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친박·중립 성향 20여 명 오세훈 지지 결의…“황교안 체제론 총선 이길 수 없다”
2월 13일 자유한국당 선관위 회의에 참석한 박관용 선관위원장과 황교안 오세훈 김진태 후보. 박은숙 기자
황교안 오세훈 후보 지지 세력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황 후보는 주로 친박과 영남권에서, 오 후보는 비박과 수도권에서 우위를 보인다. 황 후보가 한국당 전통적 텃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에서 이번 전대를 계파 간 싸움으로 분석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 탄핵 정국 이후 해체 위기로까지 내몰렸던 친박계가 황 후보 영입에 공을 들인 것도 이런 판세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뒤를 잇는다.
김진태 후보 출마가 황 후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반응이 엇갈린다. 우선, 강성 친박인 김 후보로 인해 황 후보 이미지가 ‘세탁’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황 후보를 지지하는 한 의원은 “최근 5·18 발언으로 황 전 총리까지 공격을 받고 있다. 황 후보는 김진태 후보와 다르다. 특정 계파가 아닌, 통합을 최우선 목표로 내걸었다”고 말했다. 반면, 황 후보 주요 지지층인 친박 표가 갈려 불리한 것이란 반론도 적지 않다.
지금까진 ‘황교안 대세론’이 유효하다는 평가다. 보수진영 차기주자 지지율 1위에 힘입은 바다. 친박은 물론 중립성향 의원들 중에서도 황 후보 지지 여론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한국당 ‘집토끼’인 영남권에서의 지지가 황 후보에겐 천군만마다. 황 후보는 선거 유세 역시 이곳을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오 후보 측 의원은 “영남권에서 황 후보를 따라 잡지 못 하면 승산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 대표는 선거인단 모바일 및 현장 투표 70%에 일반국민 대상 여론조사 30%를 합산한 결과에 의해 선출된다. 선거인단은 대의원(8115명) 책임당원(32만 8028명) 일반당원(4만 1924명)으로 구성돼 있다. 책임당원 표심이 전대 결과를 좌우할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책임당원 50%가량이 영남권 출신이다. 이곳에서 앞서 있는 황 후보가 승리를 자신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정치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되면 황 후보 대세론이 지속되기 힘들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신차 효과에 따른 지지율 상승 추세가 꺾일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가혹한 검증 공세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정치에 입문했던 ‘신인’들 대부분 이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외연 확장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도 황 전 총리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전대 승패 ‘키’를 쥐고 있는 TV토론에서도 오 후보에 비해 황 후보가 열세일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핵심 지지층마저 흔들릴 조짐을 보여 황 후보 측은 ‘비상’이 걸렸다. 그 신호탄은 옥중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쐈다. 박 전 대통령을 유일하게 접견하고 있는 유영하 변호사는 “자신(황교안 후보)을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하고 국무총리로 임명한 그분이 수감생활을 하고 계신다. 그 수인번호가 인터넷에 뜨고 있는데 그걸 몰랐다? 거기에 모든 게 함축돼 있다”고 말했다. 황 후보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셈이다.
전대를 앞두고 있는 시기에 박 전 대통령이 ‘옥중 메시지’를 던진 것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특히 황 후보를 ‘콕’ 집어 비판한 것을 두고는 전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감옥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이 특정인을 대표로 당선시킬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낙마시킬 힘은 남아 있다”면서 “황 후보에 대한 배신감이 상당한 것으로 안다. 이번엔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앞으로 상황을 지켜보면서 직접적인 메시지를 한두 번 더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옥중 정치’에 대해선 회의적 견해가 대부분이다. 전대 결과에 미칠 파급력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사석에서 만난 한 자유한국당 비박계 의원은 “한때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 전 대통령이 완전히 감을 잃은 것 같다. 이제 와서 누가 박 전 대통령 말을 듣겠는가”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일각에선 유영하 변호사가 ‘자기 정치’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을 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이 전대 변수로 꼽히는 것은 적어도 영남권에선 ‘박심’이 어느 정도 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핵심당원 절반을 차지하는 영남권은 황 후보 지지세가 높다. 박 전 대통령 메시지 역시 이곳을 겨누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벌써부터 영남권에선 황 후보와 관련해 ‘배박(배신자 친박) 논란’이 뜨겁다. TK(대구 경북) 지역 한 국회의원은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고 전했다. 황 후보가 박 전 대통령 옥중 메시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황 후보 측 또 다른 인사는 “대세는 기울어졌다. 박 전 대통령 발언이 크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영남권 표심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누가 진짜 배신자인지는 유권자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탄핵 정국 때 당을 뛰쳐나간 오 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오 후보 측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휘둘리는 것 자체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황 후보는 ‘박근혜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황 후보가 돼도, 안 돼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범친박계와 중립 성향 의원들 20여 명이 오 후보 지지를 결의한 것으로 확인돼 관심을 모은다. 여기엔 황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으로 추측됐던 친박 의원들이 대거 포함됐다. 대세론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조짐으로 읽힌다. 이들은 설 연휴가 끝난 직후 은밀히 회동을 갖고, 오 후보를 밀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당시 이 회동에 참여했던 한 친박 의원의 말이다.
“오세훈이 최선은 아니다. 그렇지만 홍준표(불출마 선언)나 황교안은 아니다. 황교안 대표 체제로는 다음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 오세훈을 뽑자고 논의한 것이다. 비박에서 오 후보를 밀고 있으니 그동안 황 후보 지지세로 알려진 친박과 중립 성향 의원들 표를 끌어 오면 대세론을 무너트릴 수 있다. TV 토론과 유세가 진행되면 아마 더 많은 의원들이 오 후보 편에 가세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 메시지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앞서의 친박 의원은 “박 전 대통령과는 무관하다. 이제 우리는 친박이 아니다. 이번 전대는 계파 싸움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의 싸움”이라면서 “총선 승리를 강조하고 있는 오 후보 전략이 의원들에게 먹히고 있다”고 말했다. 오 시장 지지에 합류한 또 다른 친박 의원 역시 “예전 같으면 박 전 대통령 메시지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겠지만 이젠 아니다. 황 후보는 통합을 내세우지만 결국 박근혜를 등에 업고 전대에 임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박 전 대통령은 황 후보를 ‘비토’했다. 황 후보가 딜레마에 빠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