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IMF사태가 터진 후 대다수 재벌들이 위기에 직면하거나 침몰하는 와중에 그는 과감하게 우량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사업구조조정에 앞장서면서 기사회생의 찬스를 잡았다. 대한생명 인수는 김 회장과 한화로 볼 때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황금의 기회. 그가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며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한 2조원대의 자금을 대한생명 인수에 베팅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는 한화가 대한생명 인수에 성공할 경우 현재 12조원대인 그룹 전체의 자산가치가 38조원대(대생 자산가치 26조원)에 육박, 재계 순위가 현대자동차와 맞먹는 5~6위권으로 급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생보업의 경우 성장성이 한계에 직면해 있지만 사업 특성상 그룹 전체의 균형적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재계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화그룹 창업주인 고 김종희 회장의 장남인 김 회장이 부친의 뒤를 이어 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은 지난 81년. 당시 그의 나이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던 약관 29세에 불과했다.
김 회장이 취임하던 당시 한화그룹의 사업구조는 화약, 기계공업, 석유화학 등 전통적인 제조업 위주로 이뤄져 있었다. 김 회장은 취임 직후 나이답지 않게 그룹 사업구조의 대개혁을 선언하고 나서 재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김 회장은 그룹의 핵심 사업을 기존의 제조업에서 금융, 유통, 정보통신 등 서비스업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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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가 임박했다. 사진은 지난 99년 대한생명 인수 입찰서류를 접수하는 김승연 회장(오른쪽). | ||
특히 김 회장은 서정화 전 의원의 딸 정민씨와 결혼했던 지난 82년, 당시 정경스캔들에 연루돼 공중분해되면서 청산절차에 들어간 명성그룹의 계열사 인수에 성공, 재계서열을 20위권에서 10위권으로 껑충 뛰게 만들었다.
또 그는 80년대 후반 경영난에 빠졌던 중앙 언론사를 인수하면서 언론업에도 진출하는 등 경이적인 사세확장을 이루어내 성공한 재벌 2세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거칠 것 없어 보였던 성공가도는 90년대 중반부터 일부 주력 계열사의 경영난이 닥친 데다, 사업확장에 따른 금융부채 증가 등으로 흔들렸다. 여기에 친동생과의 재산다툼도 악재로 작용했다. 결국 삼희투금을 비롯한 일부 금융사와 부채비율이 높았던 (주)한화 등이 어려움을 겪게 됐고, 김 회장은 알짜 계열사를 줄줄이 매각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한화기계의 베어링 부분을 독일 FAG사에 매각하고, 한화석유의 사업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이로서 한화그룹은 당시 32개였던 계열사를 24개로 축소하고, 1200%에 달했던 부채비율을 230%대로 과감히 낮추는데 성공, ‘구조조정에 성공한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화그룹은 다른 재벌들과 비교해볼 때 늘 뒤처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 사실.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차세대 사업부문의 부재를 들 수 있다.
김 회장은 향후 50년 한화그룹의 사업 비전을 레저와 금융으로 하겠다고 선언했으나, 뚜렷한 주력사업이 없다는 것이 항상 문제였다. 때문에 이번 한화그룹의 대생 인수는 계열사 하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룹의 향후 구도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특히 한화그룹의 대생 인수작업이 마무리되고 나면, 한화그룹의 전체 자산 규모는 현재의 12조원대에서 38조원대로 확대된다. 현재 재계 순위 10위에서 6위로 단숨에 뛰어오를 전망이다. 특히 오는 10월은 한화그룹의 창사 50주년이어서 김 회장의 본격적인 미래 사업 전략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재로써 김 회장은 대한생명을 중심축으로 해, 한화증권, 투신 등을 묶어 그룹의 금융사업기반을 닦는다는 계획. 한화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현금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라서 자금상의 큰 어려움은 없다”는 설명이다.
또 ‘제2차 구조조정’을 본격화해 향후 그룹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자금난 등 위험요소를 애초에 차단한다는 전략이다. 올해 취임 21주년을 맞은 김승연 회장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다시 한 번 주목받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