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이 회계공무원이라는 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얼핏 납득이 되지 않는 논리였다. 국민의 인식과 판사의 관념은 다른 것 같았다. 1심 판사는 국정원장을 회계실무자로 보고 징역형을 선고했다. 권력의 영향에서 독립해서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한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이어서 전 정권의 대법원장이 구속되고 직속하부기관인 법원행정처 운영비를 대법원장 격려금으로 쓴 행위가 역시 국고손실죄로 법의 제단에 올려졌다.
전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국고손실과 같은 맥락이다. 고위직 법관에서 하루아침에 죄인으로 추락해 후배판사 앞에 선 법원행정처장은 “예산의 전용이고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항변했다.
그런 말을 하는 과정에서 검사가 웃었다. 검사들의 그런 냉소를 검사실이나 법정에서 종종 보곤 했다. 절규하는 사람 앞에서 짓는 검사의 비웃음은 칼로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다. 평생 법관으로 지냈던 법원행정처장은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웃지 마세요”라고 검사에게 쏘아 붙였다. 검사가 그 말에 법대 위에 있는 재판장에게 “주의를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하자 후배판사였던 재판장은 “검사에 대한 지적은 재판부가 할 사항입니다”라고 했다.
평가에 따라서는 ‘네가 아직도 높은 판사인 줄 아느냐?’는 차디찬 경멸이 스며있는 행동 같기도 했다. 시대의 격류가 법정 안으로 덮쳐 들끓고 있다. 완장 판사들이 그 정체를 드러내는 것 같다. 재판은 정치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판사도 있었다.
살아있는 촛불정권에 대해서 판사들의 태도가 갈리는 것 같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엄청난 댓글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 범죄행위가 밝혀졌다. 현직 대통령의 측근이 관여되어 있어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 상처를 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대통령의 측근이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구속이 되자 권력이 총동원되어 담당 판사를 공격했다. 인격살인적인 성명을 내놓고 사법부는 그를 재판에서 배제했다. 검찰은 그 판사를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기소했다.
그 사건을 이어받은 항소심 판사가 겁먹은 것 같다. 그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다. 자신은 이 재판을 맡고 싶지 않지만 현행 제도상 자신에게 배당된 이 사건을 피할 수 없었다고 했다.
법관이기에 앞서 한 사람이기 때문에 벌써 들려오는 말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평정심을 잃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호인이나 피고인이 판사를 바꾸어 달라는 기피신청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럴듯한 점잖은 말들로 포장을 했지만 그는 도망가고 싶은 새가슴 속을 털어놓은 것이다.
흔들리는 판사들의 비굴한 행태를 보면서 속으로 혀를 찬다. 검은 법복을 입고 높은 의자에서 인사를 받으면 그 값을 치러야 한다. 대접만 받고 판사가 져야 하는 사회적 십자가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
살아있는 권력측근이라 해도 법과 정의에 위반되면 그 자리를 걸고 준엄한 선고를 해야 한다. 법이 권력을 견제하는 게 법치주의다. 법치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