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룸값 600만~1억대…조각 미남 아니면 ‘조각’ 멤버 모아 ‘강북테이블’이라도 잡아야
14일 클럽을 찾은 최 아무개 씨(28)에게 ‘버닝썬 사태’ 이후 변화를 물었다. 그는 “피부로 느껴지는 큰 변화는 없다. 오히려 평일엔 사람이 더 늘었다. 다만 위험하게 노는 사람은 이제 일반 손님이건 VIP건 상관없이 내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당초 클럽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춤추고 공연을 즐기는 곳이었다. 현재와 같은 형태로 변한 시점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인기가 시들해진 나이트클럽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이들의 역할이 자연스레 클럽으로 넘어온 까닭이다. 부킹은 ‘픽업’이란 은어로 다시 태어났다. 입장료만 받던 클럽에 수십 개의 테이블이 생겼고 2층엔 ‘룸’이 들어섰다. 이른바 ‘테이블 장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강남 일대의 한 클럽 관계자 이 아무개 씨(26)는 “대형 클럽은 유지비가 어마어마하다. 과거와 같은 수익 구조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버닝썬은 물론 아레나, 옥타곤, 페이스 등 유명한 강남 클럽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테이블 장사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룻밤의 유흥에 들어가는 돈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테이블 없이 놀고 싶다면 스탠딩으로 입장하면 된다 스탠딩 손님의 경우 여성은 무료, 남성은 2만~3만 원의 입장료만 내면 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테이블이다. 테이블을 잡고 놀려면 드는 비용은 최소 몇 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이다.
클럽 내 테이블 가격이 제각각인 이유는 등급 때문이다. 이 등급은 테이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데 DJ 부스와 무대를 중심으로 초메인, 메인, 준메인, 일반 테이블로 나뉘는 게 일반적이다. 같은 등급이어도 무대 중앙에 가까울수록 비싸다. 클럽에 따라 준준메인을 두고 장사하기도 한다.
A 클럽의 경우 일렉트로닉 음악을 틀어주는 일렉존 일반 테이블은 28만~45만 원, 준메인 테이블은 최소 87만 원부터 시작한다. 메인 테이블과 초메인 테이블은 각각 100만 원과 200만 원선을 훌쩍 넘는다.
이렇게 잡은 테이블로 손님의 ‘급’도 나뉜다. 전직 MD인 김 아무개 씨(26)는 “무대를 중심으로 강남 테이블과 강북 테이블을 나누곤 한다. DJ 부스 주변의 테이블은 강남, 화장실 주변과 입구 근처 테이블은 강북이다. 다들 강남으로 오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과 강북 표현은 손님의 실제 거주지와는 무관하다. 그저 메인 구역과 그 외 구역을 나눌 때 이쪽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라고 했다.
사람이 붐비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테이블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 테이블 예약에 성공해도 나중에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 이때는 술을 더 시켜야 한다. 이것을 ‘베팅’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경매와 유사하다. 앞서 언급한 테이블 금액에 추가 술을 얹는 것이다. 상대방보다 더 많은 술을 주문해야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다.
결국 테이블을 차지하기 위한 ‘바틀’ 경쟁이 붙는다. ‘바틀’은 750㎖짜리 술 1병을 지칭하는 말로 ‘5바’는 750㎖ 술 5병이라는 뜻이다. 이 외에도 5병을 모두 샴페인으로 구성하면 ‘5샴’, 보드카, 진 등의 증류주로 구성하면 ‘5하드’(hard liquor의 줄임말)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하드가 샴보다 5만 원가량 더 비싸지만 실제 적용되는 가격은 매일매일 다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금요일에는 최소 3바틀, 토요일에는 4~5바틀을 주문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싼 술값을 나눠서 지불하기 위한 모임도 만들어졌다. 업계에서는 이를 ‘조각’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주로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해 조각 멤버를 모집했지만 최근에는 아예 클럽 직원이 나서서 조각 멤버를 모아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멤버 4~7명이 테이블 1개 비용을 나눠 낸다. 조각은 대부분 일회성 모임이다.
조각의 목적은 대부분 부킹이다. 클럽을 찾은 남성 다수는 “스탠딩 입장은 뛰어난 미남에게나 가능한 소리다. 일반 남성의 경우 조각 멤버를 모집해서라도 테이블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 손님과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조차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테이블을 잡으면 ‘술 한잔 하고 가’라든지 ‘앉아서 쉬었다 가’ 등의 말로 상대방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이른바 ‘강남 구역’에 위치한 메인 테이블을 잡을수록 부킹 성공확률도 올라간다. 무대 위 여성들과 접촉할 기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발견하면 손을 뻗어 자신의 테이블 위로 끌어당기는 ‘낚시질’을 할 수 있는 것도 메인 테이블 손님만의 특권이다.
수많은 조각이 모여도 오를 수 없는 곳이 있으니 바로 VVIP 자리다. 2층에 위치한 VVIP 룸 안에서는 아래 무대가 훤히 보이는 것은 물론 밖에서 들리는 음악을 룸 안에서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 여기엔 일반 손님이 들어올 수 없고 룸을 예약한 VVIP와 이들의 선택을 받은 특정 손님만 들어갈 수 있다. 김 씨가 보여준 지난해 VVIP 룸의 최소 가격은 600만 원부터 최대 1억 원이었다. 이런 룸을 예약하는 손님은 대개 특정인이다.
김 씨는 “VVIP 룸은 조각으로 올 수 없다. 고액 손님은 늘 정해져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헤미넴”이라고 말했다. ‘돈 뿌리는 남자’로도 유명한 그는 지난해 4월 버닝썬에서 1억 원 상당의 최고급 양주 세트인 ‘만수르 세트’를 주문한 장본인이다.
VVIP 손님을 위해 샴페인을 배달하는 샴걸 사진.버닝썬 홈페이지
고액 상품을 주문하면 클럽 내 모든 이들의 관심은 덤이다. 클럽에서는 VVIP만을 위한 전광판을 천장에 띄운다. 메시지 내용은 주문한 사람이 직접 정하기도 하고 클럽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준비하기도 한다. 뒤이어 몸매가 훤히 드러난 옷을 입은 여성 대여섯 명이 폭죽을 끼운 양주를 들고 등장한다. 일명 ‘샴걸’이다. 샴걸의 행진이 끝나면 클럽 직원들의 응원가도 이어진다.
최근에는 부쩍 외국인 손님이 늘었다. 김 씨는 “버닝썬 사건이 발생하고 한국인 손님의 주춤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외국인 손님은 줄지 않았다. 태국인, 대만인도 많지만 VVIP 중에는 특히 중국인이 많다. 그들은 씀씀이부터 다르다. 몇 천만 원의 거금도 턱턱 내곤 한다”고 말했다.
‘거금을 냈다’며 과도한 대가를 바라는 VVIP도 적지 않다. 서버팁을 줄테니 술에 취한 여성을 찾아 오라고 한 뒤 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룸 안에 들어오지 말라는 식이다. 클럽 내 룸이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는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김 씨는 “새벽 4시가 되면 MD들이 모인 채팅방에 술에 취한 여성을 찾는 메시지가 올라오곤 했다”며 “범죄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클럽에선 다들 술 한잔씩 하지 않나. 물론 만취한 여성을 데려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성범죄가 아닌 다른 종류의 범죄가 공모되기도 한다. 김 씨는 “룸 안에서 마약을 한다는 소문은 과거부터 공공연히 돌았다”며 “영업이 끝나고 2층 바닥에서 주사기를 본 적이 있다. 워낙 폐쇄적인 공간이다보니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클럽 내 성폭력, 불법영상물 촬영, 탈세와 마약 유통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클럽 버닝썬과 아레나는 최근 폐업을 결정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의혹 중심’ 클럽 MD 그들은 누구? 수단 방법 뭣이 중헌디? VVIP 모시면 몇달 든든 ‘버닝썬 게이트’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비단 연예인뿐만이 아니다. 클럽 ‘버닝썬’ 안에서 벌어진 불법촬영물 공유와 성접대 알선, 마약 공급 등 각종 의혹의 중심에는 늘 클럽 MD가 있었다. MD는 일반적으로 상품기획자를 뜻하는 머천다이저(Merchaniser) 혹은 매니징디렉터(Managing Director)의 줄임말로 클럽 업계에서는 영업직원과 유사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MD의 주 업무는 클럽에 고객을 유치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손님의 테이블을 대신 예약해주고 그 테이블에서 발생한 수익의 10~20%를 중개 수수료로 받는다. 일부 클럽의 경우 예쁜 여성 손님을 데려오면 인당 2000~4000원의 수고비를 챙겨주기도 한다. 손님을 많이 유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고액 손님을 끌어오는 것이다. MD의 능력은 개점 전 열리는 ‘조판회의’에서 판가름 난다. 조판회의란 ‘어떤 손님에게 몇 번 테이블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회의로 고액 손님일수록 테이블을 낙찰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테이블 매출에서 중개 수수료를 받는 MD로서는 자신의 손님이 조금이라도 더 비싼 금액에 테이블을 사도록 유도해야 하는 셈이다. 한 전직 MD는 “MD는 모두 프리랜서다. 특정 클럽에 소속된 직원이 아니다보니 입사도 퇴사도 자유롭다. 고액 손님을 끌어내기 위한 영업방식에도 제한이 없다. 사실 클럽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버닝썬에서 일어난 성추행이나 마약 논란 역시 MD의 과열된 고객 유치가 낳은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최희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