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한 ‘애물단지’ 구조조정 성공에 각계 긍정적 평가...노조 반발과 대우건설 현대상선 등 난제 남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최근의 구조조정 작업으로 정재계와 금융권 전반의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최근 정치권과 재계, 금융권을 통틀어 ‘구조조정’을 이야기하면 이동걸 회장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각계 관계자들이 그에 대해 내놓는 평가도 대부분 긍정적이다.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나오는가하면 ‘산업은행 역사는 이동걸 취임 전과 후로 갈린다’라는 극찬까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한 관계자는 “야당에서도 이동걸 회장에 대해선 별다른 쓴소리를 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동걸 회장이 광범위한 주목을 받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지난 2017년 9월 산업은행 수장 자리에 오른지 2주 만에 금호타이어 매각을 이끌어 내면서부터다. 그는 이후 에스티엑스(STX)조선해양, 한국지엠(GM), 대우조선해양, 아시아나항공 등 산은이 십수년 동안 관리해오던 굵직한 ‘애물단지’들을 잇따라 정리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들은 전통적인 M&A(인수 합병)방식을 벗어난 이동걸 회장 특유의 구조조정 방식을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대표적이다. 주주나 일반인이 아닌 특정된 제3자에게만 추가로 발행되는 주식을 배정해 경영권을 이전하는 방식이다. 금호타이어와 동부제철이 이 방식으로 매각됐고, 최근 정리 작업이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에서도 유상증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 매각 과정에선 현대중공업과 사실상 수의계약 형태로 거래 구조를 짰다. 산은과 현대중공업이 공동 지주사를 설립한 뒤 산은이 대우조선 지분을 현물 출자하고, 대신 새 지주사의 신주를 받아 주주가 되는 방식이다. 특히 이 작업은 세계 1‧2위 조선회사 간 주식 교환이라는 빅딜(Deal)로 통하지만, 발표 직전까지 보안이 유지됐다는 점도 관심을 끌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 취임 직후 이뤄진 구조조정을 보면, 매각 실패 확률을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추진됐다. 동부제철과 금호타이어는 우선협상자를 선정했고, 현대중공업과는 공개입찰을 전제로 조건부 인수계약을 맺는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 방식을 활용했다”며 “특히 인수 과정에서 발생할 재무 리스크를 산은이 함께 부담하는 쪽으로 추진했다. 선뜻 사들이기 부담스러운 매물을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새 주인들이 결단을 내리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굵직한 거래를 짧은 시간 동안 여러차례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뒷말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도 관심을 끈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이 덩치가 큰데다, 오랜 기간 부실 회사로 낙인이 찍혀 있었던 만큼 곳곳에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산은 안팎에선 이번 구조조정 전반이 큰 진통 없이 진행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일련의 구조조정 작업에 대해 산은 안팎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이 회장 역시 “스스로 만족할 만큼 성과를 이뤘다고 본다”고 자평했지만, 여전히 숙제가 남아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 막 구조조정 절차가 시작됐거나 진행 중인 만큼 산은이 자금을 회수하거나 성과를 따지려면 적어도 수년은 더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새 주인을 찾은 회사가 결과적으로 정상화에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경우 그 화살이 이 회장이나 산은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은이 일부 부담을 함께 짊어지기로 한 부분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인수합병에 대한 노조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대우조선·현대중공업 노조는 한 목소리로 매각작업 중단을 외치며 강경투쟁을 예고했고, 지난 17일엔 “이동걸 회장이 대우조선 지분의 헐값 매각을 강행하며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산은에도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며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고발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산은이 매각을 고려하거나 정상화 작업을 진행 중인 대우건설과 현대상선은 이동걸 회장의 또 다른 아픈 손가락이다. 대우건설은 이 회장 취임 이후 사실상 구조조정에 실패했다. 호반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우건설 모로코 사피발전소의 3000억 원 규모 손실이 뒤늦게 드러나 무산됐다. 이 회장은 “시장에 새 주인이 나타나면 손해를 보고서라도 팔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도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화 작업 중인 현대상선은 3년여 동안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올해 들어 새 대표이사를 선임하고 해체된 한진해운 출신 임직원 등을 구원투수로 투입하고 있지만 해운 업황이 밝지 않은 만큼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기가 절반 남짓 남은 상황에서 이동걸 회장이 본격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이 회장은 취임과 함께 세 가지 목표로 ▲혁신성장 지원 ▲부실기업 구조조정 마무리 ▲산업은행의 경쟁력 제고 등을 세웠는데, 혁신성장 지원은 산은 경영계획에서 사실상 배제된 상태였다. 특히 대통령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는 만큼 남은 임기 동안 주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산은은 올해 경영계획에서 혁신성장 지원을 중점적으로 처리하고, 구조조정 항목은 중점 추진 과제에서 제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한 산은 관계자는 “올해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를 설립해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은 자회사에 맡기고 산업은행은 혁신성장 지원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