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운동 주동자 20여 명 교회에 모아놓고 불태워 죽여…이 소식 듣고 달려온 부인들도 총 맞아
수원의 3·1만세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고 격렬한 독립투쟁이었다. 사진은 ‘3·1 독립운동 기념탑’. 사진=수원시
“고결한 피의 희생 위에 울려 퍼진 독립의 함성”
자유는, 평화는, 민주주의는 결코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피가 거름이 되어, 누군가의 희생 위에 피는 꽃이다. 하물며, 일제 37년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어찌 피흘림이, 희생이 없었겠는가. 수원의 만세운동은 그 피흘림의 역사다. 누군가는 비폭력 무저항으로, 누군가는 목숨을 건 투쟁으로, 저마다의 애국으로 민족독립을 외쳤던 수원시민들의 역사다. 1919년 3월 1일, 전국에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그날, 수원에서도 화성 화홍문 방화수류정 아래에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모여 ‘대한독립’을 외쳤다.
3월 1일 방화수류정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16일 수원면 장날에는 팔달산 서장대와 연무대에 수백 명이 모여 만세를 부르면서 종로 시가지를 통과했다. 23일에는 수원역 부근의 서호(西湖)에서 700명이 만세운동을 벌이며 일본 경찰과 헌병대 및 소방대와 충돌했다. 25일에는 장날을 이용해 청년·학생의 주도로 약 20명의 학생과 노동자가 수원면 내의 시장에서 만세를 불렀다. 29일에는 기생 30여 명이 건강검사를 받으러 가던 도중 자혜의원(慈惠醫院·현 화성행궁 봉수당 자리) 앞에서 만세를 부르며 일제의 총칼에 저항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 들은 상인과 노동자들은 야간에 합세해 곳곳에서 만세를 부르며 일본인 상점에 돌을 던지고 유리창 등을 파괴했다. 만세운동은 화성을 중심으로 한 수원면 내 외에도 동탄면, 성호면(현 오산시), 양감면, 태장면, 안룡면, 의왕면, 반월면, 비봉면, 마도면 등 전 지역에서 장터와 산상(山上)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타올랐다.
이 가운데 송산면(松山面) 주민들은 3월 28일 오후 2시경 송산면사무소 뒷산 및 그 부근에서 1000여 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이때 마침 송산면사무소에 출장 왔다 만세운동에 놀라 도망치는 악질 순사부장 노구찌[野口廣三]를 쫓아가 돌과 몽둥이로 때려 그 자리에서 처단하기도 했다.
향남면(鄕南面) 발안에서는 3월 31일, 1000여 명의 천도교인, 기독교인, 농민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운동을 벌였다. 연설과 행진을 하는 중에는 길가의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지거나 일본인 소학교에 불을 질렀고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더욱 힘차게 만세를 불렀다.
발안장터의 만세운동은 4월 3일의 우정면(雨汀面)과 장안면(長安面)의 연합시위로 이어져 2500여 명의 지역민들이 모여 장안면사무소,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하고, 그곳에 비치된 식민행정의 장부와 서류 등을 불태웠다. 군중은 다시 화수경찰관주재소로 향하여 대한독립의 의지를 불태우며 그곳에 근무하던 순사 가와바다[川端豊太郞]를 처단했다.
수원 지역의 만세운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격렬했던 이유는 일제의 극악무도한 침탈이 있었다. 수원 지역 주민들은 열악한 소작농 처지에서 일제의 간척공사에 강제로 동원되거나, 일본인 경영공사에 고용되어 갖가지 착취와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극렬한 저항에 놀란 일제는 제암리에서 인류사에 기록될 참혹한 살상의 만행을 저지른다. 이른바 ‘제암리 학살 만행’.
당시 일제는 우정면과 장안면, 발안장터 시위의 연계를 내란 상태로 판단하고 주동자 처단에 나선다. 4월 13일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의 아리타 중위가 이끄는 보병 13명이 발안에 도착했고, 15일 순사보 조희창과 사사카 등의 안내 속에 제암리에 도착했다.
이들은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파악된 천도교도와 기독교도 20여 명을 제암리교회에 모아놓고 불을 질러 죽이고 촌락의 대부분을 소각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제암리 지역의 청년들과 주민들이 교회 안에서 불타 죽고,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부인들도 총에 맞아 죽었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여인들과 아이들은 순식간에 가정을 잃었고 삶의 터전도 잿더미가 돼 버렸다.
이때 희생자 중 23명은 현재 화성시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뒤의 묘소에 안장돼 있으며, 고주리에서 숨진 김흥열 일가의 묘소는 살해 현장인 고주리에 있다.
100년 전 수원의 독립정신은 오늘에 이어져 사람이 특별한 수원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수원시
“수원, 특별함을 더하다”
3·1 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인 올해 수원시는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수원 3·1 항일독립운동 상징물(가칭) 건립’, ‘3대 주간 기념식 및 시민문화제’, ‘수원지역 독립운동 강사양성·학습 지원’,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및 전시회·역사토론대회’ 등 5개 분야 28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또한, 시승격 70주년이기도 한 올해는 ‘수원특례시’ 원년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치열했던, 수많은 이들의 고결한 피흘림의 희생 위에 이루어낸 위대한 독립의 역사. 그 희생의 가치를 알기에 수원은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도시다. 그래서 사람이 반가운 도시, 수원은 올 한 해 “사람 중심 더 큰 수원의 완성”을 목표로 모두 같이 잘사는 경제, 모두 같이 꿈꾸는 미래, 모두 같이 누리는 복지를 추진해 더욱 특별한 수원을 더한다.
100년 전 수원은 자주독립과 인류 평등의 정신으로 충만한 도시였다. 3·1운동 정신은 오늘에 이어져 ‘지방분권과 시민주권의 실현’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염태영 수원시장은 “자율과 창의로 도시 발전의 새로운 모델이 되는 분권의 도시,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풀뿌리민주주의를 다져가는 자치의 도시, 차별과 배제가 아닌 평등과 우애를 지향하는 포용의 도시가 지난 100년의 울림을 기억하고 미래 100년을 바라보는 수원특례시의 새로운 지향점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방분권의 완성’. 그 위대한 역사의 흐름 맨 앞에선 수원을 기억한다.
손시권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