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 열망에 5조 빚내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 결정적 패착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취임 17년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봤다. 사진은 지난해 7월 4일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에서 ‘기내식 대란’ 관련 입장을 발표하기 전 인사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박삼구 전 회장 취임 당시 금호그룹은 IMF 경제위기 이후 주력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실적 악화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박 전 회장은 취임 직후 재무구조 개선과 구조조정을 하는 한편 공격경영을 통한 사세 확장을 준비했다. 2003년 9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회장은 “올해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2010년까지 그룹을 재계 5위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박삼구 전 회장은 2003년 6월 금호산업의 타이어 사업 부문을 분사해 금호타이어로 독립시키면서 지분 50%를 군인공제회에 매각했고, 2004년 3월에는 지상조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열사 아시아나 공항서비스를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2004년 그룹명을 ‘금호’에서 ‘금호아시아나’로 변경하며 비상 의지를 다진 박삼구 전 회장은 앞서 마련한 자금을 활용해 인수합병(M&A)에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외형 확장을 꾀했다. 2006년 23개였던 계열사는 2007년 38개로 대폭 증가했다. 당시 대표적인 M&A는 대우그룹 인수다. 그룹 자산총액이 12조 9820억 원이던 2006년 박 전 회장은 대우건설을 6조 4255억 원에 인수,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박 전 회장은 금호그룹을 재계 18위에서 재계 13위로 끌어올렸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박 전 회장은 2008년 대한통운을 4조 1040억 원에 인수했다. 우리나라 M&A 역사에 남을 만한 금호그룹의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는 물류와 레저, 건설 부문을 육성해 도약하겠다던 박삼구 전 회장의 야심에 따른 것이다. 2009년 금호그룹은 자산총액 37조 5580억 원에 48개 계열사를 보유, 명실공히 대기업으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한때 재계 7위까지 뛰어오르며 “2010년까지 그룹을 재계 5위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한 박 전 회장의 의지가 현실화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는 결과적으로 지금의 금호그룹으로 추락하게 만든 패착이 되고 말았다. 박삼구 전 회장은 대우건설을 시장 평가액보다 2조 원 이상 높은 가격에 인수했을 뿐 아니라 인수대금 중 무려 3조 5000억 원을 차입금으로 충당했다.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데도 외부 차입금을 1조 2500억 원이나 끌어왔다. 5조 원에 육박하는 차입금에 따른 금융비용을 감당하기가 벅찰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금호그룹의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대한통운의 경우 항공과 물류 간 시너지나 사업다각화 측면에서 크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당시 국내 건설경기가 하향 국면에 접어들었음에도 산업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오히려 천문학적인 금액을 베팅해 대우건설을 인수한 것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대우건설을 인수하며 서울역 앞 옛 대우빌딩에 금호아시아나 간판을 내거는 등 소위 ‘재벌노름’을 하기도 했는데, 사업적 판단보다 외형을 키우겠다는 욕심이 더 컸던 것 같다”고 전했다.
무리한 차입경영에 그룹 전체가 흔들렸다. 핵심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석유화학도 채권단과 자율협약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이러한 조치에도 유동성 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결국 2009년 대우건설을, 2011년 대한통운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수 잔치를 벌인 지 불과 3~4년 만에 두 회사를 내놓아야 했다. 또 2009년과 2010년 금호생명(현 KDB생명)과 금호렌터카(현 롯데렌터카)가, 2012년 금호고속 등 박삼구 전 회장은 원래 금호 계열사였던 회사마저 잇달아 매각했다.
재계 5위의 꿈을 목전에서 놓친 박삼구 전 회장은 계열사들이 경영정상화 조짐을 보이자 다시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2014년 계열사들이 워크아웃과 자율협약에서 벗어나자 2015년 금호고속을 되찾은 박 전 회장은 2016년 금호산업을 찾아오면서 그룹 재건의 뜻을 밝혔다. 이후 금호타이어까지 되찾아 오면서 2018년을 그룹 재건의 원년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박삼구 전 회장은 또 다시 금융자금을 이용했으며 실적 좋은 계열사들을 활용했다. 대표적인 계열사가 아시아나항공이다. 아시아나항공이 현재 이 지경에 처한 결정적인 이유다.
앞의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산업은행의 비호와 자금 지원이 아니었으면 박삼구 전 회장은 진작에 물러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원점에서 출발하는 마음가짐으로 분골쇄신했어야 할 박 전 회장이 오히려 과욕을 부려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아시아나항공까지 어렵게 했다“고 지적했다. 재계 고위 인사는 ”2002년 회장 취임 이후 박삼구 전 회장의 경영능력은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며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침체라는 외부 요인이 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총수라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이 재임 시절 날린 계열사만 30개가량 된다“며 ”연이은 판단미스로 그룹을 어려움에 몰아넣은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65세룰’ 수정 삭제…‘아름다운 형제경영’마저 깨버려 박삼구 전 회장은 경영에서뿐만 아니라 가족관계에서도 좋지 않은 예를 남겼다.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갈등을 빚으며 이른바 ‘형제의 난’을 겪은 것도 박 전 회장의 오명으로 남는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무리한 인수를 반대한 박찬구 회장은 2009년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며 계열 분리를 추진했다. 이를 참지 못한 박삼구 전 회장은 박찬구 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고 본인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퇴진했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은 불과 1년 뒤인 2010년 채권단의 요구로 전문경영인으로서 회장직에 복귀한다. 이후 박 전 회장의 항공·건설분야와 박찬구 회장의 석유화학부문의 분리경영이 이뤄졌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은 2015년 금호그룹에서 완전히 계열 분리돼 지난해 기준 재계 55위에 이름을 올렸다. 11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산총액은 5조 7560억 원 규모다. 박 전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형제의 난과 계열분리 과정에서 치사한 법정다툼을 계속해 뭇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현재 박삼구 전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서로 왕래는커녕 남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에서는 금호 형제의 갈등 원인을 박삼구 전 회장의 ‘반칙’ 탓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박 전 회장이 ‘형제경영’ 룰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 네 아들(박성용-박정구-박삼구-박찬구)이 공동으로 작성한 금호그룹의 ‘형제공동경영합의서’에는 형제간 동등한 지분 보유와 회장직 상속시 형제간 합의, ‘65세룰’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네 형제는 박삼구 전 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형제경영을 순탄하게 이어갔다. 첫째인 고 박성용 회장은 본인이 65세 때 둘째인 고 박정구 회장에게 자리를 넘겼으며, 고 박정구 회장도 65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박 전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줬다. 그러나 박삼구 전 회장은 본인 65세를 앞둔 2009년 형제공동경영합의서를 수차례 변경하면서 회장직을 이어가기 위해 애쓴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이 금호그룹 형제 갈등의 씨앗이 된 것으로 알려진다. 금호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박삼구 전 회장 취임 직후 첫째형인 고 박성용 전 회장 주도로 4가가 함께 형제공동경영합의서를 작성했으나 박성용 전 회장 타계 이후 박 전 회장이 65세 룰과 10년 임기 등의 조항을 수정하거나 삭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후 박 전 회장이 합의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언급을 하는 등 그룹 내 룰을 깨버렸고 그룹까지 위기로 몰아넣어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