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돼 시장 진출 막혀…MaaS 플랫폼 무상 제공으로 선회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는 MaaS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고 현대차의 시장 진출을 막았다. 글로벌 완성차업체가 MaaS를 새로운 판로이자 수익 모델로 간주, 주도권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에 나선 것과 대조된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현대차는 지난해 2월 전략기술본부 출범과 동시에 추진해 온 MaaS 시장 진출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현대차는 당초 카셰어링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MaaS 시장 직접 진출을 계획했다가 최근 차량 공유 플랫폼을 중소렌터카 업체에 제공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반위가 자동차 단기대여 서비스 사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한 데 따른 결과다. 동반위는 차량 공유를 포함하고 있는 MaaS 역시 자동차 단기대여에 해당한다고 규정, 현대차와 같은 완성차 제조 대기업은 진출하지 못하게 했다.
자동차 단기대여 서비스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은 한국렌터카사업조합연합회가 동반위에 요청하면서 성사됐다. 동반위는 지난해 12월 자동차 단기대여 서비스 사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적용 기간은 올해 1월 1일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다. 동반위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후 ‘3+3룰’을 적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6년 동안 현대차의 MaaS 시장 진출이 제한된다. 규제 제정 당시 한국렌터카사업조합연합회는 카셰어링 등 MaaS는 예외로 두는데 합의했지만, 동반위는 MaaS까지 포함해 확대 적용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초부터 추진해 온 MaaS 사업 전략이 동반위 규제에 막혔다. 사진은 서울시 양재동에 있는 현대자동차 사옥. 연합뉴스
업계에선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강조해 온 정보통신기술(ICT) 회사로 전환이 시작부터 좌초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이 살길은 ICT 회사보다 더 ICT 회사답게 변화하는 데 있다”고 강조하며 MaaS를 첨단에 세웠다. 실제 현대차의 MaaS 진출 전략은 정 수석부회장 직속 조직인 전략기술본부에서 담당했다. 전략기술본부는 일부 지역 거점에 전기차나 수소전기차 등을 배치해 소비자가 일정 시간 대여하는 카셰어링부터 MaaS를 진행하는 안을 확정한 후 개발을 구체화했다가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개발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차량 관제 및 데이터 수집 MaaS 플랫폼을 현대차 차량 구매가 많은 중소렌터카 업체에 무상 제공한 후 데이터를 받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직접 사업 영위는 막혔지만 카셰어링 진출을 완전히 접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카셰어링은 MaaS의 초기 모델이지만 플랫폼과 이용자 데이터에 바탕해 자율주행 기반 MaaS로 확장하는 것의 핵심으로 꼽힌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카셰어링 서비스 차량 공급 하청업체가 된다 해도 기술 경쟁력을 위해선 공유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현대차가 동반위 규제에 막힌 사이 글로벌 완성차업체를 중심으로 한 MaaS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자동차 대량생산 체계를 만들었던 포드는 최근 자사를 ‘가장 신뢰받는 이동 서비스 공급업체로 진화 중인 기업’으로 소개하고 서비스 개발 강화에 나섰다. GM은 경영진이 직접 나서 MaaS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밝혔다. 벤츠와 BMW는 ‘카투고’와 ‘드라이브나우’로 각각 운영했던 차량 공유 서비스를 하나로 합치고, 10억 유로를 공동 투자한다는 발표했다. 완성차업체의 MaaS 진출 자체가 막혀 있는 국내와 대조된다.
MaaS의 시장 규모는 최근 들어 부쩍 커지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2017년 650억 달러 규모였던 차량 공유 서비스 시장이 2030년 약 5570억 달러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신기술 부문 연구소인 리싱크엑스(ReThinkX)는 MaaS 확산으로 차량 수요가 격감해 2030년까지 완성차업체 수익이 80%가량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 소비의 형태가 소유에서 공유로 넘어간 게 미국 자동차 시장 판매 감소와 무관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 공유 기업 그랩은 올해 1월부터 현대자동차 순수 전기차 코나EV를 현지 차량 호출 서비스에 본격 도입했다. 사진=현대자동차
국내 시장은 이 같은 세계적인 추세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국내 2위 차량 공유 업체인 ‘그린카’ 지분 10%를 매입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다 중단했다. 동반위가 그린카 역시 롯데렌털을 최대주주로 둔 대기업 산하 카셰어링 업체로 보고 ‘확장자제’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로선 투자 대비 실익이 없는 셈이다. 현대차는 국내서 차량을 이용한 MaaS 직접 사업이 사실상 막히면서 차량이 아닌 이동 수단을 활용한 소규모 MaaS 사업을 추진하는 데 그치고 있다. 지난 21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전동 킥보드를 비치한 게 대표적이다.
동반위는 국내 완성차업체의 MaaS 사업 진출 불가가 국내·외 시장 환경이 다른 데 따른 결과라고 설명한다. 동반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로 중소기업 경영 악화가 불거지는 부분이 많다”면서 “대기업이 모든 시장을 가져갈 경우 불거질 독점 지배 및 시장 집중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반위는 적합업종 지정을 논의하는 협의체에 현대차 등 완성차업체를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동반위는 2018년 1월 한국렌터카사업연합회가 자동차 단기대여 서비스업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하면서 구성한 대·중소기업 민간 중심 협의체에 한국렌터카사업연합회와 SK·롯데·AJ렌터카 등 렌터카 대기업만 포함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현대차는 MaaS와 관련해 지난해 5000억 원이 넘는 돈을 해외에 투자했다. 생산·판매·연구 기반이 국내에 있지만 국내에선 MaaS 진행을 할 수 없고, 기술 개발에 대한 필요성은 상존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MaaS 관련해 현대차의 국내 투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지난해 ‘동남아 우버’로 불리는 그랩에 3100억 원을 투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이 카셰어링 서비스를 하면서 얻는 수익이 그랩에 투자한 현대차 3000억 원과 비교해 얼마나 될지 생각해야 한다”면서 “해외서 MaaS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국내는 산업 구조면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