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재판장이 이렇게 대답했다.
“판사는 신도 아니고 솔로몬도 아닙니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기록을 보고 논리의 법칙에 따라 판결을 할 뿐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솔직히 말한 재판장이었다. 나는 사건기록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법정에 가득 찬 허위에 오염된 판사가 보통사람보다도 진실을 보는 능력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숲속에 있으면 숲을 보지 못한다. 나뭇가지만 보인다. 조금 벗어나야 숲이 보이는 것이다. 눈가리개가 채워지고 거짓말에 절여진 판사들 중에는 숲도 나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건설업자였던 성완종 씨는 그의 돈을 먹었던 권력자들의 이름을 한 서린 유서에 써놓고 자살했다. 나는 그의 뇌물을 전달했던 인물을 만났었다. 그가 후일 이렇게 털어놓았다.
“뇌물 먹은 높은 분이 몰래 사람을 보내 자기가 아니라 부하에게 돈을 전달한 것으로 하자고 하더라구요. 배달사고로 사건을 조작하려는 거였죠. 제가 거절했어요. 사실 뇌물을 전해줬다고 하면 나는 법에 걸리는 겁니다. 그런데도 처벌받을 각오를 하고 진실을 말했어요. 그런데 법원은 내 말을 허위로 만들고 높은 분을 무죄로 만들더라구요.”
배경에 어떤 거래가 있으면 정치인 하나쯤은 무리하게 봐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환위기 당시 재정금융국장 변양호의 뇌물사건이 있었다. 뇌물을 줬다는 한 사람의 진술을 놓고 1심은 무죄였고 항소심에서는 징역 5년을 선고하고 그를 법정 구속시켰다. 대법원은 다시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사의 점쟁이 같은 직관 하나로 그는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며칠 전 뉴스화면에서 대통령을 꿈꾸던 안희정 전 도지사의 법정구속을 알리는 붉은 자막을 보았다. 그는 이제 정치의 깊숙한 뒷방으로 퇴장한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던 피해자라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부끄러움을 내던지고 그녀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도지사를 고발하고 있었다.
1심의 판사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무죄였다. 2심의 판사는 그녀의 말을 믿었다. 앞으로 대법원이 남았다. 진실은 하나인데 그걸 보는 판사의 눈은 다르다. 더러 눈꺼풀이 덮여 있는 사람도 있고 빌라도처럼 진실을 외면하는 경우도 봤다.
진실을 허위로, 허위를 진실로 만들어도 법원은 무책임하다. 상급심이라는 핑계가 있기 때문이다. 법원 모두가 색맹일 때 진실을 유린당한 사람의 피 흘리는 모습을 나는 직접 보아왔다. 법원이 진실을 추구하다가 실수하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의나 편견 그리고 고정관념이 개입해 사람을 잡을 때 법원은 사탄의 동조자가 아닐까. 신뢰를 잃으면 사법부는 설 자리가 없다. 스스로 많이 고민해야 할 때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