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교원 철밥통 지켜주는 교육공무원법
전명규 교수. 사진=일요신문 DB
교육부는 2월 11일부터 약 3주에 걸쳐 특별 감사를 벌인 뒤 3월 21일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 교수는 조재범 전 쇼트 트랙 국가대표 코치에게 폭행 당한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종용하는가 하면 피해 학생은 물론 가족까지 만나 폭행 사건 합의 또는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 응하지 않을 것 등을 강요했다. ‘졸업 뒤 실업팀 입단’ 등 밥그릇 문제를 압박 수단으로 이용했다고도 나타났다.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사태가 터지고 교육부 감사가 진행된 올 초까지도 피해자를 직간접적으로 만나 압박했다고 밝혀졌다.
전명규 교수는 빙상부 학생이 협찬 받은 훈련용 사이클 2대를 가로채기도 했고 제자가 운영하는 사설강습팀이 한체대 빙상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해에 걸쳐 ‘특혜 대관’을 해주기도 했다. 주민등록 세대가 다른 가족을 신고하지 않고 2003년부터 2018년까지 15년에 걸쳐 가족수당 1000여만 원을 수령한 점도 이번 감사에서 드러났다. 대한항공 빙상팀 감독에게 대한항공 승무원 면접 지원자 정보를 보내면서 ‘가능한지 알아봐 달라’고 청탁한 사실 등도 함께 적발됐다. (관련 기사: 성폭력 제보 또 무시…반쪽짜리 교육부 감사에 한숨 돌린 한체대)
교육부는 확인된 사실을 근거로 전명규 교수 중징계 요구안을 한체대에 보냈다. 이를 두고 교육계는 ‘중징계 요구’를 할 게 아니라 ‘파면 요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립대 교원 징계는 교육공부원법을 따르는데 교육부는 특정 기관에 징계 요구를 전할 때 징계의 종류를 중징계 또는 경징계로만 구분해야 한다. 국립대 교원을 대상으로는 파면이나 해임 등 특정 징계 요구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반면 교육부는 사립학교 교원에 대해 ‘핀셋 징계’가 가능하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교육부 등 사립학교 관리기관은 파면, 해임, 정직, 감봉, 견책 등의 징계를 구체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맹점을 이용해 국립대의 제 식구 감싸기는 광범위하게 이뤄져 왔다. 교육공무원법상 파면, 해임, 정직이 중징계로 분류되고 감봉, 견책 등이 경징계로 불린다. 정직은 중징계로 분류되지만 그 효과가 미미하다.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복귀가 손쉬운 까닭이다. 교육부가 문제가 심각한 인사를 대상으로 ‘중징계’를 내려도 대부분 정직 정도에서 마무리되는 게 국립대의 오래된 관행이었다. 심지어 교육계에서는 ‘중징계=정직’이란 공식까지 나돌 정도다. 국립대 교원이 철밥통이라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징계 관련 국립대 교원과 사립대 교원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국립대는 교육부가 아무리 최대 징계를 주려고 해도 학교가 나서서 감싸면 문제가 심각한 내부 인사를 외부에서 청산할 방법이 없다. 반면 사립대 교원은 학교가 교육부의 직접 징계 요구를 막아낼 방법이 없어 교육부의 ‘입김’에 취약하다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사립대가 교육부 퇴직 인사를 고용하는 ‘교피아’ 문제가 뿌리 깊은 건 이런 구조 탓이 크다.
교육부가 국립대와 사립대 교육 모두에게 직접 구체적인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징계 완화를 검토하는 소청심사위원회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교육계 인사는 “교원 징계에 있어서 국립대와 사립대의 형평성 문제는 예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교육계의 뿌리 깊은 유착과 카르텔, 극심한 보신주의 탓에 그냥 현상만 유지되는 실정”이라며 “징계의 효과를 높이는 데에는 국립대와 사립대 양쪽에 동일한 기준을 설정하는 일과 칼 같은 징계가 우선시 되는 게 핵심이다. 교육계의 고질적 문제는 솜방망이 처분과 회전문 인사였다.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려면 일정 기간이라도 감싸기 이전에 꾸짖기부터 하는 게 맞다. 소청심사위원회의 외연을 확장하면 억울한 징계는 충분히 구제 가능하다. 지금 교육계에 필요한 건 강력한 긴장감”이라고 말했다.
법이 개정되지 않더라도 국립대 교원에게 구체적인 징계를 요구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감사원이 나서면 된다.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원장은 구체적인 징계를 각 기관에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감사원의 최근 행보로는 유명무실한 법 조항일 뿐이다. 최근 감사원 감사가 제 몫을 했다는 소식이 거의 듣기 힘들어진 까닭이다. 지난 왕정홍 총장 시절 감사원은 “공공기관에 도움되는 감사하기”라는 내부 지침을 내려 두루뭉실한 칼끝만 휘둘렀다고 알려졌다.
특히 감사원은 한체대 앞에 서면 더욱 작아진다. 감사원은 2013년 6월 한체대를 포함 국립대 7곳을 상대로 특정감사를 벌였다. 연구비 800여만 원을 횡령한 한국해양대 교직원을 해임 처분하고 연구비 470만 원 상당을 부정 수령한 서울과기대 직원도 잡아냈다. 한체대 관련 지적은 없었다. 4개월 뒤 감사원은 한체대를 상대로 또 다시 대대적인 감사를 벌였다. 감사 초반 경기도 분당 LH공사에 감사장을 마련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감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한 다선 의원이 이 감사를 막는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 의원의 먼 친척인 A 교수가 한체대에 재직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당시 A 교수 관련해 접수된 제보만 연구비 횡령 의혹 등을 포함해 40개를 넘었다고 알려졌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