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한 상황 적지 않지만 항소심 유지 전망에 재계 일각에선 ‘파기환송’ 예측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의 주요 쟁점
검찰은 삼성이 박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 씨 측에 총 433억 원의 뇌물을 제공 및 약속했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최 씨의 딸 정유라 씨 승마 지원금 213억 원(실제 지원한 금액은 약 78억 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 원, 한국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여 원이다.
2017년 8월, 1심 재판부는 정유라 씨 승마 지원금과 한국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을 뇌물로 인정했다. 이밖에 업무상 횡령, 재산국외도피, 국회 위증죄 등을 유죄로 인정해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2심 재판부는 한국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을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고, 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에 대해서도 무죄로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는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개별 현안이나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즉 이재용 부회장이 명시적·묵시적 부정 청탁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는 묵시적 청탁이 있다고 판단해 삼성이 한국스포츠영재센터에 건넨 돈을 뇌물로 인정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서울구치소를 나오는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또한 이재용 부회장 2심 재판부는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수첩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안 전 수석의 수첩에는 ‘엘리엇 방어 대책’ 등 삼성과 관련된 현안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재판에서는 수첩을 일정 범위에서 증거로 인정해 안 전 수석에게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6년, 벌금 1억 원을 선고했다.
당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논평을 통해 “‘안종범 수첩’을 인정하면서도 그 수첩이 가리키는 뇌물죄의 방향은 무시한 것”이라며 “이 부회장 2심 재판부의 판결이 얼마나 비상식적이며 금권에게 굴복한 판결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상고심에서는 한국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의 뇌물 인정 여부와 안 전 수석 수첩의 증거 인정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뇌물 액수가 얼마나 될 것인지도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다.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는 86억 원을,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36억 원을 둘 사이에 오간 뇌물로 인정했다.
이 부회장은 뇌물 마련을 위해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액수가 50억 원이 넘어가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박 전 대통령의 판결처럼 뇌물액이 86억 원이라면 이 부회장은 최소 징역 5년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는 3년 이하의 징역을 넘어가 이 부회장이 다시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삼성바이오로직스 변수
이재용 부회장의 2심 판결 후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이다. 2015년 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면서 회계를 조작해 기업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회계보고서에서 종속회사의 지분가치는 취득가액으로 평가하지만 관계회사는 시장가로 평가한다.
2014년 말 4621억 원이었던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가치가 2015년 말 4조 8085억 원으로 크게 상승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분가치 변동을 반영해 2015년 1조 9049억 원이라는 높은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한 이유에 대해 “바이오젠이 콜옵션(가격이 상승해도 최초 정해진 가격대로 살 수 있는 권리. 가격이 하락하면 행사하지 않아도 됨)을 행사하면 경영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3월에는 한국거래소 여의도 본사까지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검찰 측은 구체적인 수사 진행 상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 상승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도 연관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진=고성준 기자
일각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 상승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이유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해 국민연금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2015년 9월 두 회사가 합병하기 전 제일모직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부회장(23.23%)으로 경영 승계를 위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렸다는 말들이 많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은 삼성전자가 45.65%, 제일모직이 45.65%, 구 삼성물산이 5.75%를 소유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가 상승하면 제일모직의 가치도 동반 상승할 수 있는 구조다.
지난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안에 찬성표를 던진 핵심 근거가 삼성의 바이오사업 성장성에 대한 기대”라며 “삼성 바이오사업의 성장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특혜 상장과 부정 회계가 이뤄졌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경영권 승계가 당시 삼성의 현안이었다는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뇌물 관련 혐의도 유죄로 선고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변호사는 “삼성 내 승계 작업 현안이 존재했다는 정황적 판단이 가능해질 수 있어서 2심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주장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며 “대법원도 여론이나 주변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 내용에 따라 2심 판결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 재계 일각에선 파기환송 예측도
현재 상황으로 보면 이재용 부회장 측에 불리한 점이 적지 않지만 일단은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신동빈 회장 역시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는 사실에 미뤄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별세하면서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는 주장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며 “그렇다고 현 정부의 기조는 대기업에게 손을 빌리지 않겠다는 것이기에 무조건 이 부회장의 편을 들어준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파기환송할 것으로 예측한다. 파기환송이란 원심판결을 취소하고, 원심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하는 것을 뜻한다. 대법원이 이재용 부회장 편을 들어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 씨 판결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어 당장 결론을 내리기는 시기상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