상 서영정밀이 수년 동안 도민에게 약속해온 내용을 뒤엎는 계약이다. 뿐만 아니라 서영정밀은 2015년 1월 투자 사업계획서를 재차 변경해 전체 투자비를 1000억 원으로 줄였다.
산단토지에 매매예약이 걸리면 이 땅을 금융차입에 활용할 수 없다. 서영정밀은 문백산단 부지의 매매예약과 가압류를 해지해달라며 세부투자실적을 제출했다. 여기에는 1005억 원을 투자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투자금액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구입하지도 않은 기계설비와 개발 특허권이라는 게 서영정밀 내부자의 주장이다. 특히 특허권이 전체의 83%를 차지한다.
서영정밀 경영관리실에서 작성한 ‘진천산업단지 자금운용집행계획’ 자료에 따르면 2015년까지 투자 집행한 금액은 396억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충청북도는 산단토지에 대한 가등기를 해지해줬다. 서영정밀은 은행으로부터 토지를 담보로 319억 원 상당을 차입했다.
결국 서영정밀은 평당 15만 원 상당의 땅을 1만 9800원에 불하받아 산단토지를 매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319억 원을 대출 받았다. 충북도민과 약속한 산단 조성계획은 7500억 원 투자였지만 실제 투자액은 500억 원에도 미치지 않는다.
반면 충청북도는 약속을 지켰다. 공장이전 계획이 계속해서 수정되는 가운데 2013년 9월 국고 276억 원이 들어가는 국도 17호선이 착공했고, 2015년에는 폐수처리장이 착공됐다.
향토기업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도와 군이 발 벗고 나선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영정밀 안팎에서는 애초에 기업이 거짓으로 특혜를 얻기 위해 투자약속을 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 가운데 군청의 토목담당 공무원이 1700만여 원을 부당하게 수수해 검찰에 넘겨졌고, 신 아무개 진천군의회 의장은 서영정밀로부터 수천만 원의 뇌물과 여행경비, 자동차 등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3년과 벌금 5000만 원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지역 관가에서 뇌물을 받고 특정인에게 부당한 혜택을 제공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지역 유력업체의 갖은 비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검찰의 수사는 미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은 김 아무개 서영정밀 회장과 회계 담당자 등을 지난해 5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기소했다. 지방이전기업에게 제공되는 보조금 30억 원가량을 부정수급한 문제 등이 핵심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면 위로 떠오른 정·관계 로비와 관련해 여기 사용된 자금 출처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서영정밀 내부에선 유력 정계 인사들에 대한 로비까지 폭로됐지만 이에 대한 단서는 하나도 찾지 못해 꼬리자르기 의혹까지 불거졌다. 김 회장은 지역 출신인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을 변호사로 선임해 재판에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전관 논란도 피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김 회장이 구속 기소를 피해 불구속으로 수사를 받는 것을 두고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영정밀 관계자는 “회장님과 일부 직원의 개인적인 문제라 회사 차원에서 따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