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관계자·검찰 간부 두 채널 가동한 듯…김 지사에게 전달됐는지도 관심
1심 선고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경수 경남지사가 1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김태우 씨는 2월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2017년 7월 25일 오전 11시 11분 이인걸 특감반장이 텔레그램 단체방에 ‘드루킹이 USB메모리를 특검팀에 제출했다’는 기사 링크를 올렸다”면서 “검찰 출신 특감반원 4명에게 이 반장이 ‘이거 맞는지, USB에 대략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아보면 좋겠는데’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김 씨는 “청와대에서 대통령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수사 상황을 가장 궁금해 했을 사람은 누구겠는가. 지시한 사람이 누군지 수사로 밝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김 씨의 또 다른 폭로들에 대해 ‘개인 일탈’ ‘미꾸라지가 물을 흐린다’며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던 것과는 달랐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씨에 대해 더 이상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김 씨가 이제 보란 듯이 자유한국당 등 보수 진영과 손을 잡고 폭로 중이다. 마치 투사라도 된 듯한데, 개인 비리가 적발돼 청와대에서 쫓겨난 사람일 뿐”이라면서 “일일이 상대할 가치를 못 느낀다. (정쟁으로 확산시키려는) 김 씨 의도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안 자체가 민간인 사찰 주장 등에 비하면 ‘파괴력’이 덜하다는 반응도 들린다. 김 씨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조급해 하고 있다는 얘기도 뒤를 잇는다. 한 친문 의원은 “과거 정권이었으면 문제가 될 일도 아니다. 특검이 수사할 때 청와대가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아니냐”면서 “이번 건도 드루킹 USB가 언론 등을 통해 기사화되자 한 번 알아보라는 정도로 지시가 내려간 것에 불과하다. 청와대 이름이 거론되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자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일상적인 업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정수석실 근무 경력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청와대가 논란을 자초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우리 땐 특검 수사에 아예 관심을 두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었다. 당시 민정수석이 오해를 살 수 있으니 특검 수사진과 만나지 말라고 했다. 청와대가 특검 수사 정보를 모은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일상적인 업무를 왜 텔레그램에서 지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통상의 절차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라고 했다.
여권에서는 김 씨 폭로의 불똥이 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모습이다. 일부 인사들이 자체적인 라인을 가동해 특검 수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이인걸 전 반장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을 지시해 빌미를 준 것 같다. 청와대 특감반이 나설 문제가 아니었다. 이인걸이 ‘오버’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묻자 그는 “(특검 수사 내용에 대한) 별도의 스크린이 이뤄지고 있었다”라고 답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파악된 바로는 특검과 친문 간엔 두 개의 채널이 열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친문 의원과 특검 관계자 간이었고, 나머지는 특검 사정에 밝은 검찰 간부를 통한 루트였다. 그 검찰 간부는 문 대통령 측근으로 꼽히는 인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인걸 전 반장이 특감반에 (드루킹 USB 내용 파악을) 지시했던 것으로 짐작해보면 이들의 움직임은 비공식적인 차원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조차 알지 못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확보한 특검 수사 상황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경수 지사에게로 전달됐는지 여부가 향후 또 다른 쟁점이 될 것이다.”
이름이 거론된 친문 의원은 기자에게 “특검 수사에 전혀 관여한 적이 없다. 그랬다면 김 지사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겠느냐”라면서도 “다만, 수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카카오톡 등의 대화를 통해 알아본 적은 있다.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라고 했다. ‘그 자체가 특검에 압력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질문에 “개인적인 친분을 활용해 물어봤을 뿐이다. 들은 내용을 다른 곳에 전달하지도 않았다”라고 했다. 하지만 여권 실세 의원이 특검 수사진에 연락을 취했다는 것만으로도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특검에 몸담았던 한 수사진 역시 “보안을 철저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 정보가 계속 외부로 흘러나갔다. 몇몇이 그 유출자로 의심을 받았는데, 그중 한 명이 친문 의원(기사에 언급된 친문 의원과 동일인)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더라”면서 “압수수색과 같은 민감한 내용이 유출되지는 않았는지 확인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앞서의 친문 의원은 “그런 적은 맹세코 없었다. 특검 수사에 관여했다간 나도 위험할 텐데 그럴 리 있겠느냐”고 부인했다.
야권은 공세 수위를 한층 높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석연찮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한 중진 의원은 “혼자서 알고 있을 거면 뭐하러 물어봤겠느냐. 누군가에게 분명 전했을 것이고, 만약 이를 수사에 활용했다면 심각한 범죄 행위”라고 했다. 또 다른 의원도 “단순히 수사 정보를 건네받은 수준이 아닌,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김경수 지사에 이어 김정숙 여사 이름까지 나오자 친문에서 조직적으로 특검에 접촉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