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피해자가 한체대 학생 아니라서”…논문 바꿔치기도 감사 결과에 포함 안돼
전명규 교수. 사진=일요신문 DB
교육부는 3월 21일 오전 교육신뢰회복추진단 제5차 회의를 열고 한체대 종합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명규 교수는 조재범 전 쇼트 트랙 국가대표 코치에게 폭행 당한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종용했다고 확인됐다. 전 교수는 피해 학생은 물론 가족까지 만나 폭행 사건 합의 또는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 응하지 않을 것 등을 강요했다. ‘졸업 뒤 실업팀 입단’ 등 밥그릇 문제를 압박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나타났다.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사태가 터지고 교육부 감사가 진행된 올 초까지도 피해자를 직간접적으로 만나 압박했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전 교수는 1월 21일 긴급 기자 회견을 열어 이런 의혹을 모두 부인한 바 있었지만 이번 감사로 거짓이 모두 들통났다.
이뿐만 아니었다. 전명규 교수는 빙상부 학생이 협찬 받은 훈련용 사이클 2대를 가로채기도 했다. 법에 따라 입찰 절차를 거쳐야 쓸 수 있는 한체대 빙상장을 제자가 운영하는 사설강습팀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해에 걸쳐 ‘특혜 대관’을 해주기도 했다. 주민등록 세대가 다른 가족을 신고하지 않고 2003년부터 2018년까지 15년에 걸쳐 가족수당 1000여만 원을 수령한 점도 드러났다. 대한항공 빙상팀 감독에게 대한항공 승무원 면접 지원자 정보를 보내면서 ‘가능한지 알아봐 달라’고 청탁한 사실 등도 동시에 적발됐다. 이 외 한체대에서는 교수진의 비리와 학사 관리 부실 등 총 82건의 비리가 적발됐다.
문제는 이번 교육부 감사가 촉발되는데 결정적이었던 성폭력 제보 관련 감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심석희 폭로가 있은 뒤 10일 만인 1월 19일 두 번째 빙상 미투가 나왔다. 가해 의혹을 받는 사람은 조재범 씨와 마찬가지로 한체대 사설 강사였다. 밀폐된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입을 맞춘다거나 껴안으려고 해 너무 힘들었지만 한체대와 멀어지면 빙상인으로서 자신의 삶이 끝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피해자의 고백이 폭로됐다. CNN 등 외신에도 소개됐다. 피해자는 10대 시절이었던 2016년 초부터 2017년 하반기까지 약 2년 가까이 한체대에서 스케이트 사설 강습을 받았다. 한체대는 한체대 소속 빙상단 외 초중고생 선수반 약 70여 명에게 사설 강습을 했다. (관련 기사: “돼지 같은 x, 폭언하며 강제키스” 빙상계 두번째 미투 피해자 단독 인터뷰)
이 피해자의 외침은 지난해 이미 교육부로 접수된 상태였다. 2018년 5월 30일 교육부 소속 황 아무개 주무관은 이 피해자가 한 사설강사에게 성추행과 잦은 폭행, 폭언을 당해 왔다는 내용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이 전자우편에는 또 다른 학생의 폭행 피해도 함께 담겼다. 교육부가 이 제보를 건네 받았을 때 교육부는 한체대를 특별 조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관련 기사: [단독] 교육부, 한체대 성폭력 제보 받고 무시했다)
1월 11일 ‘일요신문’ 보도가 나가자 3일 뒤인 1월 14일 교육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교육신뢰회복추진단 1차 회의를 열었다. 유은혜 부총리는 “인지한 담당직원에 문제가 있었다. 조만간 조치해 알리겠다”고 덧붙였다. 이진석 고등교육정책실장 역시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지난 주말에 인지를 했다.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 문제를 인지하고도 보고를 안 하고 무시한 담당 직원에 대해 어떻게 조치할지, 또 어떻게 유관기관에 통보할 것인가에 대해 조만간 정리해서 발표하겠다”고 말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교육부는 피해자를 부르지 않았다. 피해자가 한체대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2018년 조사 때 피해자의 제보를 받고도 무시한 황 아무개 주무관은 “나는 당시 조교 갑질만 담당했다”고 말한 바 있었다. 이런 교육부의 관습은 이번에도 계속됐다. 피해자는 21일 “교육부가 연락을 해 오거나 만남을 요청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한체대 학생이 아니라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학생은 피해 당시 대한민국 교육부의 관리를 받는 한 고등학교 소속 고등학생이었다.
감사 기간에 제기된 초유의 논문 바꿔 치기도 감사에는 담기지 않았다. 한체대에서 2007년 석사 학위를 받은 현직 지방 사립대 교수 등 2명은 자신들의 논문이 도용 및 표절 의혹을 받자 새 논문을 쓴 뒤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서 원 논문과 바꿔 쳤다. 2명 모두 한 연구실 소속으로 같은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고 나타나 조직적으로 논문 표절 및 바꿔 치기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었다. 교육부가 지지부진하자 국회 교육위원회가 현재 이 문제를 들여다 보고 있다. (관련 기사: 정치인이 따라할라…표절 완벽히 감춘 ‘논문갈이’ 실체)
이번 감사에서는 전명규 교수 관련 문제 외 다른 종목 교수의 비리도 대거 적발됐다. 볼링을 담당하는 한 교수는 국내외 대회 및 훈련을 69 차례 진행하며 학생에게 소요경비 명목으로 1인당 25만∼150만 원을 걷었다. 총 5억 9000여만 원을 현금으로 챙긴 뒤 증빙자료를 만들거나 정산하지 않았다고 드러났다. 그 가운데 1억여 원은 훈련지에서 아는 사람과 식사하는 등 사적 용도로 사용됐다.
생활무용학과를 담당하는 한 교수 역시 학생 1인당 6만∼12만 원씩 ‘실기특강비’를 걷어 증빙서류 없이 사용했다고 나타났다. 배우자와 조카를 강사로 썼다. 학교에 신고 없이 강의를 시켰다. 사이클 담당 한 교수가 학부모 대표에게 현금 120만 원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밖에 2010∼2019년 체육학과 재학생 가운데 국가대표급 선수를 교직이수 예정자로 선발하며 승인 정원 240명을 초과한 1708명을 선발해 교원자격증을 줬다고 밝혀졌다.
교육부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전명규 교수 등 교직원 35명 징계 요구안을 한체대에 전하고 12명은 수사 기관에 고발키로 했다. 감사 결과를 전해들은 빙상계는 “전 교수를 파면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한체대 내부에서는 정직 수준으로 마무리 할 계획을 세웠다고 전해졌다. 과연 어떤 징계가 내려진지, 지켜볼 일이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추후보도] 빙상 선수 A 씨에 대한 B 코치의 성추행 의혹은 검찰 조사 결과 기각 본지는 2019년 3월 22일 특종/단독면에 ‘성폭력 제보 또 무시…반쪽짜리 교육부 감사에 한숨 돌린 한체대’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보도에 언급된 빙상 코치(강사)가 “2019년 4월 검찰로부터 피해 사실에 대한 진술을 청취할 수 없고, 피의사실을 인정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것일 이유로 각하 처분을 받았다”고 밝혀와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