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손해 보더라도 주력법안 처리 의지…한국당 의석수 감소 막으려 반대…가장 이득 보는 정의당 사활 걸어
민의 반영을 위해 시작했다는 선거제 개혁이 점점 당리당략으로 흘러가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발을 빼면서 선거제 개혁 처리가 불투명해진 가운데, 문희장 국회의장의 결단에 이목이 쏠린다. 사진은 지난 1월 김관영 바른미래당·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심상정 정개특위위원장(정의당),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 없다. 박은숙 기자.
지난해 12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단식 투쟁,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의 천막농성으로 군소정당은 선거제 개편을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등을 패키지 법안으로 들고 나오며 선거제 개편에 합세했고, 뒤늦게 한국당이 힘을 보태 같은 달 15일 여야 5당은 선거제 개혁에 합의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렇게 순탄하게 넘어갈 국회가 아니었다.
국회 정개특위는 기한을 지키지 못했고, 획정위도 선거구 확정을 못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각 정당은 늦게나마 정당별 선거제 안을 정개특위에 제출했으나, 한국당은 비협조적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여야 4당이 한국당을 제외한 채 패스트트랙을 논의하자 한국당은 뒤늦게야 개편안을 제출했다. 문제는 ‘비례대표를 없애자’는 내용의 한국당의 주장이었다. 이에 따를 수 없었던 여야 4당은 이 안건을 한국당 없이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할 예정이다.
# 선거제 개편안의 핵심은
이번 선거제 개편(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초안은 지역구를 225석(현행 253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75석(현행 47석)으로 늘린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그 비례대표를 ‘연동형’으로 뽑는다는 것이 여야가 협의한 선거제 개편안의 주요 골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것으로, 지역구 당선자 수가 정당 득표율에 미치지 못하면 그만큼 비례대표 의석수를 추가 배정해서 비율을 맞추는 것이다.
때문에 정의당과 같이 정당 득표율에 비해 의석수가 적은 정당이 의석수를 더 확보할 수 있는 제도다. 당초 소수 정당은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100% 비율로 배분을 하다보면 의원정수 300석을 넘을 수 있고, 이에 따라 위헌 논란은 물론 국민의 반발에도 부딪힌다. 때문에 국회는 의원정수 300석을 넘지 않도록 민주당의 중재안인 ‘준연동형 50%’로 조정됐다.
이외에도 비례대표 의석수 합이 무조건 75석이 넘지 않도록 하는 부대조항을 달고, 지역구에서 1위를 하지 못해 아깝게 당선되지 못한 후보가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도록 해주는 ‘석패율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또한, 선거권 나이를 만 19살에서 18살로 한 살 낮춰 ‘청소년 참정권’을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 괴물이 돼버린 산식
지역구는 시도별 인구수를 고려해 의원정수를 정하고,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이에 맞게 선거구를 정하게 된다. 지역구 선거는 최다득표 1인을 뽑는 기존의 방식과 같다.
그러나 비례대표 선출 방식은 복잡하다. 비례대표 연동률을 100%가 아닌 50%로 정한 것은 의원 정수를 300석 이상으로 늘리지 않기 위해서다. 아울러 지역구 당선자 수가 많은 정당이 비례대표를 한 석도 가져가지 못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결과로 도출된 산식이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에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의 선거제도인 ‘소선거구+정당 비례대표’ 방식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배정이 별개로 이뤄지는 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배정이 연계돼 있어 의석 배정 방식이 더욱 복잡하다. (1차)‘연동형’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우선 배정하고, (2차)잔여 의석에 다시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병립형’으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정의당)은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선거제도가 숫자로 보면 굉장히 복잡하다. 산식은 아무리 복잡해도 컴퓨터로 처리하면 되는데,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어렵다”며 “산식은 기자 여러분은 이해 못 한다. 산식은 과학적인 수학자가 손을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 기자가 ‘우리가 이해 못 하면 국민은 어떻게 이해하겠느냐“라고 묻자 심 위원장은 “국민은 산식이 필요 없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할 때 컴퓨터를 치는 방법만 알면 되지, 그 안에 부품이 어떻게 되는 건지까지는 알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비례대표 배분 방식으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나치게 복잡한 방법으로 유권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표가 어떻게 적용될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다른 셈법
각 매체마다, 그리고 대입하는 여론조사에 따라 결과 값은 달라진다. CBS가 20대 총선에서 각 당이 획득한 지역구 의석수와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YTN 의뢰 지난 11~15일 실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데이터를 인용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민주당은 130석, 한국당은 117석,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이 합쳐서 27석, 정의당은 16석이다(무소속 제외하고 290석).
조선일보의 시뮬레이션은 한국갤럽(12~14일 실시, 자체조사)과 리얼미터(tbs 의뢰, 11~13일 실시) 두 여론조사 결과를 활용했다. 우선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반영했을 때 각 정당별 의석수는 민주당 143석, 한국당 95석, 바른미래당 24석, 평화당 12석, 정의당 17석, 애국당 1석, 민중당 1석, 무소속 6석으로 총 299석이 된다. 반면, 리얼미터 결과를 적용하면 민주당은 131석, 한국당은 113석, 바른미래당은 19석, 평화당은 13석, 정의당은 15석이 된다.
위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각 정당의 현재 의석수와 어떤 차이를 보일까. 현재 의석수는 더불어민주당 128석, 한국당 113석, 바른미래당 29석,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5석, 무소속과 기타(대한애국당‧민중당) 9석으로 총 298석이다. 세 가지 시뮬레이션은 각기 다른 결과를 보였지만, 한국당의 의석수가 줄어드는 것은 공통적인 사항으로 보인다. 또, 높은 정당득표율을 얻은 정의당이 현재와 비교해 3배에 가까운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다. 민주당은 현재 의석보다 적게는 3석에서 많게는 32석까지도 얻게 된다.
다만, 위의 시뮬레이션은 20대 총선 결과를 기반한 것으로 21대에는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20대 총선 당시 국민의당이 38석이라는 놀라운 쾌거를 이뤘지만, 이후 바른정당과의 통합, 그리고 현재 바른미래당 내부의 내홍을 거치며 21대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의석수가 가장 많은 정당이지만, 점점 하락하는 지지율을 미뤄볼 때 21대 총선 승리도 장담하긴 어렵다.
# 엇갈리는 이해관계
이처럼 각 정당은 달라지는 득실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한국당은 선거제 개편에 가장 부정적인 입장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현행 300석인 국회를 27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없애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그러면서 한국당은 여론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 원내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가 얼마나 꼼수 개편인지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김재원 의원은 “대통령제에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결과 군소정당이 난립해 국정 전체가 마비된 중남미처럼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20일 의원총회를 통해 선거제 개편에 대한 뜻을 모으려 했지만, 내홍으로 당내 합의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과 유의동 원내수석부대표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단순히 한국당의 의석수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는 것만은 아니다. 진보성향인 소수 정당들이 의석수를 늘리고, 이들이 민주당과 합의를 통해 21대 국회에서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을 막기 위해서다. 황교안 대표도 “이 정권이 정파적 이익에 급급한 소수 야당과 야합해서 다음 총선에서 좌파연합회의를 만들려는 음모”라고도 비판했다.
물론 한국당 일부 의원은 나 원내대표의 ‘의원정수 축소 및 비례대표제 폐지’에 등을 돌리기도 했다. 김학용 의원은 “비례대표를 100% 없애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비례제가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에 저도 축소는 맞다고 생각되지만, 장애인‧여성‧청년‧다문화가정 등 사회의 어두운 곳, 힘없는 곳, 약자를 위해 책임지고 그 편을 들어줘야 될 분들이 있다”며 “270석으로 줄이되 지역구가 늘어나는 것은 축소해서 한 20석 정도는 그분들에게 할애하는 것이 맞지 않나”라고 밝혔다.
반면, 의원수와 비교해 정당 득표율(20대 총선서 7.2%)이 높은 정의당은 선거제 개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정의당)은 “현행 선거법은 30년 동안 기득권 양당이 입은 ‘맞춤형 패션’의 낡은 옷”이라며 “이제 ‘민심 맞춤형 패션’을 만들려고 하니 (한국당이) 모든 독한 말을 동원해 선거제 개혁을 좌초시키려 한다”고 꼬집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도 20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나 원내대표를 특정하며 공세를 퍼부었다. 윤 원내대표는 “나경원 원내대표님 여기 계시냐. 나 원내대표가 ‘선거제도가 개혁되면 정의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된다’며 반대한다고 얘기했다. 공정한 선거제도가 만들어지면 정의당이 교섭단체가 돼서 (선거제 개혁에) 반대한다고 한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윤 원내대표의 공격이 이어지자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한편, 민주당을 둘러싸고 의아하단 반응도 나온다. 점차 떨어지는 지지율로 선거제가 개편되면 오히려 21대 총선에서 의석수가 감소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선거제 개편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 처리 때문이다. 설령 선거제에서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청와대와 정부의 주력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여야 4당은 선거제도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려 했지만, 바른미래당이 뜻밖에 발목을 잡게 됐다. 한 지붕 아래서도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나름의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고 있는 바른미래당 내부서도 선거제 개혁에 대한 반대 의견이 거세다. 반대하는 의원들은 대부분 바른정당 출신이다(유승민‧유의동‧이혜훈‧정병국‧지상욱‧하태경 등). 이들은 선거제 개혁은 물론, 이를 처리하는 방식인 패스트트랙에도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거법과 함께 묶어서 처리할 다른 법(공수처 법 등)에도 반대하고 있어 의견 조율에 어려움이 따르는 상황이다.
# 불투명한 통과 여부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1일 “패스트트랙이 무산되는 것으로 결정이 나고 협상을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 제가 그 부분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말해왔다. 책임지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말했다. 선거제 개편 막판 조율을 둘러싼 바른미래당 내 의원들은 물론, 각 정당 간 암울한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민주당과 평화당, 정의당이 패스트트랙에 100% 찬성한다 할지라도 바른미래당 내 8~9명의 의원이 이탈하면 패스트트랙 통과가 어려울 수도 있다. 김병관 민주당 의원은 “결국 키는 바른미래당이 쥐고 있다”고 말했다.
21대 총선을 위한 후보자 등록은 12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그때까지 국회는 패스트트랙을 통해 개편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선거구획정까지 마무리해야만 21대 총선을 무사히 치를 수 있다.
또 다른 방법도 존재한다. 패스트트랙은 최장 330일(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60일) 이후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는 제도다. 그러나 국회의장이 이달 내 공직선거법개정안을 직권 상정할 경우, 270일 이후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5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하면, 271일째가 되는 올해 12월 20일부터는 법안 처리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합의 정신을 강조해야 하는 국회의장 특성상, 이 같은 부담을 떠안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나 각 정당의 밥그릇 싸움이나 다름 없는 선거제를 합의 없이 밀어붙이기는 정치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 상정시키면 한국당은 언제나 그랬듯 ‘보이콧’을 선언하며 국회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50% 연동형 비례대표제+기존 병립형 비례대표제…선거제 개편안 ‘환장의 콜라보’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편안은 정당 투표율과 지역구 당선 의석수를 연동해 배분하는 ‘연동형’이 그 특징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려웠다. A 정당이 전국 정당득표율 10%를 얻고 지역구에서 20명의 당선자를 냈다고 가정하자. 이 정당은 전체 300석 중 10%인 30석이 목표로 보장된 의석이 된다. 총합 30석에서 20석의 지역구 후보를 당선시켰으니, 10석이 남는다. 여기에 ‘연동률’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때 연동률 100%라면 10석을 모두 얻겠지만, 여야는 50%로 합의했기 때문에 여기서 절반인 5석을 비례대표로 배분받는다. 국회의원 300석 중 비례대표로 배분된 것은 75석이다. 일단, A 정당은 지역구 의원 20명을 당선시키고 비례대표로 5석을 배분받았다. 이 같은 방식으로 B 정당과 C 정당 등 다른 당도 비례대표를 받는다.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선거제 개편안. ‘국민 패싱’이라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투표하고 있는 유권자. 최준필 기자. 1차 배분에서 얻은 비례대표 의석(5석)을 권역별로 운영한다는 뜻이다. 즉, A 정당이 얻은 5개의 의석을 각 권역별로 배분하고, 그곳에서 당선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계산 수식은 ‘총 의석수(지역구+비례대표)×권역별 득표율’이다. 여기서 말하는 권역별 득표율이란 ‘정당의 해당권역의 정당득표수’ 나누기 ‘정당의 전국 정당득표수’다. A 정당의 전국 정당득표수를 1000만 표, 해당권역(서울)에서 득표수를 50만 표로 가정할 때, A 정당의 권역별 득표율은 20%다. 그리고 A 당의 서울지역 의석은 25석이니 계산식은 ‘25×20%’이 된다. 그 결과, A 당에 5석이 할당된다. A 당의 서울 지역 당선자가 2라고 가정할 때, 이는 할당 받은 5석에서 3석이 부족하다. 그러나 3석을 배정하지 않고 절반인(50% 연동형) 2석(권역별 연동의석수는 반올림. 산정 결과가 1보다 작을 때는 0으로)을 받게 된다. 결국 A 당은 1차에서 25, 2차에서 2석을 배분 받았아 총 27석을 차지한다. 그 다음 단계는 ‘석패율제’다.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한 이들을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제도다. 상한선은 권역별로 2명까지다. 만약 강원도 춘천에서 아깝게 낙마한 출마자를 ‘충청‧강원’ 권역에서 비례대표로 출마시킬 수 있다. 아깝게 낙선한 출마자들의 석패율을 따지고, 해당 권역에서 석패율이 높은 이들 최대 두 명까지 비례대표로 입후보시킬 수 있는 것이다. 특정 권역에서는 지역구 의석의 30% 이상을 가져간 정당은 석패율제를 쓸 수 없다는 제한을 뒀다. 이수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