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사법부 공격에 김 지사·민주당 ‘공동운명체’ 엮여…문 대통령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
1심 선고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경수 경남지사가 1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김 지사 1심 판결로 여권은 ‘패닉’에 빠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재판부는 “김 지사 죄질이 불량하다”고 질타했지만 친문 의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김 지사 구속을 ‘사법농단 세력의 반격’으로 규정하고, 사법부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재판장인 성창호 판사의 과거 이력을 거론하며 탄핵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입법부의 사법부 공격이 삼권분립 위배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사법부) 견제를 위한 것”이라는 궤변으로 맞섰다.
강경한 친문 기류와는 달리 다른 진영 민주당 의원들은 “남은 재판을 두고 보자”며 신중한 입장이었다. 이들은 “일부 발언이 민주당 전체 여론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친문 내에서조차 “사법부를 공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자성론이 고개를 드는 모습이다. ‘김 지사를 구해야 한다’는 큰 흐름엔 동조하지만 방법이 틀렸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 비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뭐라고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다. 사법부 판결에 불만이 있더라도 이런 식의 대처는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괜히 나섰다간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감수해야 한다. 또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과도 사이가 멀어진다. 과거에 이런 사례들이 많이 있지 않았느냐. 친문과 등을 돌렸다가 아직도 고통을 겪는 이재명 지사를 봐라. 그래서 다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친문 의원들에 대한 비판도 뒤를 잇는다. 법률가 출신의 또 다른 비문 의원은 “평소에 논리정연하고 법리에 해박했던 한 의원이 김 지사 판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면서 “김 지사 측 해명만 철석같이 믿고 특검 조서나 재판부 판결은 제대로 보지도 않은 듯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 댓글조작을 동의 또는 승인했을 것이라고 본 판결이 더 합리적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고 털어놨다.
앞서의 비문 의원도 “아무리 억울한 부분이 있더라도 지지자들이 댓글을 조작했다는 사실은 인정된 것 아니냐. 당 차원에선 ‘김경수 구하기’에 매진할 게 아니라 일단은 반성부터 할 때”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2016년 홍준표 지사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우리는 지사직을 그만두라고 했다. 가깝게는 이재명 지사가 여러 의혹으로 도마에 오르자 당적을 박탈하려고 했다. 만약 김 지사가 다른 당, 아니 다른 계파였다면 이렇게 대응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친문 진영은 단호하다. ‘친문’ 손혜원 의원 부동산 투기 해명 기자회견에 동석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던 홍영표 원내대표는 1월 31일 “양승태 적폐사단이 조직적 저항을 벌였다. 법과 양심에 따라야 할 판결이 보신과 보복의 수단이 되고 있다”면서 “반드시 국민의 힘에 의해 제압될 것”이라고 했다. 설 연휴가 끝난 후인 2월 6일 윤호중 사무총장은 “(김 지사) 판결에 대한 비판이 굉장히 높았고 과연 제대로 된 재판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김 지사가 갖는 정치적 상징성과 무관하지 않다. 김 지사는 친문 중에서도 ‘성골’로 꼽히는 정치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마지막 비서관이기도 한 김 지사는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수행팀장을, 지난 대선 땐 수행단장을 맡아 문 대통령을 따라 다녔다. 자타공인 문 대통령 최측근인 셈이다. 김 지사 방어선이 뚫리면 문 대통령도 위험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친문계의 결사적인 ‘김경수 엄호’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된다.
정권의 정당성 문제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국가기관의 댓글조작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삼고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다. 비록 민간에서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댓글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려 했다는 내용은 문재인 정부 도덕성에 흠집을 냈다. 현 정권 최우선 과제인 적폐청산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벌써부터 야권에선 문 대통령 최측근인 김 지사가 댓글조작에 연루됐다는 부분을 지난 대선과 결부지어 공격하기도 한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청와대 앞에서 문 대통령 입장 표명과 새로운 특검 도입을 외쳤다. 일부 의원들은 ‘여론 조작에 의한 선거이기 때문에 대선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탄핵당한 세력들이 감히 촛불혁명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대선 불복으로 대한단 말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러한 여권의 ‘김경수 구하기’는 여러 측면에서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우선 김 지사 재판은 정권 내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김 지사와 민주당이 사실상 공동운명체로 엮였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여기서 자유롭긴 어렵다. 김 지사는 자신을 면회 온 민주당 의원들에게 문 대통령 안부를 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이게 여권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비문 진영의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김 지사 혐의가 최종 확정되면 사법부를 비난했던 민주당은 어쩔 것이냐. 끝까지 부정하면 법치를 거부하는 것”이라면서 “차라리 지금 한발 빼서 김경수 개인 문제로 다루는 게 맞았다. 김 지사가 문 대통령을 거론한 것 역시 성급했다. 다소 매정하게 들리지만 김 지사 선에서 끊어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 대통령 임기 후반에야 결론이 날 텐데 걱정이 크다”라고 말했다.
사법개혁 동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들린다. 사법부 내에선 ‘김경수 판결로 (사법부를 겨누는) 현 정권 칼날이 더 매서워질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는 문재인 정부 사법개혁이 자칫 김 지사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지사 판결을 사법농단 세력의 반격이라고 했던 여권이 오히려 사법개혁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셈이다.
여권에선 사법부와의 관계를 우려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한 친문 의원은 기자에게 “앞으로 재판이 많은데 걱정이 많다. 서초동에선 남아 있는 적폐청산 관련 재판에서 줄줄이 무죄가 선고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판사들의 감정이 좋지 않은데 (김 지사 판결 후) 더욱 악화된 것 같다”면서 “‘여권 프리미엄’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이젠 더 불리한 것 아니냐”고 했다.
친문계 고립 가능성도 제기된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김 지사 판결에서 나타난 친문 의원들 행태는 그들의 패권주의를 잘 드러낸다. 자신들만 선이고, 다른 진영은 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니 사법부까지 공격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전형적인 편 가르기”라면서 “지지자들로부턴 환영을 받겠지만 어느 순간 여론과 동떨어질 수도 있다. 추락하고 있는 지지율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