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선임 앞두고 표대결 준비…엘리엇 거액 배당금 요구 vs 현대차 미래투자 명분 방어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 체제로 전환을 앞둔 현대차그룹에 대한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의 공세가 거세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 연합뉴스
엘리엇은 지난 2월 말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배당 확대와 추천 사외이사 3인의 선임 등을 포함한 주주제안과 이에 대한 주주들의 찬성표 요청이 담긴 서신을 보냈다. 지난 4일에는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한 프레젠테이션도 공개했다.
엘리엇과 현대차 대립의 핵심은 ‘배당’이다. 엘리엇은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 무산 및 실적 악화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수천억 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계에서는 엘리엇이 앞선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고배당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엘리엇은 지난해 기준 14조 3000억 원의 순현금자산을 보유한 초과자본 상태의 현대차 재무제표를 지적하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각 4조 5000억 원, 2조 5000억 원의 배당금 지급을 요구했다. 현대차의 향후 5년간 45조 원 연구개발 투자 발표에 대해서도 “해당 투자에 대한 수익률이 과거와 어떻게 다를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 꼬집었다. 또 현대차가 경영구조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외이사 3인을 추천, 이들을 이사회에 포함하고 회사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임토록 요구했다.
현대차는 지난 7일 공시를 통해 엘리엇 측의 주주제안을 거부했다. 현대차는 “엘리엇의 배당 요구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미래경쟁력 확보를 저해하고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훼손시킬 우려가 높다”며 “중장기적 주주환원정책은 일회적 고액배당에 관한 주주제안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사회 질적 강화가 더욱 중요하며, 이사회 추천 이사 후보들이 경영상 필요에 더 부합한다”고 맞섰다.
현재 보유한 지분만 놓고 보면 엘리엇의 주주제안은 주총에서 현대차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각각 2.9%, 2.6% 보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해 각각 29.11%, 30.1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 측과 표대결에서 승산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지분이 각각 44.60%, 46.37%임을 감안했을 때 엘리엇의 고배당 요구가 외국인투자자의 지지를 얻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에서는 만에 하나 엘리엇 측의 요구가 관철될 경우 현대차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장 투자 재원이 쪼그라드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도 투자계획을 실현하기 어려워져 실적 악화의 악순환에 시달릴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엘리엇의 배당 요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겠다는 것”이라며 “최근 친환경차와 스마트모빌리티, 차량공유 등 자동차업계가 급격히 변화하는 상황에서 현대차는 미래가치를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3%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엘리엇이 현대차를 흔들어 동조세력을 만들고자 시도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면서도 “엘리엇 입장에서는 총수가 바뀌는 타이밍에 악재가 누적된 현대차를 흔들기 좋은 기회라고 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현대차는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낮은 데다 보유 현금은 사용할 곳이 많아 엘리엇의 고배당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연구개발비가 다른 글로벌메이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앞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영업이익을 늘리고 주주 배당을 높여 안심시키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조만간 더욱 강화된 주주환원정책을 추가로 내놓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앞서 현대차는 지난해 9396억 원 규모의 자사주 854만 주를 소각한 바 있으며,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26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한 바 있다. 지난 2월 26일에는 현대모비스 공시를 통해 향후 3년간 1조 1000억 원 규모의 배당을 포함해 총 2조 6000억 원 규모의 주주환원을 시행하겠다는 내용의 중장기 주주환원 정책도 내놨다.
다만 현대차가 제시한 계획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증권업계에서는 엘리엇의 압박에 따른 현대차의 주주 배당 확대가 주가에 긍정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주총을 앞두고 우호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주주친화 정책 등을 내놓는 현대차의 행보가 투자심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 한편에서는 현대차가 제시한 주주환원 정책이 그다지 새롭지 않은 만큼 앞으로 추가적으로 내놓을 정책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준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지난 27일 보고서를 통해 “제시된 주주정책에 근거한 산술적 기업가치 개선은 제한적이고, 배당 및 자기주식 소각은 새롭지 않다”며 “향후 기업가치 방향성은 최근 보여진 영업지표 개선을 통한 실적 증대라는 본질과 더불어 지배구조 개편 과정 속 등장할 추가적인 주주친화정책 강도에 연동될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주총 예정일이 다가옴에 따라 양측은 주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엘리엇이 표대결을 선언한 이상 양측이 주주들의 지지를 얻고 위임장을 받기 위해 상당한 물밑작업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엘리엇 측 관계자는 “주주들에 서신과 프레젠테이션 보낸 이후 추천 사외이사들을 소개하는 영문 홍보영상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며 “국내 투자자들을 위해 국문 영상을 제작할 가능성도 있으나 현재까지 엘리엇에서 받은 추가 설득작업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 2월 27일 최초로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비공개 설명회를 열고 경영 전략 및 연구개발 투자 등을 설명하고 미래 성장계획을 제시했다”며 “추가적인 주주설득 작업에 대해서는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국민연금 백기사로 나서나 국민연금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지분을 각 8.7%, 9.45% 보유한 2대 주주다. 설사 엘리엇이 주주들의 응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현대차가 국민연금의 지지를 받는다면 엘리엇과 표대결에서 무난히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엘리엇이 요구한 고액 배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엘리엇이 요구한 배당금 규모는 지난해 현대차 영업이익의 배가 넘는다.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 세부기준에 기재된 ‘이익잉여금 처분의 적정성’에 따르면 “배당금 지급 수준이 회사의 이익규모, 재무상황, 투자기회, 자사주 매입 규모, 임직원에 대한 보상 및 기부금 등을 고려해 주주가치를 훼손할 정도로 과소하거나 과다한 경우 반대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이 외국 헤지펀드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현대차가 국내 경제에서 역할이 있는 만큼 국민연금이 이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현대차와 관련해 아직 의결권 행사 향방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며 “위원회 회의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