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의원 “당청 인사들 비공개 모임서 정부부처 인사 논의…참석자들 사정당국 인사파일까지 공유”
2월 26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대검찰청을 방문하여 총장면담을 요구하며 기다리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제공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정부부처와 그 산하기관, 공기업 등에선 무수히 많은 낙하산 인사가 이뤄졌다. 거센 비판이 일었지만 그때마다 여권 인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보수 정권 10년간 누적된 인사차별 해소’ ‘개국 공신에 대한 배려’ 등 다양한 이유를 들면서였다. 한 민주당 의원은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챙겨줘야 할 사람은 많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었다. 아직도 대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았다는 얘기였다.
이는 인사를 둘러싼 여권 파워게임으로 번졌다. 누가 어떤 자리에 자기 사람을 발탁하느냐가 곧 힘의 척도로 통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실세들 간 우열이 정해졌다.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권 초반 흔하게 벌어졌던 현상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왕차관’ 박영준의 ‘영포 라인’이 인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5년 내내 최고 파워 그룹으로 꼽혔던 게 대표적 사례다. 박근혜 정부 땐 정윤회 최순실 등 비선 라인에서 추천된 인사들이 중용됐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번 정권 들어서도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여권에선 몇몇 실세 그룹이 인사 창구로 거론됐다. 수많은 자리를 놓고 교통정리가 되기도 했지만 특정 보직을 둘러싸곤 이들 간에 다툼이 발생한 적도 있었다. 그 중 당청 관계자들로 꾸려진 한 비공개 모임이 남다른 주목을 받았다. 그 구성원 면면이 친문 핵심으로 평가받는 인사들이었던 까닭에서다. 이 모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한 친문 의원 말이다.
“대부분 여권 실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대선 승리 후 인수위도 꾸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과 청의 주요 관계자들이 여러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주로 청와대 주변 삼청동이나 광화문 등에서 만났던 것으로 안다. 공식적이거나 정기적인 모임은 아니었지만 실세들이 자주 만나다 보니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현 정권 기틀을 마련하는 데 어느 정도 일조를 했다. 인사가 핵심 안건 중 하나였던 것은 맞다.”
자연스레 이 모임 참석자들에겐 인사 관련 민원이 쏟아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한 보직을 두고 적게는 2배수, 최대 10배수까지 신청자가 몰렸다. 그만큼 치열했었다”면서 “부처나 공기업으로 가는데 성공한 보좌진 중 상당수가 그 당청 모임을 통한 것으로 들었다. 가장 확실한 ‘창구’였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모임 참석자들은 사정기관 작성 자료로 추정되는 인사 검증 파일까지 공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그 정치적 위상을 짐작케 한다.
정치권에서 이 모임이 다시 오르내리는 이유는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 때문이다. 야당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블랙리스트 이행을 지시한 ‘몸통’이 따로 있을 것으로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와 관련해 실제 모임에서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에 대해 논의가 오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일부 보직에 대해 아직 임기가 남긴 했지만 교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게 골자였다.
당시 모임에서 작성된 여러 메모들과 자료들을 확인해본 결과 현재 도마에 오른 블랙리스트를 떠올리게 했다. 검찰의 환경부 압수수색에서 드러난 문건에 적시된 내용과 상당수 일치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환경부 한 산하기관 본부장의 경우 실명과 임기가 적혀 있었고, 그 옆에 ‘교체’라는 메모가 있었는데 이는 환경부 문건에도 기록돼 있었다. 결국 그는 사퇴 압박을 받고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특히 여권 실세들이 부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여권의 우려도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체크리스트’라며 선을 긋긴 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그 폭발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인수위가 없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그 모임의 성격은 비공식적이다. 아무런 권한도 없이 인사에 개입했다면 비선 논란이 불가피하다. 밀실에서 이뤄진 논공행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면서 “그런데 과연 이들이 환경부만 그랬겠느냐. 걱정스럽다. 다른 부처와 기관까지 범위가 넓어지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들여다볼지도 관심사다. 이번 사건의 키를 검찰이 쥐고 있다는 데엔 여야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검찰 수사 의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블랙리스트 논란에 본격적인 불을 지핀 것도 검찰이었다. 청와대와의 관련성 여부에 대한 수사 가능성까지 흘러나왔다. 검찰 내에선 “‘꽃놀이패’를 잡았다”라는 말도 공공연히 들린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면 앞으로 검찰이 현 정부를 상대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정부의 검찰 개혁안 추진에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 청와대가 검찰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청와대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원칙적으로 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검찰이 그 ‘카드’를 갖고 어떻게 활용할지는 알 수 없다. 청와대와 일종의 ‘딜’에 나설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월 26일 검찰총장실을 방문해 블랙리스트 수사를 촉구하며 농성을 벌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야당 의원 수십 명이 대검찰청 검찰총장실에서 집단 농성을 벌인 사례는 초유의 일이다. 수사 범위 등을 놓고 고민에 빠진 검찰에 대한 압박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비판했지만, 한국당 측은 검찰의 부실수사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자유한국당 의원은 “검찰이 환경부에 국한해 수사를 진행할 경우 특검과 국정조사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면서 “현 정권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진 블랙리스트의 몸통을 밝혀내는 데 검찰이 수사의 초점을 맞춰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