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주주 압력 극복하고 아시아나 채권단 요구 부응해야
# 조양호·박삼구…일단 후퇴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직을 내려놨지만 여전히 모기업인 한진칼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 회장이다. 아들인 조원태 사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 임기는 2021년 3월까지다. 당분간 조 사장 중심으로 이사회를 꾸리면 된다. 조 회장이 ‘체면’은 구겼지만, 실제 회사경영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할 전망이다. 이번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 회장의 지지표는 여전히 64%로 과반이다. 국민연금 등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어도 경영을 주도할 수는 없다.
지난 3월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박탈이 결정되며 총회가 끝난 뒤 총회 의장인 우기홍 대표이사가 총회장을 떠나고 있다. 임준선 기자
박삼구 회장은 아시아나항공과 모기업 금호산업 대표이사 회장직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그룹 지배구조 정점인 금호고속 대표이사 회장직은 유지한다. 박 회장은 금호고속 지분 29.7%를 가진 최대주주다. 지배구조상 자회사와 손자회사에 대한 영향력은 유지할 수 있다. 아들인 박세창 금호고속 사장은 그룹 전략경영실 사장이자 금호고속 지분 21.02%를 보유한 2대주주다. 외부에서 ‘회장’을 영입한다고 해도 박 회장 부자의 영향력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 조원태, 주주압력 극복할까
조 회장의 이번 ‘낙마’에서 가장 결정적 대목은 사내이사 선임 의결권 정족수다. 국내 대부분의 기업은 물론 한진그룹 계열사도 거의 모두 출석의결권의 과반과 발행주식수의 4분의 1이다. 대한항공만 출석의결권의 3분의 2와 발행주식수의 3분의 1이다.
조 사장이 스스로 주주들을 만족시키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2년 후에는 조 회장과 같은 운명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조 회장 낙마를 주도했던 연기금의 경우 지속적으로 주주권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에 대해 국민연금은 지속적으로 반대표를 행사하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가 더욱 강화될 2년 후 조 사장의 연임을 장담하기 어렵다. 사내이사 선임 정족수를 바꾸는 정관변경도 쉽지 않다. 참석주주 3분의 2, 발행주식 3분의 1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번 ‘표심’이라면 가결이 어렵다.
당장 내년에는 조 회장과 함께 조 사장의 한진칼 등기임원 임기도 끝난다. 한진칼 등기임원은 출석의결권 2분의 1 이상으로 가결되지만, 경영활동이나 주주정책에 실패한다면 부자가 동시에 궁지에 몰릴 수 있다.
# 박세창, 일단 낮은 자세로
지난해 7월 4일 ‘기내식 대란’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는 박삼구 회장. 박 회장은 결국 지난 28일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 금호고속 사내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임준선 기자
올해부터 항공업계 회계처리 기준이 IFRS16으로 바뀐다. 지난해까지는 ‘금융리스(항공기 임대계약 종료시 직접 소유, 주로 장기)’만 부채로 평가됐다. 올해부터는 ‘운용리스(계약종료 후 임대인에 반환, 주로 단기)’도 부채가 된다. 운용리스는 주로 신용등급이 낮은 저비용항공사(LCC)들이 택하는 방법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운용리스 비율은 61%다. 대한항공은 17%다. KTB투자증권은 IFRS16를 적용할 경우 625%인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연결기준)이 900%에 육박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신용등급에 압박을 받는다. BBB-인 등급이 BB+로 한 단계만 떨어져도 1조 2000억 원 상당의 자산유동화증권(ABS) 상환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 지난해 적자가 올해 흑자로 돌아서기도 만만치 않은 경영환경이다.
# 국민연금·산업은행의 선택은
정관변경이 없는 한 사내이사에 대한 거부권이 가능함을 확인한 국민연금은 이후 주주친화적 정책을 주문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경영 개입은 최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반면 산업은행은 당장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상대로 압박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현 이동걸 회장 취임 이후 산업은행은 박삼구 회장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호타이어도 우선매수권을 주장하는 박 회장을 좌절시키고 결국 중국으로 매각했다.
그런데 박 회장이 먼저 ‘퇴진’ 카드를 내놓으면서 경영정상화의 공을 채권단에 넘긴 점이 애매하다. 채권단이 추가지원으로 경영정상화를 이뤄낸다면 박 회장은 건강해진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을 다시 넘겨받는다. 반대로 경영정상화에 실패한다면 채권단 책임이 될 수 있다. 채권단 입장에서도 경영정상화의 반대급부를 누릴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산은은 다시 금호아시아나 쪽에 자구계획 제출을 요구한 상황이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금호 쪽 자구안을 받아본 뒤 추가지원은 하되 박 회장 일가의 경영권 재접근 기회를 제한하는 장치를 구상할 수도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