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실험 결과 쪼개 도용 수준 논문 여럿 작성…안 당선인 “2007년 규정 강화 전 관행이었던 점 감안해 달라”
안용규 당선인은 1993년 당시 강사였던 이재봉 씨, 조성담 씨와 함께 ‘태권도 선수의 경기 전 경쟁 불안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용인대 무도연구지 제5집 제1호에 올렸다. 이 논문은 표절 의혹작이다. 충남의 한 중학교 교사인 A 씨의 1993년 공주대 석사 학위 취득 논문 ‘투기 종목 선수들의 시합 전 경쟁 상태 불안에 관한 조사 연구(태권도, 유도, 복싱, 레슬링 종목을 중심으로)’를 쏙 빼닮았다. 인용 표시 없이 통째 같은 문단도 여럿 발견됐다.
이에 안용규 당선인은 “A 씨는 운동하던 후배다. 그가 쓴 논문은 내가 거의 다 도와준 논문이다. 내가 자료를 준 것도 있다”며 “그 당시 학위 논문인 경우 미발행작이니 학회나 논문집 등에 내라고 권장을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안 당선인 등이 쓴 논문에는 A 씨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재주는 석사생이 부리고 실적은 교수가 챙긴 셈이 됐다.
그는 “관행이라는 면을 감안해 줬으면 좋겠다. 2007년 교육부 연구규정 지침이 강화되고 표절의 정의가 분명해지기 전까지 학계는 많은 연구자가 뛰어난 학자의 연구 결과를 많이 인용하고 원문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널리 알리는 게 미덕인 시절이었다. 논문을 작성하는 ‘기법’의 일부였다”며 “공직에 진출해서 요직에 등용되는 선배 세대 학자가 청문회에서 논문 표절 혹은 복제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본다. 현재의 엄격한 기준으로 비춰보면 표절 규정에 일부 어긋날 수 있지만 스포츠 경기 규정이 세대마다 바뀌듯 연구 규정도 바뀌어온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A 씨의 논문(좌)과 안용규 당선인의 논문(우). 아예 데이터가 똑같다.
문제는 안용규 당선인의 또 다른 논문에서 A 씨의 실험 결과를 도용한 정황이 발견됐다는 점이다. 문장 및 문단 단순 표절을 넘어섰다. 안 당선인은 1994년 ‘복싱 선수의 경기 전 경쟁 불안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용인대 논문집 제10호에 올렸다. 이 논문 속 설문 조사 결과는 A 씨의 논문에 나온 설문 조사 결과 가운데 복싱 부분과 아예 똑같았다. 한 석사생의 학위 논문은 몇 개로 쪼개져 타인의 연구 결과물로 세상에 알려졌다. A 씨의 논문은 또 그렇게 이용됐다.
정선태 씨의 1979년 논문과 안용규 당선인의 1990년 논문. 데이터가 완전 일치한다. 실험 날짜만 바뀌었다.
도용 정황은 또 있었다. ‘뛰어난 학자’의 논문이 아니라 10년 전 완성된 한 석사생의 논문이었다. 안용규 당선인은 1990년 ‘구기종목선수의 체격 및 체력에 관한 분석적 연구’라는 논문을 써 용인대 논문집 제6호에 올렸다. 이 논문에는 정선태 씨의 1979년 동아대 석사 학위 논문 ‘체격과 체력이 스포오츠에 미치는 요인 분석에 관한 연구(경남 지역 여고생의 구기종목 선수를 중심으로)’에 담긴 실험 결과와 똑같은 내용이 담겼다. 정선태 씨는 자신의 논문에 농구와 배구, 핸드볼, 테니스 선수의 체격과 체력을 분석했는데 배구와 테니스 분석 내용은 안 당선인의 논문에 고스란히 담겼다.
논문 도용 논란은 논문 조작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총장직을 원하는 학자의 낮은 연구 윤리 의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 씨가 논문에 실은 선수의 체격과 체력 분석은 1978년에 있었는데 안용규 당선인의 논문에는 이 분석이 1988년에 시행됐다고 적혔다. 분석 대상 선수의 10년 전 체격과 체력은 10년 뒤에도 아예 똑 같은 꼴이 됐다.
서경화 씨의 박사 논문(좌)와 B 씨의 석사 논문(우) 결론 부분. 아예 똑같다.
안용규 당선인의 이런 ‘관행’은 한체대 제자에게도 유산처럼 세습됐다. 한체대에서 석사를 받은 B 씨는 안 당선인의 지도를 받아 2005년 8월 ‘중등학교 축구 지도자의 윤리적 지도성 연구’라는 논문을 남겼다. 이 논문은 6개월 앞서 안 당선인의 지도를 받은 뒤 완성된 서경화 씨의 박사 논문 ‘농구 지도자의 윤리적 지도성 탐색’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두 논문은 아예 다른 지도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결론 부분 일부가 통째로 같았고 전반적인 문장과 문단 구성이 거의 유사했다.
안용규 당선인은 일련의 논문 문제에 대해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논문 표절 문제는 2007년 2월 이후부터 이야기하게 돼 있다. 정부에서 2007년 2월 이후부터 이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7년 2월 이전 것은 논문 표절에 관한 문제는 크게 다루지 않는다”며 “B 씨 논문 표절 논란은 오래된 일이라 기억 나지 않는다. A 씨에게는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A 씨의 입장은 달랐다. A 씨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안 당선인이 틀을 잡아 주고 조언을 해준 건 맞지만 내 논문이 이렇게 사용된 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교육계는 안용규 당선인의 이런 반응이 전해지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원한 한 교육계 관계자는 “지금 안 당선인에게 제기된 문제는 출처를 깜빡 하거나 인용 표시를 까먹는 단순한 표절 시비가 아니다. 남의 설문 조사 결과를 가져오는 건 논문이라는 게 생긴 태초부터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현재의 엄격한 기준 때문에 문제시되는 게 아니라 학자로서의 기본 윤리 문제”라며 “뛰어난 학자 논문을 가져오는 게 미덕이었다는데 안 당선인이 가져온 건 후배 석사생 논문이었다. ‘미덕’은 이런 데 사용되라고 있는 단어가 아니다”라고 했다.
안용규 당선인은 2018년 11월 한체대 제7대 총장으로 당선됐다. 교육부의 임명 제청과 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승인을 앞두고 있다. 안 당선인은 2012년 제6대 총장 선거 때도 당선된 바 있었는데 개인적인 추문과 교수진을 향한 향응 및 접대, 아들 편입 문제 등의 의혹이 제기돼 낙마한 바 있었다. 최근 문재인 손아래 동서와의 관계가 드러나며 정권의 비호를 받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도 빠졌다. (관련 기사: 대통령 동서 행보에 시끄러운 교육계…한체대 총장 인준에 쏠리는 눈)
사진=YTN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는 5대 비리자의 고위 공직 임용 배제 원칙이 담겼다. 정권 초 “병역면탈·부동산 투기·세금탈루·위장전입·논문표절이 있었던 사람은 고위 공직자로 임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었다. 하지만 강경화 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5대 비리자 임용 강행으로 물의를 빚자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내세워 사과하기도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