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복마전’ 인식, DJ 참여·출입 금지령…예능국 관련 소재 자체 검열, 페스티벌 후원도 끊겨
최근 만난 한 방송사 예능국 PD는 요즘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강남 클럽 버닝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손사래부터 쳤다. ‘클럽=타락의 온상’이라는 편견이 깊게 자리 잡으며 한동안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였던 클럽을 솎아내기 위한 작업에 한창이기 때문이다.
이는 연예계도 마찬가지다. 클럽은 가수뿐만 아니라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OOO가 클럽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지가 추락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연예계와 방송가에는 ‘클럽 주의보’가 발령됐다.
# 예능 프로그램부터 페스티벌까지 ‘불똥’
강남에는 버닝썬 외에도 아레나, 메이드, 옥타곤 등 다양한 클럽이 밤마다 클러버들을 끌어 모은다. 버닝썬이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문을 닫으며, 이곳을 찾던 이들이 타 클럽으로 옮겨 ‘오히려 장사가 잘 된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의 ‘해외 투자자 성접대’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서울 강남 클럽 ‘아레나’를 압수수색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대중이 느끼는 공포심과 꺼림칙함도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특히 불특정 다수에 노출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클럽’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것부터 꺼리고 있다. 한동안 클럽은 유명 연예인과 강남에서 ‘좀 논다’는 이들이 모이는 ‘힙’한 장소의 대명사였다. K-팝을 필두로 한류 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클럽 문화를 즐기기 위해 한국을 찾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각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진이 클럽에 가서 즐겁게 노는 것을 여과 없이 방송하기 시작했다. 몇몇 프로그램에서는 아예 클럽으로 유명한 해외로 원정 촬영을 가거나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는 승리를 직접 출연시키기도 했다.
MBC ‘나혼자 산다’에 등장한 클럽 관련 장면. 방송 화면 캡처.
또한 클럽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는 토크쇼의 단골 소재였고, 요즘 클럽에서 유행한다는 춤을 선보이기 일쑤였다. 앞서 언급됐던 예능 PD는 “버닝썬 사태를 통해 클럽에서는 성폭력, 마약, 물리적 폭행, 탈세, 몰카 등이 빈번하게 이뤄진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며 “클럽에 출입한다는 이유만으로 부도덕한 인물로 낙인 찍힐 수 있고, 방송 역시 퇴폐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고 귀띔했다.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록페스티벌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EDM(Electronic Dance Music) 페스티벌 역시 적잖은 피해를 보고 있다. 유명 DJ들이 출연하고, 클럽에서 자주 즐기는 전자음악을 바탕으로 한 페스티벌인 만큼 클러버들의 참여가 높은 편인데, 클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며 후원을 꺼리는 업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4월부터 곳곳에서 EDM 페스티벌이 열리기 시작하는데 이번 사태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 페스티벌을 주최하는 측에서는 예년만 못한 반응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EDM 페스티벌은 세계적인 DJ들도 초청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열리기 때문에 수준 높은 공연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때문에 유명 연예인들도 다수 참여하는 편인데 요즘은 소속사를 통해 공식 초청을 받아도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 고사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 왜 연예인들은 클럽을 찾을까?
버닝썬을 둘러싸고 클럽의 민낯이 드러나기 전에도 여러 클럽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술을 마시고, 아주 좁은 공간에서 춤을 추며 부대끼기 때문에 시비가 붙을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외모가 뛰어나고 경제력이 남다른 이들이 모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여러모로 클럽은 다른 장소에 비해 사고 위험이 높은 곳으로 분류돼 각 연예기획사에도 소속 연예인들에게 출입 자제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연예인들이 클럽을 자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 연예인들은 클럽에서도 ‘VIP’로 통한다. 유명 클럽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지만 연예인들은 대기하는 법이 없다. 담당 MD를 통해 ‘그들만의 통로’로 무사통과한다. 또한 미리 빼놓은 좋은 자리에서 음악을 즐기며 술을 마시고 춤을 출 수 있다. 결국 패션과 유행을 선도하는 ‘핵인싸’들이 모이는 클럽에서도 연예인들은 자신의 인기를 실감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셈이다.
클럽 입장에서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유명 연예인이 자주 오는 클럽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면 그들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의 클러버들이 모인다. 강남 클럽의 MD 출신인 A 씨는 “연예인이 왔다고 하면 그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말을 건네 보려는 이들이 줄을 선다. 게다가 그들이 DJ로 나서는 날이면 손님이 더 늘어난다”며 “특히 요즘은 밤을 새우고 점심때까지 운영하는 클럽도 적지 않기 때문에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 연예인 입장에서는 일과를 끝낸 후 아무 때나 편하게 찾아와 놀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클럽 전체가 매도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각 나라와 도시마다 손에 꼽는 유명 클럽이 있을 정도로 클럽은 각국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클럽=복마전’이라는 선입견이 생기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도 늘었다. A 씨는 “클럽 문화는 지난 10년간 크게 번성하면서 향유 계층이 늘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다”며 “온갖 범죄 행위들을 바로잡는 기회로 삼는 것이 우선이지만, 이로 인해 클럽 전체를 부도덕하게 바라보는 인식이 생긴 것은 아쉽다”고 토로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