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접대’ 아닌 ‘성범죄’ 적용 땐 공소시효 3배 늘어나…장자연 사건은 ‘경우의 수’ 복잡
# 특수강간 적용시 처벌 가능
검찰과거사위원회가 활동 기간을 연장하고자 하는 기간은 2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특수강간 의혹’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풀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김 전 차관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하는 별장 동영상 촬영 시기는 2009년 쯤. 그마저도 추정인데 현재 드러난 증거만으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윤 씨에게 알선수뢰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혹은 단순 향응 수수라 하더라도 각각 공소시효가 5년, 7년에 불과해 처벌이 불가하다.
하지만 수사 흐름에 따라, 추가적인 혐의가 적용될 경우 공소시효가 대폭 늘어난다. 일각에서 제기된 약물 강제 투약 및 성폭행 의혹을 입증할 수 있다면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원래 수사 방향이던 ‘대가성 성접대’가 아니라, ‘성범죄’로 방향을 바꾼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공소시효가 15년으로 대폭 늘어난다. 사건 발생 시점을 2009년으로 가정하더라도, 2024년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만에 하나, DNA 증거 등이 나오는 과학적인 데이터가 추가될 경우 공소시효는 25년까지도 확대할 수 있다.
실제 과거사 진상조사단 총괄팀장을 맡고 있는 김영희 변호사는 지난 18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김학의 전 차관의 별장 성 접대 의혹은 ‘특수강간’ 사건으로 볼 경우 15년의 공소시효 적용이 가능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좀 더 복잡한 장자연 사건
고 장자연 씨 성접대 사건은 좀 더 복잡하다. 단순 혐의 변경으로는 불가하다. 하지만 가능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장자연 씨 사건이 터진 것은 지난 2009년. 장 씨는 유력 인사들로부터 성상납을 강요당했다고 폭로한 뒤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사건은 이보다 시점이 다소 빨랐다. 2008년 8월부터 9월 사이, 기획사 사장 김 아무개 씨가 접대 자리에 자신을 불러 잠자리를 강요했다는 게 장자연 씨가 문서 7장에 남긴 폭로였다.
그 후 분당경찰서와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이 성상납 의혹에 대해 수사했지만, 결과는 다소 미진했다. 리스트에 등장한 인물에 대한 성접대 의혹을 당시 수사기관이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서, 장자연 리스트 사건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은 공소시효 10년이기 때문. 술자리 접대를 받은 남성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강요죄도 7년이기 때문에 지난해 8월 공소시효는 모두 만료됐다.
하지만 검찰은 ‘미리’ 손을 써 놨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6월 진상조사단 권고에 따라 공소시효가 2개월 남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 정치인 조 아무개 씨를 강제추행(공소시효 10년) 혐의로 기소했다. 이 기소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건 흐름을 잘 알고 있는 검찰 관계자는 “장 씨로부터 2008년 즈음 성 접대를 받았다고 할 경우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미 기소된 조 씨와 공범으로 엮일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며 “조 씨가 지난해 기소되면서 장 씨와 조 씨의 술자리에 함께한 적이 있는 유력 인사가 강제추행이나 성 접대를 받은 게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에 한해서는 조 씨 사건의 공모관계가 되기 때문에 처벌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KBS 뉴스 화면 캡처.
# 공소시효, 검찰 재량권 중 하나
그렇다면 이처럼 공소시효를 다르게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큰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 바로 검찰이다. 검찰이 수사 도중 재량에 따라, 죄명을 달리 적용해 공소시효를 조절, 기소와 불기소, 사건 종결 등을 하곤 한다.
익명을 요구한 검사는 “자동차 리스비를 내지 못해서, 사기로 고소됐다고 하더라도 처분 시점이 나중일 경우 혐의를 사기가 아니라 횡령으로 의율 변경해서 혐의 적용 시점을 늘리곤 한다”고 언급했다. 실제 형법상 사기죄 고소‧고발 공소시효는 7년이지만, 업무상횡령죄의 공소시효는 10년으로 처벌할 수 있는 기간이 더 길다.
법마다 범죄 발생 시점으로 삼는 기점이 다른 것도 검찰이 활용하는 방법이다. 실제 사기는 처음을 사건 발생 기점으로 삼지만 횡령은 보관하다가 처분한 시점을 기점으로 삼기 때문에 공소시효에 따른 처벌 가능성이 사기보다 높아진다.
포괄일죄도 수사기관이 공소시효를 극복하는 요령 중 하나다. 포괄일죄는 여러 번에 나눠진 범죄 행위에 대해, 포괄적으로 1개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경우 하나의 죄로 판단해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괄일죄의 공소시효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최종 범죄행위가 종료됐을 때 시작한다.
만에 하나 김학의 전 차관이 동영상 외에 진술 등으로 드러나는 추가 성접대 및 특수강간 혐의가 있다면 여러 번의 혐의를 하나로 묶어 ‘마지막 발생한 범죄 시점’으로 포괄일죄를 구성해 공소시효를 최대한 길게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다스 등으로부터 이 전 대통령이 챙긴 회사 돈에 대해 포괄일죄를 적용, 349억 원의 횡령이 있었다고 기소했지만 법원은 포괄일죄를 적용하지 않고 이 가운데 범죄 혐의 시점이 적용 가능한 약 246억 원만 인정한 바 있다.
검찰 출신의 법조인은 “적극적으로 처벌하려고 할 때도 적용이 가능하지만, 되레 소극적으로 처벌을 하지 않으려고 할 때 빠져나갈 수 있는 명분 중 하나도 공소시효”라며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의 경우 검찰이 애초 수사 의지가 강하지 않았지만 이제 와 처벌하려고 하니 다른 혐의를 찾아내지 않나. 공소시효를 없앨 수는 없지만 경찰이나 검찰이 공소시효를 이유로 수사를 종결하는 부분도 정치적인 고려는 없는지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